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낯설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때 처녀출전으로 3위를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킨 나라 그리고···. 더 이상의 단서는 쉬이 찾을 수 없다.

러시아 독립국가 중 하나일 테지 하는 억측도 해보지만 역시 빗나간다. 크로아티아는 그렇게 신비와 미지의 영역에 아스라하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크로아티아라는 미지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신흥 축구 강국’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크로아티아는 1906년 세계 최초로 볼펜과 만년필을 발명한 나라다.

17세기 때 크로아티아 병사들은 서로 아군임을 나타내기 위해 목에 삼각건을 두르고 다녔는데 이는 지금의 넥타이가 됐다.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얼룩 점박이 개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에 앞서 가장 강렬한 실마리는 핏빛 낭자했던 독립전쟁이다.

크로아티아는 지난 91년 6월 인종 및 종교갈등으로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 90년대 중반까지 유고 정부군 및 세르비아계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독립전쟁 혹은 내전을 치렀다.

지난 96년이 돼서야 화약 가루는 잔혹한 불 토해내기를 멈췄으며, 총포의 차가운 굉음 또한 사그라졌다. 그러나 약 30만명에 달하는 생명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애별리고(愛別離苦)를 남기고 스러졌다.

이곳 저곳에 깊은 슬픔을 새겼다.

이 때문인지 크로아티아는 막상 말로 발 딛기 두려운 곳이었다.

총성 멎은 지 이미 오래 전이지만 선입견이랄까,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랄까, 아직도 전쟁 중인 듯한 막연한 예감에 안전에 대한 걱정이 끝간 데 없이 이어졌다.

또 만약 볼거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전쟁의 쓰라린 상흔뿐이려니,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뿐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발 딛는 곳마다 애초의 예상을 거뜬히 뒤엎고도 남았다.

크로아티아는 유럽 중남부 발칸반도의 아드리아해 동부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은 헝가리, 북서쪽은 슬로베니아, 동쪽은 세르비아 공화국, 남쪽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과 접해 있다.

우리들에게는 낯설기만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름난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크기는 한반도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하지만 해양과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조건과 복잡다단한 인종 및 종교적 배경 때문에 많은 역사적 부침을 거듭해왔다.

그래서 크로아티아는 더욱 다채롭고 복합적이며 지레 겁먹은 이방인의 눈에는 한 층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드브로브니크(Dubrovnik)는 부러움과 충격(?)을 뛰어넘어 신경질적인 얌심마저 자아낸다. 몽환의 세계로 안내한다.


두브로브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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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위치한 미항 두브로브니크, 이곳은 돌(石)이 빚은 절대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는 애칭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크로아티아 여행은 끝내 절정을 이루고야 만다.

두브로브니크가 아드리아해의 보석이고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면 그 드브로브니크의 정수는 바로 현지인들이 ‘올드시티(Old City)’라 부르는 옛성이다.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때는 667년. 계획도시로 13세기에 완성된 두브로브니크는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베네치아 공화국과 함께 아드리아해의 강국이자 자유무역도시로 성장했다.

올드시티는 두브로브니크의 모든 역사적 부침과 자취가 새겨진 곳이다.

11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축조된 2km에 이르는 원형 성벽이 성 안의 대성당, 수도원, 분수대, 궁전, 종탑 등 각종 역사적 건축물들을 감싸고 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에서부터 1667년 대지진 발생 때까지의 ‘두브로브니크 황금기’에 건축됐고 현재의 뼈대를 갖췄다.

지난 91년과 92년, 내전의 와중에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지만 현재는 시민들과 ‘두브로브니크 재건 기금’의 노력 덕택에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스트라단(Stradun)이라 불리는 길이 290m의 중심도로는 올드시티를 둘로 나눈다.

스트라단을 따라 완보하면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스폰자 궁을 비롯해 ‘한달살이 집정관’의 집무실이었던 렉터 궁, 중요문서 보관실로 쓰였던 대성당, 프란체스코 수도원, 베네치아의 침략으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구한 수호성인 성 블레즈를 기리는 광장, 오란도 동상, 16개의 두상조각이 인상적인 오노프리오 분수, 미술관 등 기나긴 시간을 두브로브니크와 함께 해 온 건축물들이 흥건한 문화적 감동을 선사한다.

올드시티가 천년 세월의 웅숭깊은 입김을 뿜어낼 수 있는 이유는 성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리라. 호락호락 변치 않는 돌의 우직함과 영겁의 세월이 빚은 걸작이다.

전쟁의 암울한 기억은 빛 바랜 지 이미 오래 전이다.

중세 문화를 간직한 유럽의 도시치고 그렇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며 딴죽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조지 버나드 쇼’는 “지상천국을 찾는 이가 있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썼을까. 지난 91년 10월 유고 내전이 터졌을 때 ‘장 도르메송’ 프랑스 학술원 회장은 왜 “유럽 문명의 상징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포격 하나 중지시키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느냐”며 전쟁의 현장으로 달려가 유럽 선진국의 지식인들을 질타했을까. 프랑스의 어느 극작가는 왜 “두브로브니크는 베니스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다”고 고백했을까. 실제 와 본 자만이, 직접 느낀 자만이 그 진정한 답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수긍할 수 있으리라.

한국의 경복궁과도 같은 올드시티. 그곳에 사람이 산다.

4,000명씩이나. 골목골목 빨래가 널려있고, 상점이 있다.
블레즈 광장에서는 재래시장이 선다. 노천카페에서는 주민과 관광객이 맥주를 들이킨다.

골목 후미진 곳의 재즈카페에서는 갖가지 선율의 재즈음악이 흘러나온다. 여름에는 51년 역사의 떠들썩한 축제가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창조,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런 동거, 올드시티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특히 밤 풍경이 압권이다.
무수한 발걸음에 반질반질해진 중심도로 스트라단이 은은하게 반짝거린다.

햇살을 머금은 아드리아해의 수면처럼 수은가로등의 빛을 퉁겨낸다. 비라도 약간 흩뿌린 날에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빛이 일렁인다. 인간을 압도하고 만다.

한여름 두브로브니크는 휴양낙원이 된다.
스킨 스쿠버, 스노클링, 요트 등 다채로운 해양스포츠는 물론 무인도에서의 은밀한 누드선텐도 즐길 수 있다.

또 그림같은 해변 풍경을 자랑하는 인근의 해안도시 카브타트와 전통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그로쉬치 민속마을 등도 아드리아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다.

크로아티아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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