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상한 질문 하나 해보자. 호주의 수도는? 여전히 시드니나 멜버른을 떠올리는가? '캔버라(Canberra)'라고 하면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리지는 않는지. 하지만 어쩌랴. 캔버라의 탄생이 바로 시드니와 멜버른의 수도 다툼에서 기인한 것을.

◆ 숲속을 거닐듯 도시를 산책
캔버라는 호주의 수도다. 정확한 명칭은 호주 수도특별지역. 시드니 남쪽, 차로 4시간30분정도 달리면 나온다. 고속도로에서 초입에 들어서면 도무지 도시인지 숲속인지 구별이 안가지만 국회의사당이 있고 최고재판소가 있고 각국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명실상부한 호주의 수도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계획도시다.

다른 7개 주를 관할하고 호주의 정치, 사회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캔버라는 종종 관광에서 소외를 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인 '유적(Heritage)'이 없다. 녹색 공원도시지만 시드니의 블루마운틴이나 멜버른의 그레이트 오션로드만큼 장쾌한 '풍광(scenery)'도 없다.

하지만 '호주스러움'의 진수를 느끼기에는 꼭 들려봐야만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도를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 나라를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연중 여러 가지 테마의 축제들이 도시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캔버라는 인구 약 30만명, 총면적 약 2,400㎢의 작은 도시(사실은 계속 확장 중인)다. 캔버라를 특징지우는 대표적인 곳은 캔버라 시 중앙에 놓인 인공 호수인 벌리 그리핀호. 이 도시의 설계자인 미국의 건축가 월터 벌리 그리핀의 이름의 따서 지은 호수를 경계로 남과 북이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돼 있다.

북쪽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 시티힐을 중심으로 쇼핑센터와 호텔가, 은행, 버스터미널 등이 몰려있다. 남쪽은 가장 수도다운 기능인 정치의 중심지다. 캐피털 힐 가운데 위치한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최고재판소, 국립미술관, 외교관주택가 등이 들어서 있다.

◆ 자유와 낭만 흐르는 거리 '시티워크'
캔버라 관광은 북쪽 시티힐을 둘러싸고 있는 시빅 스퀘어에서 시작한다. 캔버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사실 호수도, 국회의사당도 아닌 중심가 한가운데 위치한 '시티워크(City Walk)'다. 차는 못다니도록 만들고 각종 쇼핑상점과 레스토랑, 카페, 극장, 호텔, 배낭여행 숙소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점심시간이면 어디서 오는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캔버라 최대의 광장이다.

회전목마가 삭막한 도시 한가운데 생기를 불어넣고 호주 원주민들의 디지리두(입술과 호흡으로 음색을 조절하는 전통 악기) 연주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잠시 붙든다. 경직돼있을 것이란 편견을 넘어 자유스러움에 취해본다. 벌리 그리핀호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선 동쪽 호수변에 위치한 코먼웰스(Commonwealth) 공원이 좋다.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지고 맘껏 뛰고 뒹굴어도 좋을 잔디가 끝도 안보이게 깔려 있다.

푸른 잔디 위를 맨발로 걷는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매년 봄이면 봄꽃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아침 저녁으로 조깅이나 사이클링, 산책 등을 즐기는 캔버라 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공원 내에는 캔버라의 개발계획에 관한 모형과 사진,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수도계획 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캡틴쿡의 호주상륙 2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140m 높이의 분수가 한낮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고 있다.

벌리 그리핀호에서는 낮과 저녁시간동안 저렴한 가격대의 크루즈가 운항하고 있다. 북쪽에서 가볼만한 곳은 이외에도 오래된 영사기, 카메라, 음반 등이 전시된 국립영화음향박물관, 비잔틴 양식의 원형돔과 대리석 구조의 장엄한 외관,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전쟁기념관 등이 있다. 국립대 서쪽 해발 812m 산위에는 도시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텔레콤 타워가 세워져 있다.

◆ 정치1번지 '사우스캔버라'
이제 남쪽으로 넘어가 보자. 사우스 캔버라야 말로 사법, 입법, 행정 기관들이 집중해있다.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신국회의사당(New Parliament House). 캐피털 힐 언덕위에 서 있는 국회의사당은 그 건물의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보는 외관부터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1988년 완성됐으며 높이 81m의 국기게양대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내부로 들어가 둘러볼 수 있는데 갤러리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과 역사적인 서류들이 전시돼 있다. 마침 방문했을 때는 주요 일간지에 실린 만평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가장 대표적인 정부기관에서 정치와 사회상을 풍자한 만평이 전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왔다. 옥상은 캔버라 시내를 두루두루 살펴보기에 가장 적합한 전망대다.

텔레콤 타워까지 가기가 힘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여기서 캔버라 도시의 면모들을 살핀다. 세계 최고의 계획도시라는 칭송답게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캔버라의 진수를 조목조목 볼 수 있다. 신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가로질러 보이는 곳이 구국회의사당. 사실 내부보다도 더 흥미로운 점은 구국회의사당 앞에 에보리진 국회의사당이 판자집같은 가건물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는 소외된 에보리진을 세계 각국에 소개하고 대정부 활동을 벌이는 매개로 활용하기도 한다. 더욱 인상깊은 점은 이를 그대로 놔두는 호주인들의 태도이다.

◆ 에어즈락을 닮은 에보리진 예술품
이밖에 남쪽에서는 구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위치한 국립미술관, 헌법재판소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애버리지니 아트 수장품으론 세계 최대인 국립미술관에서 만난 에보리진 예술품들은 강렬함 그 자체이다. 그들의 정신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그들의 색채감각만큼은 그들이 정신적인 고향으로 삼고 있는 에어즈락을 중심으로 한 호주대륙 중부 사막의 붉은 땅에서 연유한 탓인지 화려하면서도 애잔함을 담고 있어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신국회의사당 서쪽 아래에 펼쳐진 곳은 대사관과 대사관저들이 들어서 있는 외교관주택가. 각 국의 특징을 상징하며 지어져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와집 문양의 사대문같은 입구를 가진 한국대사관과 태극기를 발견할 수 있다.

작은 도시이고 평지이기 때문에 도시의 주요 관광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무작정 걸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이동하는데도 꽤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 구간별 시내버스나 주요 관광지를 도는 캔버라 익스플로러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전체가 커다란 공원같은 도시, 캔버라. 다리는 좀 아프더라도 걸어서 누비는 즐거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캔버라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키세스투어(02-733-9494)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