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성지'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가볍게 '관광'이라는 말을 떠올리기에는 거의 15시간이나 되는 비행시간이 만만치 않고 문화적, 심리적인 거리는 그 이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스라엘은 투철한 신앙심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휴가를 주는 곳이다.

◆ 영혼까지 쉬어갈 수 있는 곳

우리에게는 낯선 이미지가 되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인들에게 이스라엘은 휴양지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고 한다. 홍해를 끼고 있는 에일랏(Eilot), 지중해변에 위치한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 텔아비브(Tel Aviv)와 하이파(Haifa),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사해(Dead Sea). 고급 위락시설들이 가득하고 유럽의 어느 휴양지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

그림같은 바닷가에 누워 유유자적 할 수 있는 휴양지가 3~4시간 거리에 수두룩한데 굳이 그 멀고 낯선 이스라엘까지 갈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당신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영혼의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에일랏이나 사해가 아니라 갈릴리의 호수로 가야한다. 이스라엘의 젖줄이자 중요한 휴양지인 갈릴리 호수(Sea of Galilee)는 다른 곳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산도 물도 흔한 우리에게는 갈릴리 호수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황홀경이나 일탈의 해방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 무엇이 아닐 수도 있다.

해수면보다 120m나 낮게 내려앉은 이 호수는 항상 안개가 가득하고 물빛도 선명한 파랑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마음을 뉘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는 스스로 나이며, 강 건너편은 불확실한 미래처럼 보일 듯 말 듯 흐릿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 알면 알수록 즐길거리 가득

그러나 '쉬어야 한다' 혹은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짧은 휴가조차도 쉴세 없이 몰아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해돋이 타령이 잘 먹혀들까? 갈릴리에서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지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다.

짜고 뜨거운 물 속에서 즐기는 온천욕, 몇 킬로미터씩 떼지어 갈릴리의 하늘을 수놓는 철새 서식지 관찰, 일년 내내 28℃의 샘물이 솟아나는 간하슐료샤에서의 수상 스포츠, 호수를 둘러싼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등산이나 암벽등반, 물살이 빨라서 국제 공인까지 받은 요르단강에서의 래프팅과 카약, 승마나 낙타 투어 등등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이런 활동들이 가능하도록 만든 최대의 공신은 갈릴리 호수와 그 오른쪽 어깨에 올라앉아 있는 골란고원이다. 레바논과 시리아와의 분쟁지역으로 몸살을 앓았던 골란고원은 곳곳에 얼마나 많은 역사적, 고고학적, 자연적 보물을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 갈릴리는 살아있다!

영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지로서의 갈릴리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을 집약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우리를 초대했다. 이름하여 '갈릴리 랠리(Round the Sea of Galilee Rally)'
150 여명이 넘는 각 국의 관광업계 대표들은 4명씩 짝을 지어 팀을 이루고 레이스를 시작했다. 각 팀별로 코스 안내서와 지도, 그리고 문제지가 한 세트씩 주어지고 차가 한 대씩 할당된다.

어느 팀이 동일한 시간안에 정해진 8개의 지점 중에서 가장 많은 곳을 방문하는가에 따라 우승여부가 결정되는 일종의 경주다. 갈릴리의 수도 티베리아스(Tiberias)에서 출발해 가버나움(Gapernaum) 항구까지 이어지는 고무보트를 놓치고 골란고원(Golan Hills)을 오르는 지프투어부터 합류했다.

얼마나 길이 험하길래 승용차를 버리고 지프로 갈아타면서까지 호들갑인가 싶던 생각이 막상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말끔히 사라진다.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이 들썩들썩한 중에서도 슬라이드 필름 넘어가듯 금세 장면을 바꾸는 풍경들에 넋을 잃는다. 푸른 풀밭 사이로 웅덩이 깊은 황톳길을 올라가다보면 밋밋한 풀밭에서, 야자나무 숲, 그리고 야생 머스타드가 노랗게 깔린 꽃밭, 혹은 오렌지가 툭툭 불거져 나오는 과수원들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지나간다.

그렇게 한 참 달리다 보면 어느새 갈릴리 호수가에 도착하는데 가뭄탓인지 수면이 한 참 아래로 물러가 있다. 정상에 오른 태양은 그냥 눈부신게 아니라 안개속에서 하얗게 빛을 발한다. 물이든 땅이든 사람이든 표면에 내려앉는 수만개의 빛 알갱이를 다시 수억개로 쪼개어 반사시키는 것 같다.

다시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자 관광객을 상대로 지프사파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미지프(Jimmy Jeep)에서 이름 석자가 박혀 있는 수료증까지 나눠준다. 나무줄기에 살짝 금이 간 얼굴이 계속 쓰라리더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라모트(Ramot) 호텔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나서는 미국에서 온 3명의 여인들과 한 팀을 이뤘다.

높은 톤으로 쉴새 없이 이어지는 세 여인의 수다는 주로 '어떻게 하면 우승을 할 수 있을지' 였지만 벌써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가버나움 항구에서 다시 승용차 대신 각자 자전거를 갈아타고 오병이어교회(Tabgha)까지 페달을 돌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엇 기운다. 양쪽으로 늘어선 노란 야생 머스타드와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의 선명한 대조가 어둠속에 서서히 묻힌다.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급하게 어두워진 탓에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채 그날의 랠리는 끝이 났다. 생전 처음 가는 곳에서 배, 자전거, 지프를 타고 스스로 운전도 해가며 경주하는 재미를 다들 실컷 즐긴 표정이었다. 수다장이 아줌마들은 우승팀이 발표 이후에 볼 때마다 ""왜 우리팀이 상을 못 탓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한층 놓였다.

다음날 다시 지프에 몸을 싣고 골란고원에 다시 오르자 더 많은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북쪽의 마사다라고 불리는 감라(Gamla)지역은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대항해 죽음으로 항거한 역사적인 장소다. 지금은 100여마리 밖에 남지 않는 감라 독수리들만이 골짜기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 최고 품질의 와인을 판다는 양조장과 나귀를 키우는 목장도 오아시스처럼 여행객의 마음에 여유를 더하는 장소다.

이스라엘=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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