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십리는 원산시 동남쪽 바다로 돌출한 갈마반도에 있는 모래해변을 일컫는다. 정확히는 갈마반도 최북단의 연두평리에서 두남리를 지나 남쪽으로 성북리에 이어지는 약 8㎞의 해변중 모래질이 좋고 해당화와 송림이 우거진 4㎞의 해안을 가리킨다.

예로부터 이곳을 連島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아 여러 섬들이 있었던 곳에 안변의 남대천을 비롯하여 여러 하천의 퇴적작용과 바다의 해수작용에 의해 퇴적물이 쌓여 하나의 반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듯 모래톱 앞에는 연도, 신도, 여도, 옹도 등의 섬들이 수평선상에 떠올라 있다.

함흥에서 출생하여 원산에서 성장하고 이화여전 문과에 다닌 바 있으며 소설가이자 기자로 활약했던 이선희는 1938년 「문장」 7월호에 실은 <돼지순대와 원산항>이란 글에서 명사십리에 얽힌 추억을 다음과 같이 썼다.

더구나 명사십리…거기엔 바위로 된 섬이 있고 흰 모래가 있고 그리고 끝없이 넓은 바다가 있고…그러나 아무도 보아 주는 이가 없어요. 하루종일 다 가다가 간혹 게잡이를 갔거나 조개파러 갔던 여편네들이 목이 부러지게 머리에 짐을 이고 아랫도리가 죄다 물에 젖은 낡은 치마들을 다 치켜들고 떼를 지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면 여편네들이 지어놓고 간 발자국이 물새들의 꽃무늬처럼 된 발자국과 함께 그리어 놓은 듯 덤승덤승 박히어 있지요. 나는 지금 그 바다의 물결소리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울넉울넉하고 눈물이 핑 도는구만요.

송도원이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는 것과는 달리 명사십리는 다소 멀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개발이 늦어진 곳이었다. 송도원이 화려했다면 명사십리는 과수원과 옥수수밭이 가까워 조선인의 냄새를 물씬 풍겼고 몰려드는 조개장수 아줌마들에게서 순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명사십리를 白沙平鋪 또는 鳴沙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전자는 흰 모래밭을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모래알이 곱고 잘기 때문에 맨발로 걸으면 아래에서 마찰음이 부드럽게 울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북한 당국은 송도원에 먼저 각종 휴양, 위락시설을 갖추도록 한 뒤 최근에는 이곳에도 개발에 착수하여 진척을 보았다.

배후에 송림이 울창한 야산과 앞은 얕고 넓은 해변으로 되어 있어 휴양지로서의 입지조건은 송도원에 떨어지지 않는다. 명사십리는 해수욕장으로서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저녁 해질 무렵의 풍경과 5월에 붉게 피어나는 해당화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석양이 되면 옥색이던 바다물빛은 온통 장미빛으로 물들고 다시 주홍빛으로 불붙는다.

그리고 그늘지는 모래가에서 미풍에 흔들리는 해당화 떨기는 꼭 껴안고 입맞춰주고 싶도록 아름답다. 시인 모윤숙은 「명사십리」라는 수필에서 옛날 노트에 썼던 다음과 같은 자작시를 인용하면서 그리움을 달랜다.

머언 수평선에
우유빛 구름 부서져 내리면
내 머리카락에 속삭였느니

『잊지 말라 소녀여! 이 바다 기슭을 너의 고향 너의 핏줄에 대인 내 입술의 노래를 기억해 다오
나만이 너의 흐느낌을 아노라
네 발자국이 남긴 이야기들도 잠든 바닷속에 고이 간직해 두리니』

<金容誠 仁荷大 교수·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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