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즈믄해의 시작이라고 그리도 떠들었던 2000년의 허망한 끝자락에서 한 통의 초대장을 받았다. 라스베이거스·네바다주 관광청 서울사무소가 관광기자단을 위해 베푸는 송년잔치.

이제 어딜 가나 어느덧 원로(?) 측에 끼게 되어 참석하기가 찜찜한데 ‘휘황찬란한 라스베이거스의 밤’이라니. 그런데 주최측이 요구하는 ‘참석복장(Dress Code)’인 ‘청바지와 셔츠’가 흥미를 끌었다.

1850년대 이래, 미국 서부의 광부, 철도원, 카우보이들이 작업복으로 입기 시작해 요즘은 전세계 패션이 된 블루진. 어느 사회학자는 청바지를 일러 ‘자유를 위한 문명인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했다.

이 기회에 청바지 입고 한번 뒤집어져 볼까. 그래서 나는 구랍(舊臘) 28일 저녁, 명동 밀리오레에서 실로 20년 만에 청바지 한 벌을 사 입고 하얏트 호텔 2층 ‘로터스 앤 튤립 룸’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 하면 환락과 도박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라스베이거스가 ‘미국 대도시 중 가장 살기 좋은 곳(Federal Reserve Study, 1999)’으로 뽑혔다는 것과 ‘포춘(Fortune Magazine)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사업하기 좋은 10대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박과 유흥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아낌없이 지역사회 개발에 쏟아 부은 라스베이거스의 사례는 이제 내국인들에게도 카지노를 개방한 강원도 정선군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청바지와 카우보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모의 로데오, 컨트리 뮤직. 주최측은 미국의 관광 이미지들 중 ‘아메리칸 펀(American Fun)’과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언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순진하게도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소시 적에 보았던 서부영화의 아련한 추억들이 살아나는 곳, ‘하이 눈’의 ‘게리 쿠퍼’라든가 ‘고스트 타운의 결투’의 총잡이들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곳, 개척 당시의 거치른 서부가 살아 숨쉬는, 그런 곳을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네바다 골짜기의 ‘버지니아 시티(Virginia City)’였다.

그곳이 한 때는 금광의 덕택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는 것과 마크 트웨인이 유명해지기 전 기자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을 우연찮게 발견한 수확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란 애리조나도 콜로라도도 네바다의 버지니아 시티도 아닌 지극히 추상적인 이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두 번째로 지정된 ‘한국방문의 해’이다. 우리에겐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한국 문화의 멋’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그러한 이미지에서 얼마나 멀리 간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우리 고유의 이미지를 되찾아 외국의 관광객들이 ‘조용한 아침’을 찾아 우리의 산을, 고찰을, 바닷가를 헤매이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국 문화의 흥겹고 그윽한 멋에 흠뻑 빠지도록 해야 한다.

magnif@hanmail.net

약력: 서울대, 한국외대 대학원 졸업(국제정치 전공). 월간 ‘자동차생활’ 편집부장. 하나로여행사 대표. 민학회 이사 등 지냄. 사진작가이자 민속학자. 저서 ‘세계여행 에세이’(94년)로 ‘올해의 여행인 상’을 수상.
(주)샤프 사이버여행사업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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