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재단은 김대중대통령이 재야 시절 33년간 거주했던 사저를 허물고 그곳에 새건물(부지 400여평, 지상5층, 지하3층)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김대통령 개인과 아태재단 이사회의 소관사항으로 삼자가 간여 할 바가 아님을 안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박정희씨는 한국 전통의 초가집을 없애고 경주 고적지를 깨끗이 단장 시멘트화하였으며 김영삼씨는 일제 잔재의 마지막 청산을 위해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대단한 업적으로 자평하고 있다. 이러한 것에 비하면 문화재도 아니며 건축물의 가치도 없는 개인재산의 임의 파괴는 별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 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고난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라 철거여부를 놓고 한때 고민했으나 결국 경호상의 문제로 철거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나 가정해 보자.
여러 차례 수리를 하여 누더기가 된 보잘 것 없는 건물이 대통령을 지낸 인물의 사저로서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신들의 충정 어린 건의가 DJ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경호상의 문제라면 신축건물에 기거하고 그곳(건평30평, 단층)은 기념관으로 보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영삼씨도 구 사저를 허물고 신축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만이 기념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이승만이 강제 하야 후 하와이 망명 전 수개월 거주한 곳으로 사저라기에는 그 역사성이 희박하다. 전두환, 노태우 두 분은 필히 그 사저를 가감 없이 기념관으로 보전 할 것을 권유한다.
그곳이 독재자의 호화저택이든 농부 출신의 초가 삼간이든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감을 갖는 상당수의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건물이야말로 오랜 세월을 두고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그곳에 거주했던 인물들은 싫건 좋건 우리 국민에 의해 직간접으로 선택 된 우리들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국민각자의 가치관에 맡길 일이다.
10.26의 비극적 현장(궁정동 안가)은 반드시 보전했어야 할 산 역사의 현장이다. 수많은 반체제인사들이 거쳐간 구 안기부 핵심 건물도 보존됐어야 한다. 남산 중턱에 있던 일본 신사의 건물도 보존되었더라면 과연 그 건물이 오늘 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먼 훗날 우리자손들이 일제 침략의 상징물을 깨부수지 않고 보존한 조상들을 민족 정기도 없는 얼간이라고 비웃을까 궁금하다.
세계 도처에 타민족의 침략과 지배의 흔적은 수천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존되고 있다. 치욕의 역사는 구축물을 제거한다고 바로 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구축물을 매일 쳐다 보며 그 구축물들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적 역량을 배양함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유명한 안네 프랑크 기념관이 있다. 2차대전때 유태인 학살을 피해 숨어 있던 어린 소녀 일가족의 거처이다. 허름한 내부와 미로처럼 연결된 낡은 목조 건물이다.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안네 프랑크의 일기’만이 전시돼있고 1층에서는 2차대전 중의 유태인 박해 기록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뿐이다.
화려함이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이 건물을 매년 수십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줄서 기다려 관람하고 있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사저들은 한민족 반세기의 파란만장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DJ의 사저가 청주교도소의 감방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왜 마구 파괴하는가. 우리의 역대 대통령은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만을 신봉하는 것인가. 아니면 edifice complex(거대건축지향)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별 수 없는 보통사람들이기 때문인가.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에 동교동 사저의 철거는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또 하나의 아까운 관광자원이 무지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장득성CHANG & ASSOCIATES 대표
※본 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