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오스트리아 잘츠버그. 한 명의 뮤지션에 인해, 그리고 한 편의 영화로 인해 한 나라가 전세계인의 머릿속에 뚜렷한 이미지를 간직한다는 것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 그만큼 문화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보다도 쉽게 국경을 초월하는 위대함을 지녔다.

예술의 향기는 눈처럼 쌓이고…
유럽여행에서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는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선입견이 잘츠버그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을 이해하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생전 가야 클래식 한번 듣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해도, 잘츠버그는 관광객들을 소외시키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쪽의 로마’라고 불릴 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궁전, 연중 끊이지 않고 개최되는 음악회,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명소가 되어 버린 쇼핑가,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 이런 공간에 발을 딛는 순간, 자연스럽게 감지된다. 도시의 숨은 역사와 축제의 분위기, 예술의 향기는 고전과 낭만의 도시라고만 여겨지는 이곳에도 동시대의 사람들이 락음악을 즐기고 인터넷을 즐기는,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이므로.
여기는 잘츠버그의 신시가지 미라벨 궁전. 하루를 온전히 투자한다 해도 비엔나에서 잘츠버그까지의 왕복 6시간이 빠지고, 식사시간까지 계산하니 이 아기자기한 도시의 매력을 만끽할 시간은 짧다. 바로크 박물관, 모차르트음악원, 마리오네트 극장, 주립극장, 모차르트가 1773년부터 1780년까지 살던 집(모차르트 사운드& 필름 박물관)등 여러 명소들을 지척에 두고도 오전시간동안 짬을 내어 갈 수 있었던 곳은 미라벨(Mirabell) 궁전뿐이었다.
저 멀리 잘자흐(Salzach)강 건너편, 우뚝 솟아있는 호엔잘츠버그(Hohensalzburg) 요새가 병풍처럼 둘러쳐지는 미라벨 정원의 풍경은 한 겨울임에도 독특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가의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를 때 나오는 그 곳이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궁전의 음악회장은 어린 모차르트가 관중을 사로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천연대리석으로 만든 이 음악회장은 아직도 매일 매일 궁전음악회(Schloss Konzerte)가 개최되기도 하고, 낭만적인 결혼식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꽃이 시든 정원에서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산책을 하는 연인들을 보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다른 뜻이 아니구나 싶다.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궁전에는 안팎으로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유명하다. 궁전내부의 계단 난간과 벽면, 그리고 정원 한쪽에 쭉 둘러서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을 보자니 기내에서 읽었던 신화집의 내용들이 더 복잡하게 엉켜와 괜시리 조각상과 눈싸움만 했다.
슈타트 다리(Staatsbrucke)를 건너 구 시가지로 접어들자 일행은 줄줄이 사탕처럼 가이드를 따라 시내를 이리저리 누볐다. 잘츠버그는 알프스에서 흘러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는 잘자흐(Salzach)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신’이라는 말은 ‘새로 들어선, 나중에 만들어진’이라는 연상을 불러오지만 종전의 미라벨 궁전만해도 4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잘츠버그는 가장 먼저 로마의 문명을 받아 들여 일찍이 기독교 도시가 된 이후 대대로 대주교의 영지로 제후를 겸한 대주교의 통치를 받았다.
오후의 시내관광은 좀 더 가속이 붙었다. 여기는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생가, 여기는 주교좌 성당, 부활절마다 잘츠버그 음악제가 개최되는 축제연주장, 분수가 아름다운 레지던츠 광장. 여름 축제가 벌어지는 돔 광장,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면 저 멀리 가 있는 일행을 좇으며, 속사포처럼 내뱉는 설명을 귀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리 지도를 구해 꼼꼼히 지명을 익혀두라는 것. 한집 건너 한집마다 명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골목골목마다 유명 레스토랑, 상점, 호텔이 빽빽하다. 거리거리가 이름난 관광지요, 시 전체가 카톨릭 흥망성쇠의 역사를 담고 있다. 미리 알아두면 더 좋겠지만, 잠시나마 지도를 눈 여겨 봐두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재미는 두배, 세배 늘어난다.
본격적인 구시가지의 투어는 모차르트 생가(Mozart Geburstchaus)앞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된 이 집에서 모차르트는 1756년 출생했고 1781년까지 잘츠버그 곳곳에서 살았다. 모차르트 집안의 가계도와 가족 유화, 그의 오페라 무대 모형들과 그가 사용하던 오리지널 악기, 그밖에도 진주단추, 머리카락, 반지, 악보, 피아노, 손가방, 바이올린 등도 남아 있었다. 이 밖에도 잘츠버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카랴얀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곡자 모어 신부,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왕년의 바리톤 명가수 리하르트 마이어를 탄생시켰고 그들의 생가를 보존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는 게트라이데가세(Getridegasse)는 이름난 쇼핑가로 상점과 식당의 아름다운 간판 조형이 이채로운 곳이다. 거리로 불쑥 불쑥 팔을 벌리고 있는 이 간판들은 어떤 호객꾼들의 손짓보다 효과적이다.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라 다국적 페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마저도 그 빨간고 노란 특징적인 간판대신 철제 간판을 걸고 있었다. 이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면 묀히스베르크(Moenchsberg)로 올라갈 수 있다. 잘츠버그의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죽이는’ 곳이지만 건물 옥상 올라가듯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서 가는 길은 간단하다. 난간에 올라서 찍는 위험한 곡예까지 연출하며 몇 장씩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야 시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꼭대기에는 빙클러(Cafe Winkler)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지만 마침 쉬는날이었다.

어둠이 내리는 거리 마차여행 또다른 멋
다른 일행이 멜랑지 커피의 냄새를 따라 카페로 들어간 사이, 오스트리아에 초행길인 3인방이 남았다. 우리의 현명한 선택은 더 이상 다리를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까부터 마음을 당기던 마차여행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레지던츠 광장을 종점으로 삼고 있던 여러대의 마차들은 어느새 철수하고 두 팀 정도만 남아 있었다. 말 녀석이 좀 냄새를 풍기긴 하지만 덜컹임에 엉덩이를 보호하라고 놓여진 담요에 푹 주저앉으니 마냥 즐겁다.
거리 풍경을 더 잘 보려는 욕심으로 비좁은 마부아저씨 옆자리를 차지했는데, 난이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화장실과 공공장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말 녀석의 뒷꽁무늬를 정면으로 봐야한다는 난처함만 빼면 전차와 택시와 버스가 복잡하게 오가는 거리 한가운데를 마차를 타고 누비를 맛은 꽤 훌륭하다. 막마차를 탄지라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30분 정도의 마차 여행은 구석구석 돋보기 여행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미술품 감상하듯 한 걸음 떨어져서 전경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영어를 띄엄띄엄 하는 마부 아저씨는 질문에 자꾸 동문서답을 하지만 저건 무슨 박물관, 무슨 미술관, 무슨 성당 하는 식으로 간단한 안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스트리아 잘츠버그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KLM네덜란드항공 02-723-4224
오스트리아관광청 02-773-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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