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이란 역사와 조상을 팔아먹는 산업이다. 좋은 역사와 좋은 조상을 두었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민족의 긍지가 아니라 하나의 돈벌이인 것이다」한때 관광산업이 이런 식으로 정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자. 역사와 조상이 관광산업의 한 부분으로 예나 다름없는 자리를 차지하고있기는 하지만 인공위성이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지금은 이 산업이 과거와 다른 의미의 차원에서 그 참뜻을 찾아야 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시 말해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구촌의 관광개념은 과거와 현실을 혼합하는 복합적인 수순을 밟으면서 과거를 배우고 현실을 소화하는 보다 진전된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국민들의 관광개념은 어떤가. 지난90년 1월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후 우리국민들의 해외 나들이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동창회관광, 계 모임관광, 효도관광, 성지순례관광, 신혼관광 등 각종 명목의 이름을 붙인 해외관광이 봇물이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광행렬이 미지의 세계였던 이국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선진문물을 소화하는 여유를 가지는 생산적인 나들이가 아니라는데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모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한 일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초대손님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가수였다. 이 프로의 사회자가 이 가수에게 최근 외국에 다녀온 소감을 묻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이 가수도 그「잘난 외국」(?)한번 갔다온 것을 나열 식으로 자랑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 가수의 이야기는 태국의 유명한 휴양지 파타야에서 3박4일을 보냈는데 주변풍경이나 시설, 서비스 등이 우리 나라의 동해안 등 국내해변 휴양지보다 훨씬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외화만 낭비하는 그런 종류의 해외여행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휴양지의 관광객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가수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곳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많은 외화를 들여 해외나들이 길에 나섰음에도 수려한 주변경관을 감상하기는커녕 휴양지 주변에 몰려있는 관광상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데 만 정신을 팔뿐 이국의 정취를 만끽하는 낭만파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부 관광객들은 코브라탕 등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먹기에 역겨운 보신용 음식을 들먹이면서도 음식점에서는 그 고장 고유의 음식을 외면한 채 용기라면을 꺼내 뜨거운 물을 별도로 주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미 선진각국 중 어느 나라 국민들도 이와 같은 파행적인 해외여행은 하지 않고 있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자기의 식성에 맞지 않더라도 스스로 방문한 나라의 고유음식을 찾아서 먹어 보면서 이를 음미하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국인들의 해외관광이 이와 같이 저질로 치닫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아직도 건전 해외 관광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전에 어느 나라를 방문하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은 채 관광회사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계획 없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나라에 가면 어떤 유적지가 있고 어떤 첨단시설이 존재하는지 등의 사전지식이 있을 수 없다.

이러니 우리 나라의 해외 관광파들은 이 좁은 지구촌의 어디를 가더라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에만 정신을 팔 수밖에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음은 일부 층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관광객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그 우수성을 자랑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의 유명백화점이나 유통센터뿐만 아니라 좋은 상품에 저렴한 가격의 물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는 남대문시장 등에도 한번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해외나들이 길에 나선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국산품과 외제 중 어느 것이 좋고 가격이 싼 지를 구별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외국에서 외제 선호병까지 발동하면서 어느 특정인이 어떤 물건을 구입하면 이에 뒤질세라 충동구매까지 자행하는 등으로 귀중한 외화까지 낭비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여행길에서 하나라도 배워야겠다는 의식의 부족이다. 부유한 나라나 그렇지 못한 나라나 그 나라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해외관광객들은 우리 보다 가난한 나라에 가면 우쭐대기를 좋아하고 잘사는 나라에 가면 기가 죽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기만 한다.

이런 자세로 관광을 하니 새로운 지식의 터득보다는 어떤 나라를 구경하고 왔다는 불필요한 기록만 남기는 기상천외의 관광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광패턴은 구미선진 각국의 관광객들이 해외관광을 새로운 지식의 터득과 함께 삶의 재충전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고삐가 풀린 해외여행은 총체적 국민정서로 이를 진정시킬 때가 되었다. 해외관광으로 쓰이는 외화가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핍박해지고 있는 경제사정이이를 그대로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들어 1인당 평균해외여행 경비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는 등 호화사치 해외여행이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부유층과 밀수우범자들은 잦은 해외여행을 계속하면서 외제물품을 과다반입하고 밀수까지 자행하고 있다. 많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은 경제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가 불요불급한 해외여행의 자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건전 해외관광의 정착을 위한 대열에 동참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연합통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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