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을 덮어버린 눈. 1,0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라도 쏟아지는 눈에는 장사가 없구나. 하루 동안의 폭설과 이어지는 한참 동안의 후유증이 아직도 실감나질 않는다. 미끄러지기도 여러 번. 꾹꾹. 잔뜩 힘줘 걷는 걸음에 온 몸이 뻐근하다. 아무래도 서울에서의 눈은 낯선 손님이다.

◆ 눈 덮인 도시구경
오로라의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는 옐로우나이프. 건물만 나서면 어디든 온통 하얀 빛이다. 겨우내내 켜켜이 쌓인 눈은 중앙선이 그려 있을 차도를 일찌감치 장악해버렸다. 엘로우나이프도 20년만의 대설이라고 했다. 서울처럼 많은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한 번 내린 눈은 겨울이 다 지나도록 녹는 법이 없기에 옐로우나이프의 차도와 인도는 제 색깔을 잊었다.

눈이 이처럼 쌓여있으니 오로라를 볼 수 없는 한 낮에는 스키 타는 재미라도 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옐로우나이프에는 스키장이 없단다. 눈은 있지만 타고 내려올 언덕이 없기 때문. 대신 이곳 사람들은 크로스컨트리를 즐긴다고 한다. 폭설이 내리길래 스키장은 좋겠다 싶었는데 가는 길이 막혀 손님이 더 없었다는 한국 생각이 난다.

크로스컨트리를 할 수는 없고 낮에는 뭐하나 조금 막막하기도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다. 우선 골목골목 눈덮인 옐로우나이프의 명소들을 차를 타고 돌아본다. 이름하여 시티투어. 눈 덮인 박물관, 눈 쌓인 학교 운동장, 경비 삼엄한 다이아몬드 가공 공장을 차창 너머로 본다. 처음엔 버스 서는 곳마다 내려서 둘러보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리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 추워봤자지 우습게 본 찬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온통 눈길이라 버스가 아닌 썰매를 타는 듯 하다. 실제 운전도 조심조심하기 때문에 이곳 시티투어는 여유있게 찬찬히 계속된다.
시티 투어가 막바지에 접어들면 버스는 옐로우나이프 남쪽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를 찾는다. 다리가 아닌 호수 위를 내 집 앞 마당 건너듯 자연스럽게 올라선다. 9월부터 얼기 시작하는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는 25톤 차량까지 건널 수 있으며 제한 속도는 50km. 아예 팻말까지 세워져 있다.

◆ 그레이트 슬레이브호에서의 색다른 멋
시티투어로 가벼운 탐색전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겨울 즐기기가 시작된다. 이색적인 볼거리와 재미를 주는 개썰매 타기가 추천 1순위. 보통 18마리의 개가 끄는 이곳의 개썰매는 카리브라는 이곳 사슴의 가죽을 덮어쓰고 30분 가량 설원을 질주하는 색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한 때는 이 지역의 가장 유용한 겨울철 교통수단이었던 개 썰매는 현지인들에겐 여전히 관광상품 이상의 자랑스러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18 마리 개 중 맨 앞서 달리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놈은 몸값이 1만5,000 캐나디안 달러를 호가하기도 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개썰매외에 스노우모빌에 매달린 썰매를 타고 호수 위의 펼쳐진 눈길을 달리기도 한다. 한 번에 5명도 소화하는 스노우모빌 썰매는 개썰매에 비해 한결 속도감을 더한다. 장소는 광활한 그레이트 슬레이브호. 30분 가량 달려 호수 한 쪽 모퉁이에 당도하면 준비 된 천막에서 따스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거나 직접 스노우모빌을 몰아볼 수 있다.

개썰매나 스모우모빌 모두 주의해야할 점은 방한 장비 갖추기. 옷이나 장갑, 카리브 등으로 감싸는 몸이야 상관 없지만 얼굴은 반드시 고글이나 마스크 등으로 보호를 해야한다. 대책없이 썰매에 올랐다가는 얼굴 위로 퍼붓는 찬 바람에 모처럼의 재미는 고사하고 시종일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마련이다.

◆ 설피 신고 눈꽃 동산 산책
보다 정적인 체험도 있다. 강원도 설피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모양의 스노우 슈즈를 신고 호수 위를 산책하는 것도 운치있는 경험. 눈 덮인 호수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별천지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10여 분을 걸어가다 만나는 자그마한 동산에는 눈꽃이 활짝 펴있다. 설피에 두툼한 방한복 입고 눈꽃까지 만났으니 완전히 딴 세상.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설피가 익숙해지면 설피 신고 빨리 달리기 경주도 해보고 얼음 낚시 하는 법도 듣는다.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톡톡 튀는 재미에 추위도 조금씩 적응이 되간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모닥불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도 먹는다. 모닥불과 어울리는 이곳 간식은 캐러멜의 일종인 머시멜로. 긴 꼬챙이에 머시멜로를 하나씩 찍고 모닥불에 살살돌려 가며 구우면 야들야들한 감촉과 달콤한 맛에 주전부리 싫어하는 어른들도 자꾸만 손이 간다.

◆ 물개 가죽타고 즐기는 진짜 눈설매
잠시 쉬는 사이 또 다른 놀거리가 준비됐다. 말린 물개 가죽을 타고 자그마한 언덕에서 활강하는 눈썰매. 진짜 물개 가죽에 진짜 눈썰매다. 물개 가죽의 앞 부분을 잡고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린다. 어릴 적 동네 야산에서 타던 밀가루 부대 썰매 그대로다. 봅슬레이를 타듯 눈 길도 만들어져 있다.

능숙한 조교의 시범이 있고 난 후 여자, 남자할 것 없이 재미나다고 얼굴에 웃음 꽃이 가득하다. 혼자 타다가 언제부턴가 둘이 타는 커플들이 등장했다. 무게가 늘면 속도감도 스릴도 한층 더한다. 뒤집어 지고 엎어져도 눈밭이라 크게 위험하지도 않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 번만 더 타게 해달라는 한참의 조르기가 끝나고 나면 어느 새 기념 촬영 시간. 물개 가죽을 턱하니 앞에 걸치고 사진 찍는 폼이 한 눈에 봐도 흐뭇한 표정이다.

캐나다=글·사진 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 옐로우 나이프에 가면
● 혹 방한 용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옐로우나이프처럼 추운 지방에서 구입하는 것이 최고다. 워낙 방한 장비를 잘 만드는 캐나다 중에서도 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옐로우나이프에서는 질 좋은 방한 장비를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 스키장이나 겨울 산행에 요긴하다.

● 옐로우나이프에서는 영화 속에서나 보아 온 스쿨버스가 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색깔도 예의 그 노란 색 그대로다. 일반 버스에 비해 자리가 좁은 스쿨버스를 타라고 하면 당장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스쿨버스가 가장 안전하고 난방 능력도 뛰어나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박제된 북극곰이 있고 자동차 번호판도 곰모양을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옐로우나이프에서는 북극곰을 볼 수 없다. 북극곰은 단지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많이 사용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캐나다관광청(02―3455―6063), 에어캐나다(02―779―8792)와 11개 여행사가 공동개발한 고품격 상품인‘로열 홀리데이즈 캐나다’를 이용해 갈 수 있다. 개썰매를 비롯해 모든 선택관광이 포함돼 있으며 호텔은 시내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을 사용한다. 6박7일 일정에 249만원. 2명 이상 출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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