"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에드몬도 드 아미시스의 말을 빌려 터키 이스탄불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리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도 이스탄불에서는 만족할 수 있다(1878)""고. 하루 반나절. 반의 반도 볼 수 없는 짧은 일정. 처음부터 변덕부리기는 포기할 수밖에.

이스탄불 역사의 상징 성 소피아 사원
이스탄불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이스탄불은 기원전 600년 경 당시 유력 민족인 메가리아인 비자스에 의해 창건됐다. 비잔티움이라는 이스탄불의 첫 명칭이 이때 붙여진 것이다. 다음. 서기 330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동로마 천도를 감행하면서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 비잔티움으로 옮겼다. ‘콘스탄틴의 수도'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이 곳의 명칭은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다. 로마가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인 것처럼 당시 비잔티움도 보스포러스 해협이 관통하는 7개의 언덕으로 이뤄져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약 1000년을 융성했다. 13세기 십자군 원정으로 크게 흔들리더니, 15세기에는 오스만 터키의 술탄 메멧 2세의 공격을 받아 이슬람 세력에 완전히 함락 당할 때까지는.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때부터 유지되고 있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또는 함께 가지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들어낸 역사적 명칭들이다. 군사, 종교, 상업,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로의 여로는 흥분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노플이 되고 다시 이스탄불이 됐다. 그리고 성 소피아 사원은 모스크로 바뀌었다. 이스탄불이 겪어온 문화와 종교의 변화는 성 소피아 사원에서 절반은 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안 황제 때 안테미우스와 이스도루스가 건축했다고 알려진 성 소피아 사원의 초기 모습은 그리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발굴이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사원 앞에 전시된 그리스 양식의 석조작품과 제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 소피아 사원은 지금은 사원으로도 모스크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아야소피아(Ayasofia)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적인 대리석 유물과 장식 모자이크를 수백만의 관광객에게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의 역할만을 담당할 뿐이다. 이 역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뜻의 성 소피아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지혜가 아닐까. 내부로 들어가면 사원 중앙부분 돔의 거대함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40개의 창문과 1000년이 넘어도 전혀 바래지 않은 모자이크 성화들이 빛과 색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무슬림의 침략으로 회 덧칠의 수난을 당한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린 벽화는 후손들에 의해 회칠을 벗어나면서 오히려 더 성채를 띤다. 자연의 색만으로 그렸기에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비잔틴과 로만, 터키의 물고 물리는 혈투에도 살아남았기에 드러난 예수와 마리아의 얼굴이 더욱 값지다.

블루 모스크 Vs 성 소피아 사원
우습다. 마치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세운 것처럼 성 소피아 사원 바로 맞은 편에는 오스만 제국이 세운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있다. 1609년에 착공해 1616년에 완공된 이 모스크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첨탑 6개의 거대한 모스크다. 기독교 교회가 십자가를 단 첨탑을 가지고 있다면 이슬람교의 모스크는 삼각뿔 모양의 첨탑을 가진다. 기독교의 홑첨탑과 달리 이슬람교는 첨탑의 숫자에 의해 모스크의 권위가 결정되기도 한다.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마주보고 있는 성 소피아 사원을 중앙에서 견줘보자니 어느 하나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블루 모스크로 가려는 발목을 성 소피아가 잡고 있는 듯한 착각. 두 사원 사이에 높이 솟구치는 분수가 치열한 눈싸움을 식히는 것처럼 보여 일순 긴장했던 마음이 삭았다.
블루 모스크와 성 소피아 사원의 400여년에 걸친 눈싸움을 뒤로하고 인근 바실리카 지하 물 저장소를 찾았다. 예레바탄 사루느즈라는 긴 이름의 이 비잔틴 시대 저수지는 총 336개의 그리스 양식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형태이다. 1987년 일반에 공개된 지하 저수지 안에는 시종 전통 음악이 흘렀다. 음산한 동굴 분위기와 정지된 물의 흐름, 336개의 기둥 사이로 퍼지는 조명이 음악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 해주는 곳이다. 무엇보다 여름철 관광객들에게 추천해 줄만한 부분은 이 곳이 그 어떤 특급호텔 로비보다, 공항 라운지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점. 땀도 식히고 잠시 신비로운 분위기에 빠져 기둥을 거꾸로 받쳐든 메두사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이스탄불에서 잊혀지지 않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될 것이다.

터키의 남대문 시장 카팔리차르슈
이스탄불에서의 쇼핑이라면 당연히 그랜드 바자르로 간다. 카팔리차르슈라는 이 지붕 덮인 대형 시장은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골목에 약 4,000개의 상점이 들어차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남대문시장과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지붕이 덮여있기 때문인지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지나다니지 않는 데다 호객행위도 심하지 않아서 번잡하지 않다.
이 곳에서는 물건 값을 깍지 못하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이곳 상인들은 일본인은 부르는 게 값, 한국인은 70%, 중국인은 절반 값에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니 ‘웨어 아 유 프럼' 물어보면 ‘프럼 차이나'라고 답해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일면 불규칙적인 것 같던 그랜드 바자르를 한바퀴 돌고 나면 머릿속에 한가지 규칙이 자리 잡는다. ‘저 골목은 가죽, 이 골목은 양탄자, 저 너머는 은제품'하는 식의 나름대로의 세분화가 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기가 있는 가죽 제품과 가방, 양탄자 등은 꼼꼼히 앞 뒤, 안팎을 살펴보고 나서 가격 흥정에 들어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만약 출국하는 날 이 곳을 들렀다면 선물 고르기에 정신을 잃고 비행기 시간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할 것. 피스타치오 아몬드와 헤이즐넛 등 ‘터키쉬 딜라이트'도 싸고 맛있는 선물이 될 것이라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취재협조: 터키항공 한국지사 02-757-0280
이스탄불=김성철 기자 ruk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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