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번잡함 보다는 눈으로 뒤덮인 순수한 경치가 핀란드의 멋이라는 생각은 중부 지방 카자니로 향하면서다.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설국(雪國). 하얀 눈밭에 군데군데 박아 놓은 녹색의 나무와 넓이를 분간하기 힘든 얼어붙은 호수가 마음의 평온함을 재촉한다.

◆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액티비티

일주일을 넘게 눈만 밟으며 살았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미끄럽고 자동차는 더욱 다니기 힘들지만 쌓인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핀란드인들이다. 환경이 인간의 적응력을 요하면서 핀란드 역시 눈이라는 장애 아닌 장애(?)가 원인이 되어 액티비티(Activity)의 천국을 만들어냈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알파인 스키가 대중화된 한국과는 달리 평지와 작은 구릉을 오가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가 널리 대중화된 나라가 핀란드다. 동력이 발달하기 전부터 발달해 온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함께 개나 순록의 힘을 빌어 만든 썰매 역시 교통 수단의 차원을 넘어 여가생활로 이용되면서 수많은 액티비티를 만들어 냈다.

카자니에 도착한 후 바로 야외 활동을 위한 방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살 속을 저며 오는 북풍(北風)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견딜만 했다. 밖에 준비된 스노우 모바일(Snow Mobile)에 매달린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호수를 지나 숲 속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사방 천지가 깜깜한 가운데 달빛 사이로 누군지 모를 입김이 퍼졌다.

실제로 처음 보는 순록이다. 송아지 만한 순록의 뿔이 어깨 위까지 솟아 있다. 순록의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썰매가 움직였다. 꼿꼿이 세워진 나무가 빠르게 눈앞을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 속도가 굉장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 사우나와 카미의 고향 핀란드

잠시 동안의 긴장감을 덜고 사우나로 향했다. 호숫가 통나무집 형태의 레이크사우나는 땀을 낸 뒤 영하 27도 안팎의 실외로 나와 맨몸을 눈밭이나 얼음 구멍 속 호수에 던진다. 핀란드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우나’다. 사우나(sauna)란 단어는 영어사전에 들어 있는 유일한 핀란드어로 목욕(Bath) 또는 목욕탕(Bathhouse)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사우나는 핀란드 칼렌루야 지방에서 처음 시작되어 2000년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핀란드인들의 오랜 생활 습관중의 하나로 그 효능의 탁월함을 인정받아 전 세계인에게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높은 열과 습한 공기의 작용으로 우리 몸 속의 발한 작용을 유도, 신체 속의 노폐물과 오랜 축적물들을 땀으로 배출시켜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고, 체내를 깨끗이 하여 탄력 있는 피부로 변화시킨다.

상쾌하게 레이크사우나를 끝낸 뒤 랩족의 오두막집을 기원으로 하는 ‘카미(Kammi, 또는 코타)’로 들어가 저녁을 먹기 위한 준비를 했다. 카미의 구조는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의 앞부분을 잘라내어 세워논 것을 연상하면 충분하다. 구멍은 지름 1m 정도의 넓이로 뚫려 있고 밑에는 화로가 있다.

특히 연기가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바닥밑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통풍구가 화로 밑과 연결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모닥불의 열기로 구워지는 연어를 기다리는 동안 빵과 함께 순록 고기가 나왔다.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처음 느끼는 향이나 맛 자체가 이채롭다. 원으로 둘러앉아 있는 가운데 모닥불, 서로의 언어는 달랐지만 참가자들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눈밭에서 오토바이를 몰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두 조로 나뉘어 시합을 했지만 역시 마음 같이 오토바이가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코스를 벗어나기 일쑤. 그래도 만면에 웃음은 가득하다. 또 다른 썰매의 종류는 무섭게 생겼지만 가까이서 보면 친근함이 느껴지는 개썰매다.

‘핀허스키(Finnhusky)’라고 불려지는 핀란드 개썰매 또한 기분 만점. 흰 눈을 뒤집어 쓴 침엽수림을 통과하는 코스, 1m 이상 눈이 쌓인 호수 빙판 위로 달리는 호수 코스 등 코스도 다양하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보았던 동화 속 풍경의 연속이다. 순록몰이꾼이 쉬어 가는 사미족의 전통 코타에 들어가 모닥불로 언 몸을 녹인다.

◆ 아무 것도 없다면 몸으로

카자니를 출발해 핀란드 국립공원인 코리(Koli)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 피에리넨(Pielinen) 호수 가운데 있는 섬 보르나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4km의 거리를 가는데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순록도 개도 없다. 더욱이 스노우 모바일도 없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발로 미는 킥썰매(Kick Sledge), 힘은 들지만 유용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피에리넨 호수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속도감으로 피로함조차 느낄 수 없다. 가끔씩 TV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스노우슈즈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 코리 국립공원은 산악으로 이뤄진 지형 관계로 예전부터 스노우슈즈가 발달되었다.

왠만한 눈덮인 경사라도 거뜬히 오르내릴 수 있다. 줄을 지어 올라가며 때로는 넘어진 동료를 일으켜 세워주고 가파른 경사에서는 손을 잡아 준다.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전경, 넓은 평지에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결빙된 호수가 빽빽이 뭉쳐 있는 전나무 사이에 자리잡은 풍경이 막혀 있는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처음에는 발로 뒤를 이어 개와 순록의 힘을 빌어 이동을 했던 옛날, 지금은 원주민조차 스노우 모바일을 이용하지만 아직까지 핀란드의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로 남아 있다. 아쉽기만 한 눈속의 액티비티를 뒤로 하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다. 산타클로스의 고향이자 랩족의 고향인 랩랜드. ‘빛의 교향악’이라 할 만한 밤하늘의 오로라를 만날 수 있는 환상의 눈 세계로 발을 옮긴다.

핀란드 헬싱키 글·사진=김헌주 기자hippo@traveltimes.co.kr
취재협조=핀란드관광청, 핀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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