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그곳에 정조대왕은 복을 뿌렸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삼 사십 분 거리의 수원. 그곳에 맛이 있고 멋이 있다. 유네스코가 이집트 피라미드, 중국 만리장성에 이어 380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한국 성곽의 백미, 수원화성은 각다분한 일상으로부터의 고즈넉한 탈출구다. 깊은 역사의 맛 물씬한 수원 갈비는 생활 리듬의 강장제다.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고루 갖춘 근대초기 군사건축물의 뛰어난 모범’이며, ‘18세기 군사건축물을 대표하여 유럽과 극동아시아 성제의 특징을 통합한 독특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또‘역사는 불과 200년밖에 안됐지만 성곽의 건축물들이 동일한 것 없이 제각기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지난 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내린 소견 중 일부다. 이전에는 수원이라고 하면 으레 갈비를 떠올렸지만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부터는 갈비가 아닌 화성이 그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수원 화성은 수원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국내에서 불국사 및 석굴암,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95년 지정)에 이은 것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97년 창덕궁과 함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현재 국내에는 총 5가지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상태다.

효심·애민사상 고루 깃들어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그의 즉위 18년인 1794년 1월에 착공해 33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곽이다. 이것은 격한 당쟁의 와중에 영조의 미움을 사 한여름에 뒤주 속에 갇혀 죽임을 당한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화성 건립의 주요 목적은 아니다. 정조가 화성을 건립하게 된 데에는 철저한 애민사상과 정치적 목적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언뜻 생각하면 화성건립과 애민사상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조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애꿎은 백성들만 혹사당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한낱 어리석은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토록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도 온전히 남아있는 ‘화성성역의궤’ 덕택이다.
‘화성성역의궤’는 화성 건축공사의 보고서라 할 수 있는데, 화성 각 건물의 설계도를 비롯해 기자재와 부속건물그림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심지어 공사에 참여한 목수, 미장이, 석수 등 인부의 이름과 그들에게 지불한 노임까지 기록돼 있어 강제동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화성 건립에는 총 87만냥의 비용이 들었는데, 이는 당시 물가에 비춰볼 때 쌀 35만 가마니에 해당하는 액수다.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면 400억에 가까운 액수다. 정조는 화성 건축을 통해 87만냥을 백성들의 손에 쥐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성 건립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단행한 경제공황 타개책인‘뉴딜 정책’이었으며, 공공근로사업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정조는 33개월간의 공사 기간 중 약 6개월 가량 공사를 중단했는데 당시 가뭄으로 흉년이 예상되던 터라 백성들이 생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요컨대 정조는 화성건립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소모적인 당쟁과 논쟁, 탁상공론을 일삼았던 당시 정치권에 일침을 가하는 한편 대규모 노동 수요 창출을 통해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왕권안정 및 강화를 꾀했던 것이다.
화성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단연 다산 정약용. 그는 실학사상에 토대를 두고 전혀 새로운 개념의 성인 화성을 설계했으며, 새로운 과학기기인 거중기, 녹로, 유형기 등을 제작해 공사에 직접 활용, 당초 10년으로 잡았던 공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또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공사실명제와 성과급제 적용이다. 각 구역마다 벽돌 등에 담당자의 이름을 새겨 넣게 함으로써 화성의 완성도를 높였고, 책임감을 부여했다. 또 성과급제를 적용해 사기를 진작하고 동기를 부여한 점도 공사기간 단축에 크게 기여했다.

토요일 무료 시티투어 버스
5.5km에 이르는 화성을 돌아보는 데는 약 3시간 반 가량이 소요된다. 걷는 게 버겁게 느껴진다면 토요일 무료로 운영되는 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동서남북으로 들어서 있는 4개의 관문, 즉 북쪽의 장안문, 남쪽의 팔달문(보물 402호), 서쪽의 화서문(보물 403호), 동쪽의 창룡문은 원형 방어막 등의 독특한 구조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또 현재 복원 중인 화성 행궁은 1795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곳으로, 회갑연이 열린 봉수당을 비롯해 장락당, 낙남헌 등 총 57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행궁 중 최대 크기 행궁이다.
가풀막진 성벽을 따라 걷노라면 아버지의 혼을 달래는 정조의 효심도, 애민사상도, 정약용의 과학적 사고도 고스란히 가슴속에 와 닿는다. 쉽사리 벌어진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여졌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방어와 공격을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된 총구, 그리고 군사훈련장소며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망루와 봉수대 등 어느 것 하나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흠 잡을 곳이 없다. 흠이라기보다 아쉬움이라면 200년 풍파와 숱한 전쟁으로 많이 훼손되었고 그래서 많이 재건되었다는 점이겠다. 그러나 막연한 추측에 의한 재건이 아닌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돼 있는 설계도와 기록에 근거한 정확한 고증이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정확한 고증이 가능했다는 점도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수원시와 시민들이 수원화성에 거는 기대와 고마움도 크다. 수원시민들은 ‘정조가 수원에 복을 내렸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이 크다. 때문에 매년 정조의 화성행차를 재현하는 행사를 벌여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매년 10월에는 갈비와 화성,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재현 등이 어우러진 수원화성문화제를 개최해 내외관광객 유치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화성관광의 별미 활쏘기
화성 관광 시 놓쳐서는 안될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효원의 종’치기와 국궁 활쏘기가 바로 그것. 효원의 종 치기 프로그램은 화성 전체의 풍경을 조망하면서 종을 3번 치게 되는데, 1타는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2타는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3타는 자신의 소원을 빌면서 치면 만사형통이란다. 인기가 좋아 오는 10월부터는 유료화할 계획이니 서두르는 게 좋을 듯 싶다. 국궁 활쏘기 프로그램은 연무대 관광안내소(031-229-2763)에서 하루에 3차례 실시하고 있는데 전문요원의 교습을 받은 뒤 전통 활쏘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만만하게 생각했다간 팽팽한 활시위에 다치기 십상이니 집중해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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