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는 고속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배해성씨의 질펀한 사투리가 들려온다. 전라북도관광협회의 과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하지 않게 줄줄줄 이어지는 전북자랑. 툭툭 자루가 터지는 듯한 사투리 운율을 따라 전라북도 음식 기행이 시작된다. 40여년을 살면서 직접 가서 보고, 맛본 경험담에 군침부터 꿀꺽.

전라북도의 14개 시군은 모두 제 고장의 이름을 드높이는 먹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전주비빔밥, 콩나물 국밥, 남원추어탕처럼 전국으로 가지를 뻗은 음식부터, 부안의 곰소젓갈이나 고창 풍천장어구이처럼 이름이 익은 요리들, 국수사리를 넣은 팥죽이나 생합처럼 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들까지, 필수시식코스에 포함되는 요리들이 너무 많다.

손맛이 베어있는 과실주나 곡주의 이름도 다 나열하기가 숨차다. 이강주, 천지주, 춘향주, 송순주, 복분자주 등 식사 때마다 귀한 술들을 곁들이는 미풍양속(?)이 시골에서는 생생히 살아있다. 지방 여행이란 자고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8할. 나머지 2할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낭만을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 원조'를 찾아 떠나는 전라북도 먹거리 여행, 이제부터 출발!

전북 맛기행은 일단 그 유명한 전주비빔밥이나 전주 콩나물국밥과 함께 이강주나 이미주를 한잔 곁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연산 나물을 간장, 고추장으로 비빈 비빔밥이나, 담백하고 얼큰한 콩나물국밥은 전주에서 숙박한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침식사메뉴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간쯤에 오수면이 나온다. 오수는 주인을 살린 영리한 개에 대한 전설이 있어서 그 개를 기념하는 의견공원에 의견비도 세워져 있지만 동시에 보신탕이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다. 죽어서까지 아낌없이 베푸는 견공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드디어 남원에 도착하면 진한 된장맛과 강한 산초맛이 어우러진 추어탕으로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숟가락에 걸리는 걸쭉한 느낌과 혀끝에서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느낌에서 '원조'만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순창에 들어서면 이 곳의 명소인 고추장마을을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고추장으로 요리해 만든 각 종 장아찌를 시식해보고 한 꾸러미씩 사들고 올수도 있다. 장담컨대 달콤새콤한 맛에 입맛이 돌아온다는 주위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군에서 지정한 전통고추장집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대대로 내려온 장맛을 감별하는 식견이 필수다. 적어도 결혼을 해서 자식도 한 둘 낳아 본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야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추장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고창에서 선운사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이다. 선운사 주변에서 생산되는 복분자술은 신장과 간을 보호하며, 정력증강에 탁월한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복분자라는 이름이 뒤집힐 복(覆), 동이 분(盆), 그리고 아들 자(子), 즉 이 술을 마시고 새벽에 볼일을 보는데 요강이 엎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색을 하고 정말 진짜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고창군수조차도 손님 접대용으로 근근히 물량을 댈 정도로 공급이 딸린다고. 산딸기를 원료로 했기 때문에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복분자술을 넙죽 넙죽 마시다보면 선운사 동백꽃의 붉은 기운이 죄다 얼굴로 올라오기가 십상이다.

복분자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담백한 맛의 풍천장어다. 식탁에 오르는 장어는 선운산에서 흘러나온 물과 서해 바닷물이 만나는 풍천지역에서 잡힌 녀석들이다. 특이하게도 산란기가 되면 이 곳으로 돌아오는 모천 회귀성을 가졌기 때문에 갯벌 군데군데 박혀 있는 장어잡이 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물을 막아 양식을 치기도 한다.

다음은 해안도로를 따라 부안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변산국립공원 최고의 명소인 부안의 채석강. 마침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바위위에 바글바글하다. 해질녁에 시간을 맞추면 갯바위 위에서 즉석에서 잡아주는 해물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여 서해안의 낙조를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해가 비스듬히 누으면 수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해안단층이 켜켜히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부안의 백합죽은 영양이 풍부해서 술을 마신 뒤에 먹으면 위장을 보호해준다. 서해안에서 막 잡은 신선한 백합과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드넓은 김제평야에서 생산되는 특등쌀의 조화가 기막히다. 이미 찰대로 차버린 배를 원망하랴, 이런 맛있는 요리를 마지막에 내놓는 주인아줌마를 원망하랴.

북상을 계속하면 벽골제로 유명한 김제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파는 팥죽에는 특이하게 칼국수 사리가 함께 나오는데 2일,7일에 서는 김제장터에서 팥죽집을 찾으면 동네 대소사에서부터 이집 저집 가정사까지 온갖 사람 사는 얘기를 소소히 엿들을 수 있다. 지방말로 새알을 넣은 팥죽은 '새알시미'라고 하고 칼국수를 넣은 것은 '낭화'라고 한다.

김제시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심포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횟집들이 쭉 들어서 있는데, 회보다 인기가 많은 것은 살아있는 조개, 즉 '생합'이다. 아이들 주먹만한 조개들이 입을 쩍쩍 벌리고 '나 잡아 잡슈'하고 누워 있다. 그러나 무심결에 조개 안에 고인 물을 따라버리면 먹을 줄 모른다는 핀잔이 곧 날아온다. 맛이 바닷물처럼 짜지만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그 성분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이 밖에도 '죽합'이니 '백합'이니 하는 온갖 종류의 조개과 해물들이 잔뜩 나오는데 이런 식탁에서는 언제나 정력증강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전북=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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