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자메이카의 수상이 좀 특이한 슬로건으로 관광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슬로건은 이랬다. “자메이카를 그저 해변 휴양지로만 보지 마세요. 자메이카도 하나의 국가입니다."" 자메이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자메이카의 주민들을 시녀나 하인정도로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 말씀이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주권국가의 국민으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여행이나 관광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여행 중 들르는 곳은 당연히 쉬거나 즐기는 곳이다.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노는' 곳이 된다. 그러다 보니 ‘노는' 곳을 찾은 이들에게 그 곳에서 일하는 종사원이나 주민들이 시녀나 하인처럼 여겨지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팁'을 주고받는 상대적인 입장이 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개인의 상황을 벗어나 국가간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관계 또한 한 쪽이 다른 쪽을 보는 시각을 왜곡시킬 수 있다. 자메이카 수상의 그 캠페인은 이웃나라 미국을 자극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그 캠페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결국 미국의 여러 가지 압력을 통해 그 캠페인은 곧 막을 내렸다. 그 후 나타난 자메이카의 슬로건은 “자메이카는 그저 자메이카일 뿐입니다.""였다. 아주 슬픈 이야기 아닌가.

관광에도 ‘역학'은 적용된다. 숨길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우열의 관계가 관광부문에도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식민지를 통치하던 나라와 식민지였던 나라에도 이런 묘한 관계가 자리잡게 된다. 자기네들의 식민지였던 곳을 ‘유흥을 위한 변방지역'쯤으로 아는 관광객들은 현지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도 남는다.

종종 미국 시민들이 나라밖에서 추태를 부려 전세계에 보도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행동 속의 심리적 근간에는 세계의 경찰 노릇 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달러를 통해 지구 경제의 군주로 용트림하려는 그네들의 우월감이 있다. 일본인들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때 국외에서 그랬었다. 현지 문화를 무시한 채 돈을 바탕으로 섹스를 밝히는 동물(seco-animal)이라는 불명예스런 훈장을 달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뒤를 이어 선진국 대열에 드는 듯한 착각에 어설프게 있는 척하는 한국인들이 등장했다. 외국에서 지탄받는 한국인 시리즈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초중고교가 방학에 들어가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해외에서 현지문화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행위로 한국의 이름에 먹칠하고 비뚤게 걸려있는 우리의 자화상들을 바로잡아 걸기 위해 정신차릴 때가 되었다.

IMF가 잠시 그 고삐를 늦춘 게 다행인지도 모를 우리들의 일그러진 해외여행은 별다른 탈선 없이 혼자서도 잘 가게끔 궤도 위에 올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곳을 찾던 현지 주민들과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동남아시아나 여타 후진국, 개발도상국을 찾는 경우, 현지 주민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현지 여행을 책임지는 업계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내국인 관광객들을 계도해야 할 것이다. 그 현지 주민들도 ‘우리를 물로 보지마'라고 외쳐댈 수 있는 주권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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