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굴렘이라고 하는 프랑스의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 70년대 중반에 30대의 민선 시장이 선출되었다. 그 새내기 시장은 마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앙굴렘은 포도재배도 안되는 곳이었다. 마을에 경제적 수입을 가져오는 이렇다할 산업도 없었다.
그 젊은 시장이 생각해 낸 앙굴렘 발전 방안은 상당히 의외의 것이었다. 앙굴렘에서 만화축제를 열자는 것이었다. 마을사람 모두 그의 의견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축제가 시작된 지 5년만에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 현지에 내려가 격려를 하였다.
그후에는 프랑스 대통령의 약속으로 앙굴렘에 국립 만화학교가 지어졌다. 미국과 일본에 의해 주도되던 만화시장에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운 앙굴렘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이제 앙굴렘은 전세계 출판만화 관련자들의 메카가 되어버렸다. 만화와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나 앙굴렘에 가보고 싶어한다.
앙굴렘 만화축제는 일년에 단 며칠 열린다. 그러나 연중 계속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앙굴렘은 크게 변했다. 과거의 무명도시. 그다지 살고 싶지 않았던 곳. 그러다 보니 앙굴렘에는 상권도 형성이 안되었었다. 그러나 축제 이후 문화적인 정취가 조성되면서 도시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국제화된 도시로서 연중 상설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마을에 투자가가 몰려들었다. 앙굴렘은 살고싶은 마을로 바뀌었다. 축제 하나 성공시켜 마을의 팔자가 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앙굴렘 축제로부터 아비뇽 축제, 에딘버러 축제에 이르기까지 잘 나가는 축제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축제에 필요한 대규모 신규투자보다는 축제의 내용에 내실을 기한다는 점이다. 축제에 드는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성당, 학교, 시청 등 기존 건물이나 도시공간을 축제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축제의 내용이 강조되는 선진국의 축제와는 달리 우리 나라의 경우는 축제의 외형이 중시되고 있다. 문화축제에 ‘엑스포’라는 전시회적 명칭을 부여하는 접근을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전국 주요 관광도시가 엑스포라는 귀신에 씌워 있는 듯하다.
엑스포라는 단어가 붙다보니 개최지역의 고유문화와 분위기는 뒷전에 밀린다. 이러면서 기형적이고 어색한 대규모 축제가 남발되게 된다. 행사가 끝나면 적막이 감도는 썰렁한 공간에 기괴한 모습의 행사장만 남는다. 이는 분명, 엑스포라는 세 글자에 한국적인 진수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아닌가.
축제가 내용 면에서 성공적이면 축제의 수입도 많기 마련이다. 영국의 성공적인 문화예술 축제, 에딘버러의 경우 투자대비 수입의 비율이 5를 넘는다. 몇 백억 원을 들여가며 치르는 경주 문화엑스포나 속초관광박람회, 그리고 제주 섬문화 축제, 이천 도자기 엑스포의 경우는 어떨까. 엑스포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분석적인 평가는 각 행사에 흠집만 내는 수치를 양산할 것이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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