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내와 네 살짜리 딸을 데리고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공항에 내리면 다가오는 이국적인 풍경, 푸른 실루엣의 한라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독특한 생활양식, 산과 초원과 청정해역이 어우러져 관광지로서 제주도만큼 경쟁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제주도는 요즘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문제로 시끄럽다. 제주도 당국은 관광객 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와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케이블카 설치를 포기할 수 없다며 강행의사를 밝히는데 반해 시민단체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도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메가리조트 개발, 국제자유도시 개발, 송악산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을 훼손하고 주민의 뜻에 반하여 만들어진 관광지가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어려운 경제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이 왜 자연훼손을 가져오는 대단위 개발밖에 없을까. 자연환경을 지키면서 살길을 찾아보자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당신 말이 옳긴 옳다. 그러나 우리는 이대로 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기 변명이다. 이제 리조트개발의 거대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관광시장에서 그나마 제주도가 비교우위를 갖는 자연자원과 환경을 포기한 개발정책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제주도를 구석구석 다녀 보면 관광지로서 개선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관이 뛰어난 송악산에는 무허가 비닐 천막 식당과 호객행위가 볼썽 사납고, 중문단지는 밤이 되면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는 거대한 숙박단지로 변한다. 한라산의 자연과 원시림을 기대하고 찾은 자연휴양림에는 전체 산책로가 새빨간 아스콘 포장으로 뒤덮여 있고, 기념품은 하루방과 벌꿀 일색으로 살만 한 것이 없다. 제대로 된 안내지도 한 장 구하기 어렵고, 들리는 식당은 고객이 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철저히 일회적이다.
그리하여 과거 관광객들은 이놈의 식당, 이놈의 섬에 다시 오나 봐라 이렇게 다짐하면서도 그 다짐을 지키는 쪽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선택의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이 가능한 요즘, 금쪽같이 귀한 제 돈 써가면서 그 모든 불친절을 감내하며 개발로 망가진 제주를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다. 오늘날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어려운 경제탓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자승자박이요, 변화를 읽지 못한 아주 당연한 결과다.
조금이라도 장구한 눈으로 본다면 대규모 개발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서귀포의 한 소규모 펜션은 특급호텔에서 느낄 수 없는 가족같은 따뜻함과 손수 담은 젓갈과 무공해 야채로 투숙객을 감동시켜 비수기인 지금도 3개월치 예약이 밀려 있다고 한다. 소비가 침체된 지금 획일화된 설비투자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작은 변화를 통해 보다 큰 매력을 만들어 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큰 것 하나를 만들기 보다는 작은 것이 모여 큰 하나가 될 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연구원 serieco@seri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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