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옛 성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라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답게 교회와 회당들이 골목을 돌아서면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 쌓고 허물기를 반복해온 그 어떤 건물보다, 마호메트가 승천하고 예수가 죽었다는 그 어떤 관념의 장소보다 영원한 건 마음속의 성전이다.



〈글싣는 순서〉
1. 성서의 도시, 예루살렘에 입성하다
2.예루살렘 올드 시티
-마음에 쌓는 성전

3. 예루살렘 뉴 시티
-세계의 중심, 예루살렘
4. 갈릴리와 티베리아스
-세상의 바닥, 갈릴리에 엎드려
5.출발 갈릴리!­골란고원을 넘어

예루살렘 구도시(Old City)는 정말 작은 공간이다. 다윗이 통일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에 도시를 세웠을 당시에 비하면 도시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자꾸 자라나 흙을 돋워가며 영토를 넓힌 탓에 꽤나 넓어졌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체 면적이 남한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니, 그 중 하나의 도시 예루살렘, 그 면적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올드 시티’는 또 얼마나 작은 공간이겠는가?

그러나 세 번이나 이 성을 들락날락 했으면서도 나는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일정에 쫓겼으며, 거의 뛰어 다니다시피 했으니까. 그 유명한 바위사원이나 황금의 문이 있는 성전산(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을 비롯해 성안의 이슬람 구역은 거의 발도 들이지 못했고 ‘십자가의 길’의 14처도 띄엄띄엄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며, 감람산의 유명한 교회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본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 기독교 최대의 성전-성묘교회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는 구도시의 골고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고, 땅에 묻혔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그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다.

이 곳의 성지와 수많은 예배실은 로마 천주교회, 아르메니안 교회, 그리스 정교회, 콥틱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디오피아교회 등 6개의 종파에 분할되어 독자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열쇠, 즉 출입권은 이슬람측이 장악하고 있다. 제비뽑기로 예수의 옷을 나눠가졌던 로마병사들처럼, 이 교회안의 팽팽한 소유권 분할은 섬뜩하다.

지금의 성묘교회에는 예수가 고난의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을 것 같은 그런 가파른 언덕의 모습은 없다. 깍이고 변형되어 계단이 들어서고 난간으로 치장된, 그리고 종교적 도구로 가득 찬 그런 인위적인 공간일 뿐이다. 3000년 역사를 지켜온 예루살렘 돌들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 곳’이 ‘그 곳’이라는 걸 누가 증명하겠는가?

커다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관뚜껑처럼 긴 직사각형의 바위, 종부성사(Stone of Unction)의 돌이 눈에 들어온다.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이 위에 뉘어졌다고 한다. 희미한 기도 소리를 따라 오른편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골고타 언덕 정상이 나온다. 2개의 작은 예배당(그리스 정교회와 라틴교회)은 각각 예수가 옷벗김을 당한 곳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곳이다.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쪽에는 피를 흘리는 예수상이 2000년전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다시 내려와 종부성사의 돌에서 왼쪽 복도로 들어가면 예수의 빈무덤(Holy Sepulcher)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 방은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한 세 여인이 ‘그는 살아나셨다’고 말한 천사를 본 곳이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안 쪽 공간에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나는 왠지 안절부절했다. 20대의 절반을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보낸 나인데, 일생에 한 번이라고 생각하며 먼지 쌓인 성서를 들고 20시간을 날아온 나인데. 15년 동안을 매주 상상했던 그 골고타 언덕과, 십자가와 동굴 무덤이 왜이리 낯선지. 인간의 손때로 얼룩져 본래 모습이 거의 사라져 버린 이 모든 것들이 왠지 사막의 신기루처럼 허망하다.

◆ 유대교 최고의 성지-통곡의 벽

통곡의 벽(Western Wall)은 오늘도 온몸으로 유대인들의 통곡을 견디고 있다. 사울이 쌓았던 첫 번째 성전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진 후 장장 100년 이상의 공을 들여 간신히 재건한 제2성전은 다시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됐다. 그리고 그 벽의 서쪽 일부만 이렇게 남아서 2000년 가까이 떠돌이 신세로 나라를 잃고 헤맸던 유대인들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이곳은 20년 가까이나 회도교들에 의해 막혀진 금지된 성역이었으니 철조망 너머 고향땅을 바라보는 이산가족의 심정처럼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겠는가. 1967년 6일 전쟁 이후로 통곡의 벽을 장악한 유대인들은 하루 24시간 이 곳을 개방해 못다한 기도를 채우고 있다.

추위에 시든 잡초와, 꼬깃꼬깃 접은 소원쪽지들이 바위틈에서 함께 피어나고, 그 아래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없는 통곡과 구원의 희망이 같이 피어난다. 인간의 타락으로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슬픔과 메시야가 오면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애절한 바람들은 돌과 돌 틈을 메워서 더욱 더 견고한 통곡의 메아리로 울리고 있다.

어린 딸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어머니와, 규율에 따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은 앳띤 얼굴의 소녀들, 그리고 굴곡진 역사보다 깊은 주름을 간직한 할머니의 오열. 귀밑머리를 기르고 검은 정장을 한 하씨딤(정통 유대인)과 1회용 키파(유대인들이 머리에 쓰는 똬리 모양의 모자)를 눌러쓴 젊은이들.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침묵속에 용해되는 공통의 약속과 슬픔이 있다.

성인식이라든가, 국경일 행사, 군인들의 선서식 등 유대인들이 중요한 행사는 다 이곳에서 행해진다. 지금 겉으로 보이는 통곡의 벽은 매우 작은 부분이지만 유대인들은 오랜 노력 끝에 땅속으로 가려진 나머지 벽(Western Wall Tunnels)을 복원해 냈다. 그 어두운 안쪽 터널 속에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간간히 돌 사이에 끼워 놓은 소망의 쪽지들이 있다.

◆ 의미와 상징으로 쌓은 예루살렘 성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성전을 갖고 있다. 신을 섬기든, 인간을 섬기든, 물질을 섬기든간에 자신을 낮추고 경배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쌓은 성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구도시의 무수한 성전들은 돌로 쌓은 것이 아니다. 유대 민족의 진한 땀과 통곡의 벽에서 흘리는 회한의 눈물과 끝나지 않는 분쟁의 피를 거름으로 자라난 성채들은 ‘삶에 대한 절박함’으로 쌓아 올려진 성전이다.

그리고 현재의 예루살렘의 구도시를 지탱하는 힘은 매 시각 아기들이 태어나듯 자기 복제를 계속하는 고고학적, 종교적, 역사적 의미와 상징들, 그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기도하는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다. 그 순례자의 틈에 끼어 단 한 순간이라도 신과 나 사이의 직접적인 끈을 느껴보려 했던 소망을 이뤄지지 않았다.

‘추정’으로 쌓아올려 인공의 손때에 절은 성전보다는, 꾸밈 없이 소박한 벽에 기대서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신이라면, 여기 이스라엘에서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거라고. 들고 가 한 번도 펼치지 못했던 성서 안이라면 몰라도.

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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