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근거지로 유명해 「임꺽정」「장길산」의 배경되기도 대동강 하류 서남쪽 드넓게 펼쳐진 옥토 끝에 솟아있는 구월산은 행정구역상 황해남도 온율군에 속한다. 최고봉(사왕봉 또는 사황봉)의 높이가 9백54m인 이 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 중에 하나이며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을 모시는 삼신산으로 산 근처 요처에는 단군왕검에 관련된 전설이 많이 깃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골이 깊어 수목이 무성하여서 구월산은 예로부터 단순한 도적의 은신처나 한양 변방 양반의 가렴주구에 항거하고 나선 의적의 근거지로도 유명하였다. 그러하므로 구월산은 의적을 주인공으로 하는 많은 소설의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구월산을 한층 널리 알도록 만든 소설들로는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을 꼽을 수 있다. 조선조 13대 명종때 양주의 백정 출신이었던 임꺽정은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를 횡행하면서 탐관오리를 잡아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주면서 한때 세력을 넓혔던 의적이었다.

홍명희의 「임꺽정」에 의하면, 서울관기에 붙들려 간 서림이 꺽정 일당을 배반하는 바람에 신임 봉산 군수를 죽이려던 청석골패는 관군의 대부대와 접전하게 되고 한때 관군을 물리치기도 하나 결국 지리상으로 불리한 청석골을 버리고 구월산성으로 들어가고 만다.

또 조선조 19대 숙종때 예성강가의 광대패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장길산 역시 「창우」로서 곤무를 잘 하고 용맹하고 몸이 빠른 것이 보통을 넘었던 의적이었다.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길산 일당은 본래 구월산 서쪽 기슭인 재인마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1백여년 전 꺽정 일당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군에 밀려 구월산 깊숙한 곳에다 산채를 옮긴다. 그러나 구월산에 있던 김기란 인물은 구월산이 당장 숨기에는 좋으나 지리 지형상 위험이 있으리라는 것도 지적한다.

『구월산은 동으로 안악, 북으로 온율, 서로 송화, 남으로 문화와 신천에 둘러싸여 있소이다. 동쪽 줄기는 월호산에서 끝나 월당강에 막혀 있고, 서쪽에는 바다에 끊겼으니 위의 네 군이 둘러싸면 마치 조롱에 든 새의 격이요, 연못의 고기와 같소이다. 그러하니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는 일이외다. 그것도 가난하고 약한 백성들의 인심을 얻어놓아야 이나마의 산채라도 그 형세를 불려 나갈 게요』

구월산은 고립된 산이긴 했으나 황해도에서는 가장 깊은 산이므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거 피신처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가까이는 6.25전쟁 때 남북이 서로 밀고 밀리는 가운데 쌍방 각기 유격대의 항전지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와 함께 숨을 쉬어 온 구월산에는 계곡, 연못, 폭포, 못이 수없이 많다. 봄이 만발하는 진달래꽃 가을에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으로 자연이 아름다울뿐더러 이산에는 경승지와 명소가 많아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산 아래에 성당리에는 삼신을 모신 삼성사가 있고 산 속에는 31본산의 하나인 패업사가 있으며 그 건너편 한봉우리에는 단군대가 있다.

5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서 주위 경치뿐만 아니라 멀리 대동강과 황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사왕봉, 고려때 공민왕이 왕비와 함께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상을 모셨다는 정곡사터, 그 터 주변으로 흐르는 4km의 맑은 계곡, 그 계곡 높다란 바위 위에서 환인, 환웅, 단군이 소요했다는 사선대가 다 볼만한 곳이다.

임꺽정이 웅거하여 관군과 일전을 벌였을 것으로 보이는 구월산성은 거란족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서 고려시대에 축성된 석성으로 5m높이에 10리여의 둘레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이 남아 있다. 온율읍에서 동쪽으로 4km 떨어져 있다.

<김용성 인하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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