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매년 겨울 방학 때면 당시 대전에 살던 나는 산업화의 기치 아래 몸살을 앓던 도시를 벗어나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가서 한달씩이나 추억을 만들어 오곤 했다. 칠순의 연세에 비해 기력도 좋으시고, 허리는 다소 구부정하셨지만 항상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셨던 할머니를 나는 물론 다른 손자손녀들도 무척 좋아했다.
70년대 중반 어느 해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해 겨울 방학은 논농사를 짓던 할머니와 큰집 식구들에게 상당한 고초를 안겨준 때였다. 추수를 앞두고 병충해 등의 여러 재해가 작물에 상당한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었다.
흉작의 들판에 무서리는 어김없이 내리고 겨울밤의 삭풍 소리마저도 더 없이 살갑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어느 순간엔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젠 죽어야지” 하시면서 탄식의 목소리를 내셨다. 오랫동안 농사일을 거들어 오시고 경작의 결과에 따라 살림살이의 씀씀이를 재어 오신 연륜으로 볼 때 그 해엔 다음 수확기까지 수월하게 지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을 여러 현상 때문인지 할머니의 말씀은 나에게 진정 비탄의 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개학을 앞두고 대전으로 돌아올 무렵, 할머니는 필터 없는 새마을이란 담배 대신 필터 있는 조금 비싼 담배로 바꿔 피우시고, 입으로는 ‘죽어야지’ 하시면서도 활기있게 다니셨다.
장성한 손자들이 조금씩 모아 드린 쌈짓돈으로 맛있는 것 사서 드시고 5일장이 설 때는 떡 한 접시, 엿 가락 얼마라도 사서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 쓰셨던 것도 당신이 느끼고 있을 풍요롭지 못한 그 해 작황의 쓰라린 피폐감을 이겨보려 했던 일련의 모습들이었다고 확신한다.
철이 들면서 그것은 할머니의 새로운 의지 표현의 한 단면이었으며, 대학에 와서는 당시 할머니의 표현 방식이 인간 의지 표현의 한 방법인 바로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임을 배우게 되었다. 죽을 지경이다 혹은 죽어야지하며 현재 상황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표현한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고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살면서 수없이 느끼게 된 것은 물론이다.
얘기를 바꾸어, 새천년 밀레니엄의 희망을 눈 앞에 앞두고 가슴 설레였던 1999년 12월이 바로 얼마 전 같은데 실로 감쪽같이 일년이 지났다. 경제 지표의 희비 쌍곡선에 따라 희망과 탄식이 교차되었던 지난 한해를 영원히 뒤로 보내고 다시 2001년의 초두를 맞이한 것이다. 작년 초기에 여행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며 직원도 보강하고 상기된 얼굴로 새로운 지역 판매 구상에도 열심이던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친구가 어렵게 작년 하반기를 보내고 나서는 여러 번이나 회한의 탄식을 쏟아 냈다.
하지만 곧 인터넷 여행 사업이 어떻고 내년에 무얼 할 것이며, 열 몇 명되는 아줌마 단체가 있는데 여권 사진은 처녀적 사진을 붙여 놓고 최근 것이라고 우긴다는 둥 금방 농담에다 무슨 구상을 늘어놓고는 가버린다. 기지개를 펴고 의욕을 보이던 우리 업계 일부, 아니 그보다 많은 분들의 모습이 아닐까?
겨울 성수기가 어김없이 와있다. 항상 열심히 해왔고 그 속에서 번성과 좌절의 부침을 같이 나누었던 여행업계 여러 지인들의 자조(自嘲) 섞인 얘기를 들을 때면 여느 때처럼 ‘오늘 저분은 역설적 의도로 표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싶다.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 차장 schang@at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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