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션 투어(mansion tour)라….’ 처음엔 그저 그랬다. 간단히 말해 집 안팎 이곳저곳을 둘러본다는 건데 무에 그리 볼 게 많다고 남의 집구경에 ‘투어’라는 꼬리표까지 붙였을까, 좀 유난을 떨지 싶었다. 그런데 뉴포트의 맨션들이 바로 코앞에서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자 그런 생각이 싹 물러났다.

꿈의 궁전으로의 초대
뉴포트의 맨션을 둘러보기 전에 몇 가지 상식을 챙겨보자. 아직까지 약간 생소한 이름의 뉴포트는 로드 아일랜드주에 위치한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이기도 한 로드 아일랜드는 매사추세츠와 코네티컷 그리고 뉴욕주에 접해있으며 수도는 프로빈스다.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첫 발을 내딛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메인, 버몬트, 뉴햄프셔,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컷 등의 인근으로 퍼져나가 정착했다고 해서 이들 6개 주를 묶어 ‘뉴 잉글랜드’로 통칭한다.
뉴포트(Newport)는 이름에서 풍기듯이 로드 아일랜드주 남쪽에 자리한 항구도시. 미국의 토박이 부호들이 날씨와 경치가 양수겹장으로 좋은 이곳을 가리켜 으뜸가는 휴양지로 꼽았기 때문에 미국 최초의 휴양지로 불린다. 최근에는 아메리카 컵 등의 각종 요트대회와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 점차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다.

거대함과 화려함, 넋을 빼다
이제 맨션 투어를 시작해 보자.
뉴포트의 맨션들은 10여채 가량. 그 중에서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가장 잦은 마블 하우스(Marble House)와 브레이커스(Breakers)에서 잠시나마 극도의 호사스러움을 맛보자.
제임스 카메룬의 영화 <트루 라이즈>의 촬영장소로 사용되었던 마블 하우스. 명칭에서 눈치챘겠지만 최고급 이태리산 대리석을 주재료로 지은 맨션이다. 재료만 최고급이 아니라 당대의 저명한 건축가 리차드 모리스 헌트가 지은 설계도 일품인데 고딕, 로코코, 바로크 등의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마블 하우스는 생일선물이었다. 우리네처럼 홋홋한 살림살이에는 어림도 없는 이같은 일은 윌리엄 W. 반더빌트라는 미국의 철도 재벌에 의해 자행(?)됐다. 그는 1892년 아내 알바의 생일을 맞아 이 대저택를 선물했는데 사람사이의 일이 조석변이라고 두 사람은 후에 파경을 맞았고 각자 새로운 배우자를 만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알바의 새로운 둥지가 마블 하우스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의 또 다른 맨션이었다는 점. 두 번의 결혼이 심적으로 얼마만큼의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어루더듬어 볼 길 없지만 외형상 알바는 엄청나게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했음에 틀림없다.
뉴포트의 맨션을 묘사하면서 ‘극도의’, ‘엄청난’이란 형용사를 자꾸 끌어오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이 정도의 형용사로도 잘 전달될까 의문스럽기만 한데, 실제 맞닥뜨려 보면 정말 그 규모의 거대함에, 장식의 화려함에 할 말을 잃는다.

마블 하우스와 브레이커스
마블 하우스의 경우 우선 서재, 침실, 거실 등 방 개수만도 52개에 달한다. 외부 교회로 나가는 게 번잡스럽다는 이유로 건물 내부에 가족 예배용 교회도 있다. 복도와 각 방은 진귀한 골동품, 최고급 벽난로,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등 19세기의 고풍스러움으로 넘쳐난다. 천장은 또 얼마나 높고 화려한가? 약간 과장하자면 고개를 들어 천장에 시선을 박는데 수 초의 시간이 걸린다.
반더빌트 가문은 억세게 부자였던 게 틀림없다. 마블 하우스 이외에 지금 뉴포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맨션인 브레이커스도 이 가문의 소유였으니 말이다. 브레이커스는 순탄치 않은 사연을 지녔다. 1892년 화마가 한 번 덥친 후 3년 뒤 석조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설계는 역시 리차드 모리스 헌트의 몫.
16세기 북부 이탈리아풍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브레이커스는 마블 하우스보다 방의 개수가 더 많다. 무려 70개에 이른다. 그러나 브레이커스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위치 때문이다. 저택의 뒤쪽이 바다에 면하고 있어 풍경이 운치가 있다. 맨션 투어를 하면서 이따금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도 가없는 감상을 전한다. 어찌보면 궁벽한 이 곳에 거대 맨션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순간이다.
뉴포트에는 마블 하우스와 브레이커스 이외에도 로버트 레트포드와 미아 패로가 주연을 맡았던 <위대한 갯츠비>의 촬영지 로즈클리프(Rosecliff), 지난 번에 소개했던 케네디 전 대통령과 재클린의 여름 별장 해머스미스 팜(Hammersmith Farm) 등 유명 맨션들이 제각각 장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뉴포트 글·사진=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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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상력은 모락모락
몇 가지 팁. 뉴포트의 모든 맨션들은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맨션이 오래된 데다 비싼 물품이 많은 관계로 개인 투어는 안되고 일정 인원이 차야만 안내원에 의해 투어가 진행된다. 또 맨션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시기가 다소 차이가 나므로 미리 확인을 해야한다. 맨션의 입장료 역시 차등이 있는데 보통 2∼3개씩을 묶어 패키지로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단, 많이 보려고 욕심을 내는 건 금물. 익히 강조한 대로 드넓은 맨션 하나를 보려면 너끈히 1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보통 2개 정도가 적당하다.
뉴포트의 맨션 구석구석을 훑다보면 ‘이 큰 저택을 대체 어떻게 관리했을까’ ‘얼마나 많은 하인들이 상주했을까’ ‘너무 적막하진 않았을까’ 하는 따위의 의문을 품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문’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 ‘자답’할 수밖에 없다.
이 거대 맨션들은 연중 사용됐던 곳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여름 한철 휴가를 보냈던 별장일 따름. 주인과 그 식구들이 머물지 않는 동안에는 보통 5∼6명의 하인들이 관리를 하고 휴가철에는 주인과 함께 동행한 하인들까지 합쳐 40∼50명의 하인들이 품을 팔았다고 한다.
하인들의 노고는 저택의 크기만큼이나 대단했을 게 틀림없다. 까탈스런 주인이 아니더라도 그 큰 저택의 이곳저곳을 몇 차례 왕복하는 것만 해도 숨이 찼을 게 뻔하다. 고개를 숙이고 잰걸음을 놀리는 그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좀 더 세밀한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위안거리는 있었을게다. 짬짬이 주인들의 흉도 봤을 터이고, 동료들끼리 이웃 맨션들의 주인은 어떻고 하인들은 어떤 대접을 받는다는 등의 수다도 떨었을 것이다. 게 중에는 유난히 넌덕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있었을 법하다. 왜 아니겠는가. 빡빡하지만 다정하고, 힘겹지만 질긴 게 민초들의 삶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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