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어떤 여행사이트에 들렀더니 무석에 대해 이렇게 요약해 놓았다. ‘지금은 공업도시로 별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보는 곳.’ 거 참 간단명료해서 좋긴 한데 좀 과하지 싶다. 우리를 안내했던 무석의 가이드 최 선생이 들었다면 틀림없이 분기탱천(憤氣撑天)했을 것이다.

무석(無錫)의 가이드 선생은 연배(年輩)가 꽤나 높았지만 아주 정열적이었다. 첨엔 좀 뚱한 인상이다 싶었는데 웬걸, 마이크를 잡자마자 카랑카랑한 음성에 당찬 입담, 호방한 웃음으로 금방 일행의 호감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 선생은 교포가 아닌 순수 중국인이었다. 우리말을 하도 잘해 그 연유를 개인적으로 물었더니, 군 통역관 시절 연마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로컬 가이드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최 선생 역시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무석은 인구가 435만명이지만 GDP는 중국의 도시 중 9번째에 해당하는 나라의 금고이며, 중국의 10대 관광도시 중 하나고 또 곡창지대다’라는 따위의 뿌듯한 설명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사실 무석은 그동안 인근의 소주, 항주, 상해 같은 이름난 도시들에 둘러싸여 불이익을 받은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지명도에서 상대적으로 처지는 바람에 외래관광객을 유치하는데 다소 고전한 셈이다. 무석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도 최 선생 한 명뿐인데, 서울-남경간 직항편이 취항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알고 있는 듯 최 선생도 “앞으로 한국어 가이드를 양성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三國志의 세계로 빠져들다

누구에게나 ‘내 인생의 책’이란 게 있을 터다. 만일 기자에게 이를 묻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김용(金庸)의 ‘영웅문(英雄門)’과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를 꼽을 것이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 두 책을 거지반 백 번쯤은 독파(讀破)했을 것이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정교하게 직조한 필력(筆力)하며, 그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들, 현재도 아주 유용하기 짝이 없는 처세술(處世術) 등 읽을 때마다 찬탄(讚嘆)을 금할 수 없다.

그 넓디넓은 이야기의 세계에서 유영하다보면 어느새 격한 전장(戰場), 인의예지(仁義禮智)와 무용(武勇)이 빛을 발하는 현장, 권모술수(權謀術數)가 어지럽게 춤추는 동시대에 부지불식간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석에 가면 삼국지(三國志)의 영웅호걸들과 그들이 누빈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94년 말부터 중국 전역에 방송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중앙TV방송국(中央電視臺)의 84부작 드라마 ‘삼국연의’의 야외 촬영장인 삼국성(三國城)이 중국 3대 담수호 가운데 하나라는 무석의 태호(太湖)변에 위치하고 있다. 93년에 건립돼 94년 8월20일에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된 삼국성은 우선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진다.

전체 규모가 35ha로 성안에는 면적이 무려 8만㎡인 오왕궁(吳王宮)을 비롯해 감로사(甘露寺), 칠성단(七星壇), 봉화대(烽火臺) 등 한대(漢代)풍의 각종 건축물들이 산기슭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또 수채(水寨), 원문(轅門) 등의 대형 건축물과 20여척의 전투선 및 도원(桃園), 경기장(競技場),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陳) 등이 있다.

삼국성의 전체 공간배치를 보면 맨 왼쪽에는 주로 조조(曹操)군의 병영과 수채, 맨 오른쪽으로는 오(吳)나라의 주요 건물들이 있고 유비(劉備)의 촉(蜀)나라 건물들은 그 둘 사이에 끼여 있어 위·촉·오 삼족정립(三足鼎立) 시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劉備·關羽·張飛·呂布 엉켜 싸우다

이 삼국성에서는 84부작 드라마 가운데 ‘유비가 손부인을 맞이하다(劉備招親)’ ‘적벽대전(火燒赤壁)’ ‘짚단배로 화살을 빌리다(草船借箭)’ ‘제갈량이 동남풍을 부르다(諸葛亮祭風)’ 등 10여편의 주요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삼국성은 실감나는 영상을 위한 배경으로서의 공헌 이외에 지금은 7,000만위엔에 달하는 투자금을 몇 해 전에 회수했을 정도로 지역 관광산업의 효자노릇도 하고 있다.

삼국성에서 무엇보다 흥미진진했던 것은 포마장에서 매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三雄戰呂布)’라는 공연이었다. 호뢰관(虎牢關)에서 여포와 유비, 관우, 장비가 마주쳐서 한꺼번에 싸우는 이야기를 재현한 것인데, 그러싸할 분장의 배우들이 곡진하게 공연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말을 다루고 창과 칼을 휘두르는 솜씨, 마상(馬上)에서 부리는 재주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워 절로 탄성이 나오고 몸이 움찔거린다.

처음엔 용맹의 헌걸찬 표상인 장비(張飛)가 장팔사모를 꼬나들고 여포와 일합을 겨루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관우(關羽)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협공을 하게 되고, 그래도 제압하지 못하자 끝내 유비가 쌍칼을 불끈 쥐고 이에 가세해 결국 방천화극의 여포를 패퇴시킨다.

특히 네 장수가 한데 엉켜, 달리는 말 위에서 창과 검을 주고받는 절정의 대목에서는 시나브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칠실삼허(七實三虛)라는 ‘삼국연의’가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생짜 흥분을 전하며, 저 먼 중국의 역사 속으로 2001년의 범부(凡夫)를 고스란히 데려가는 순간이다.

중국 무석 글·사진 = 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차이나팩 항공 02-732-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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