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성대한 기념행사로 도시 탄생 900주년을 자축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 900여년 긴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인 고색창연한 도시이자 현대에 이르는 모든 시간의 흐름이 층을 이루고 있는 ‘시간의 프리즘’과도 같은 도시다.

자그레브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사바(Sava)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New Town)로 나뉜다. 사바강 아래쪽은 고층아파트와 각종 현대적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로 ‘시간 프리즘’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록 빛은 바랬고 흔적은 희미할 뿐이지만 천년 세월의 프리즘 색띠는 사바강 위쪽의 구시가지에 그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1094년 헝가리의 왕 라디스라스(Ladislas)가 ‘자그레브 교구’를 설립하면서 자그레브는 도시로서의 출생증명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첫 교구목사가 된 라디스라스는 대성당(The Cathedral)도 짓기 시작했는데 이는 1217년에 완성을 보았다. 이후 대성당은 중창과 재건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고 지금은 자그레브의 상징물로 구시가지의 중심에 우뚝 솟아있다.

신고딕 양식의 높이 104m, 105의 첨탑 두 개와 대성당 앞의 마리아와 수호신 상은 자그레브의 상징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대성당 안은 각종 성화(聖畵)와 웅장한 내부 구조, 경건한 분위기 등으로 발자국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인간을 압도하는 성스러움을 발한다. 다만 수 년째 외벽 보수 공사가 끝을 보지 못하고 있어 본래의 웅장함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대성당을 포함해 그 주위는 ‘캡톨(Kaptol)지구’로 불리는데 이 지역에는 대성당과 9세기동안 변함없이 수도사들이 거처해온 30여개에 이르는 작은 궁과 원로원, 교회, 프란체스코 수도원 등 카톨릭 국가 크로아티아의 종교적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요소들이 밀집돼 있다.

대성당 광장과 함께 자그레브의 중심좌표로 역할하고 있는 곳은 젤라치치(Jelacic) 광장. 크로아티아의 전쟁영웅 젤라치치 장군을 기려 이름을 딴 이 광장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자 자그레브 시티투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캡톨지구가 나오고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국회의사당, 박물관, 국립극장, 미술관, 공원, 대학, 상가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양방향 모두 2시간 30분 정도면 너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자그레브가 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비엔나 등 다른 유럽 도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자그레브가 유럽, 특히 중유럽의 문화와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상기하면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자그레브의 진정한 매력은 관문으로서의 역할에서 찾아야 한다. 크로아티아의 다양한 매력으로 향하는 이정표이자 통로인 점을 상기하면 다른 유럽의 도시와 별다를 게 없다는 점 따위는 더 이상 아쉬움이 아닌 특별한 선물이 된다.

◆ 옛 유고연방의 유일한 연결고리 ‘티토’

“사회주의 유고연방의 노동계급과 모든 노동자, 시민에게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 동지가 서거했음을 알립니다” 1980년 5월4일 오후 3시5분. 이 한 발의 뉴스가 구유고 연방의 모든 움직임과 시간을 일순간 정지시켰다.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 속에서 구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이른바 비동맹 전략으로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구로 이뤄진 구유고 연방을 성공적으로 이끈 티토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것이다. 자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의 깊은 존경을 받았던 터라 그의 죽음은 유고 연방 전체의 눈물과 한숨을 자아냈다.

◆ 푸른초원·실개천 쿰로베츠 민속마을

자그레브에서 북쪽으로 약 한시간 가량 울창한 숲길과 드넓은 평야지대를 헤쳐 달리면 슬로베니아와의 접경지역 부근에 쿰로베츠(Kumrovec) 민속마을이 나온다. 우리네 민속촌과도 같은 크로아티아의 전통 민속마을이다.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짙푸른 잔디와 초원을 깔개 삼아 크로아티아의 전통 가옥들이 점점이 앉아있다. 가옥 내부에는 베틀 치는 아낙네, 빵 굽는 촌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가 밀랍인형으로 남아있다. 창고에서는 순박한 농부가 각종 농기계와 씨름하고 있다.

푸른 초원과 가옥 사이사이를 흐르는 실개천은 굽이굽이마다 ‘좔좔좔’ 고요한 노래를 부른다. 우리 안의 닭과 오리 떼는 한가로이 모이를 쪼며 아늑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티토는 바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을 초입에 그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생가 앞에는 프록 코트를 입은 티토의 동상이 서있는데, 동상 앞에는 그를 추모하는 꽃과 촛불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쌓인다.

집 내부에는 그의 가족사진이며 책상, 생활도구, 의류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를 향한 존경은 여전함을 넘어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옛 유고연방에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가 떨어져 나가는 해체과정을 겪으면서 그에 대한 향수는 더욱 짙어졌다.

그는 옛 영광에 대한 그리움이자 현재의 아픔에 대한 위로이기 때문이다. 해체된 옛 연방 국가들을 잇는 유일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쿰로베츠 민속마을 주민들은 베오그라드에 잠든 티토의 시신을 그의 고향인 쿰로베츠로 옮겨오고자 한다. 그의 미망인도 이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이런 바람은 소외된 쿰로베츠 민속마을을 순례여행지로 정착시켜 유명 관광지로 부상시키려는 의도에서도 기인한다.

지난해 5월4일 열린 티토 서거 20주년 추모식에는 1만명에 달하는 추모행렬이 쿰로베츠 민속마을을 가득 채워 흔들림 없는 티토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티토를 고향 땅에 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세르비아 공화국은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할 뿐이다. 그래도 티토의 영혼과 육체를 조각한 쿰로베츠 민속마을은 지금 그 자체로도 경건한 순례지임에 틀림없다. 아련하지만 그의 체취가 가슴 속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 고성투어 지역으로도 각광

쿰로베츠 마을이 들어서 있는 자고르예(Zagorje) 지역은 옛 요새와 바로크 양식의 성들이 즐비하기로도 유명하다. 갑부의 호화 별장이라도 되는 양 성 자체는 물론 주위 경관과 분위기가 호젓하고 평화로워 ‘고성 투어’ 목적지로 각광받고 있다.

16세기초에 건립된 타보르(TABOR) 성과 바라즈딘(VARAZDIN) 성 등 르네상스 시대의 성과 요새의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 다양한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는 궁전 예닐곱 개가 이곳에 집중돼 있다. 호수에 비친 모습이 특히 압권인 트라코스찬(TRAKOSCAN) 성은 13세기에 군사목적으로 건립된 요새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자에즈다(ZAJEZDA) 성과 비스트라(BISTRA) 성 등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옛 성들도 많은 미술품과 유물 등을 간직하고 있어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때문에 이 지역에 산재한 성 및 요새를 제대로 감상하자면 적어도 이틀 밤낮을 꼬박 할애해야 할 것이다.

크로아티아 글·사진 = 김선주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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