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옛 낙랑시대, 고구려, 고려, 조선조를 거치면서 축조된 성지와 고분과 사찰등 유적이 많다. 그래서 평양을 찾으면 으레 선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이 순서지만 더불어 대동강변 모란봉 일대의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는 것 또한 뜻깊은 일이다.

선조들이 평양에 웅거하게 된 것은 어쩌면 대동강 하류의 비옥한 평야 외 어우러진 경승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모란봉은 거기에 올라 대동강을 내려다보는 풍류객들로 하여금 시가나 노래를 한 수 읊지 않고는 내려가지 못하도록 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까지도 숱하게 대동강 모란봉 예찬송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상념이 든다. 그러나 모란봉은 시가나 노래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전설과 함께 운명의 이야기를 낳는 주체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도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이광수와 함께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개척자인 김동인의 「배따라기」에서 보여준 모란봉이다.

이날은 삼월 삼짇날, 대동강에 첫 뱃놀이하는 날이다. 까아맣게 내려다보이는 물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요릿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보드라운 봄 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는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오는 조선 아악을 그리게 ,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이채롭게-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어옴, 심지어 사람의 가슴속에 봄에 뛰노는 불붙는 핏줄기가지라도 습기 많은 봄 공기를 다리 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중략)

평양 성내에는 겨우 툭툭 터진 땅을 헤치며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 새기와 돋아나려는 버들의 어음이 봄이 온 줄 알뿐 아직 완전히 봄이 안 이르렀지만 이 모란봉 일대와 대동강을 넘어 보이는 가나안 옥토를 연상시키는 장림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

삼짇날 「배따라기」의 화자가 느긋하게 모란봉의 봄을 즐긴 것은 1920년대 초의 일이다. 이제는 모란봉 일대도 평양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서구식 도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발전된 도시의 인상을 심어주자는 건설계획에 따라 많은 인공이 가해졌다. 북한 당국은 외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평양에 고급관광호텔, 위락시설, 골프장, 문화재 보수, 산업관광 코스 개발, 대동강 유람선 취항 등에 투자를 하는 반면 모란봉, 능라도, 반각도를 포함하는 대동강변에 주민을 위한 휴식공간과 위락시설을 마련했다.

모란봉 아래 대동강 가운데 길게 자리잡은 모래 섬이었던 능라도에는 공원과 축구장이 있고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산책로가 있어 평양시민의 훌륭한 휴식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모란봉의 건너편 봉우리에는 사허정이라고도 불리는 을밀대가 있다. 봄철의 복사꽃, 아지랑이, 선록의 아름다움으로 예로부터 을밀대 봄 놀이가 유명하다.

아우에게 아내를 빼앗긴 뱃군인 「배따라기」의 주인공은 그 봄날, 모란봉에 나타나서 을밀대의, 부벽루의, 기자묘의 소나무와 풀잎에 한스런 배따라기 노래를 두고 갔다는데 지금도 그 노래 소리를 바람결에 들을 수 있을까.

김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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