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유교사상의 진수를 만났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곡부·추성'을 일정표에서 봤을 때부터 '현학적인 여행'을 짐작하긴 했지만 이건 아예 발길 떼는 곳곳이 모두 오랜 중국 역사의 산실이다.

◆ 공자의 위력이 실감나는 도시 곡부

나지막한 건물들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모습. 공자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곡부의 첫 느낌은 중국 여느 도시와 다를게 없어 보였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면 3층 이상의 건물이 없어(심지어 호텔까지) 미개발 지역이라는 인상마저 들었다. 곡부시여유국의 맹경하(孟慶河)부국장은 '곡부시 자체가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적지'라는 말로 궁금증을 풀어준다.

모든 건물은 공자사당의 대성전 높이 즉 31.89m를 넘지 못하게 법제화되어 있다. 곡부는 전체 인구중 80%가 공씨일만큼 공가의 위세가 대단하다. 관광지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온 '공묘', 공자의 장자와 장손들이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세습하며 생활해온 '공부', 공자를 중심으로 공씨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공묘'가 있으며, 근처에 공자의 제자인 안자묘와 주공묘가 자리해 있다.

3만평 규모의 공묘는 북경의 자금성과 황제들의 별장지였던 승덕의 피서산장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군으로 불리운다. 제일 처음에 눈에 띄는 규문각은 중국 10대 누각 중 하나. 송나라 때 제를 지낸 이곳은 공자와 맹자, 안자 등이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책을 보관해 오던 곳이나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명나라 주원장이 세웠다는 비석도 좋은 볼거리다.

문을 하나 더 지나면 한나라부터 청나라 때까지 역대 황제들이 제를 지내고 남긴 비석들이 세
워져 있다. '13 비서림' 중 가장 큰 것은 강희 황제가 세운 비석.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은 그 규모만으로도 관광객을 압도하지만 성전을 둘러싼 석주마다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뒤쪽 사당에는 공자 부인의 위폐가 모셔져 있으며 석주에는 용대신 봉황이 새겨져 있다.

문 근처 둥근 철조망으로 보호하고 있는 나무는 공자가 손수 심었다고 전해진다. 사실은 명나라 때 나무가 말라죽자 당시 황제인 만리가 똑같은 품종으로 손수 심은 것이다. 이 나무의 건강이 나라의 안위를 상징한다고 믿어져 황제들이 자신의 통치를 가늠했다고 한다.

공자의 위력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공묘나 공림도 아닌 공자 후손들의 저택인 '공부'다. 2만평 규모의 이곳은 46대에 걸쳐 장손들이 영성공이라는 관직을 받아 생활하던 곳으로 연중 20여 차례의 작은 제사와 4번의 큰 제사를 관장하면서 황제와 손님들을 맞이해왔다. 입구를 지나 중앙에 세워져 있는 '의문'은 황제가 올 때만 활짝 연다.

곡부시 북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공림은 ""공씨라는 성이 없으면 마을이 없어질 정도다""라는 말이 가장 실감나는 곳. 60만평의 부지가 공씨 가족묘로 꽉 들어차 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만해도 10만 그루가 넘으며, 한나라 이후의 비석이 2천여개 세워져 있다. 골프장의 카터를 연상케 하는 간이 버스를 타고 공림을 10여분 달리면 공자무덤을 볼 수 있다.

공자 무덤 옆이 아들, 건너편이 손자의 묘이며 왼쪽 옆의 조그만 집은 제자인 자공이 6년상을 하던 곳이다. 공림은 중국에서 첫 번째로 '중전문물보호구'로 지정됐다.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부분 하나. 공묘의 무덤들 대부분이 정리는커녕 나무들과 잡초가 무방비로 자라나 있는데다, 무덤 역시 비석하나 없는 상태로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중국인들의 무덤에 대한 관습과 생각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라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는 매우 낯설은 풍경이다.

◆ '맹모삼천지교'의 고장 추성

곡부에서 약 25km가량 남쪽으로 내려오면 제녕의 12개현 가운데 하나인 추성을 만난다. 맹자의 고향인 이곳 역시 곡부와 마찬가지로 맹묘, 맹부, 맹림으로 나뉘어 있다. 맹자는 공자 손자인 자은(子恩)의 제자. 공자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군주를 가장 으뜸으로 삼았던 공자와는 달리 '백성'을 가장 우선해서 인지 역대 황제들로부터 공자만큼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후손들도 영성공이라는 칭호대신 오경박사나 한라원 등의 관직에 그쳤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공적을 기린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대단한 규모. 추나라 때 맹자가 아성공으로 추봉되면서 맹부 역시 '아성부'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맹림은 추성시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맹묘와 맹부와 떨어져 조금은 불편하다. 그러나 맹자묘 외에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모의 묘가 함께 있으며, 남북조시대에 지어진 마애석각이 근처에 있어 서예하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맹자가 첫 번째로 이사와서 살던 곳에는 후손이 학교를 세워 운영한 터가 남아있는데 마지막 선생으로 있던 96세의 맹씨 후손이 아직 생존해 있다.

산동성 글·사진=박은경 기자 eunkyung@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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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제녕 외래관광객 유치에 총력
작년 제녕시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705만명. 수익만해도 400억원(한화)에 육박한다. 아직은 국내시장이 크지만 외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증가해 작년에는 약 8만여명이 방문, 900만 달러의 외자수익을 봤다. 시장의 증가폭만큼이나 제녕시 역시 관광도시로의 빠른 성장과 계획을 밝힌다.

제녕시 여유국의 장문과(張文科) 부국장은 ""제녕이야말로 곡부와 추성 외에 수호지의 배경이 되는 양산 등이 자리잡고 있는 중국의 문화도시""라며 ""외국인을 접대할 수 있는 여러 시설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제녕시 소속 15개의 3성급 호텔 외에 5성급 호텔을 건설 중에 있으며 올해내 10개를 더 건설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외국인을 접대하는 호텔이 25개가 되는 셈. 또한 현재 영업중인 42개의 여행사외에 10여개의 추가신청분이 있어 관광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녕에는 5개의 관광자원이 있다. 첫 번째가 공자와 맹자를 찾는 '성인관광', 두 번째가 운하 문화유적이다. 북경에서 항구로 연결되는 운하중 200km가 제녕에 속해있다. 세 번째가 수호지의 유적지인 '양산', 네 번째가 양자강 이북에서 가장 큰 '미산호'라는 호수다.

지금은 폐광이 된 중국 2번째의 규모인 탄광도시가 다섯 번째다. 장 부국장은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개발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의 도시개발계획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5개의 관광자원을 연계해 문화도시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제녕시 아래의 각 현에서도 관광시장에 대한 개발 및 홍보의지를 보였다. 공자의 무덤인 공림의 경우만봐도 공원으로 기획돼 준비단계에 있다. 곡부의 맹경하(孟慶河) 부국장은 ""92년 한중수교 이후 이곳을 찾는 한국관광객이 매우 많다""며 ""하반기에 한국에서의 홍보활동을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성에서도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어 안내책자를 기획하고 있다는 추성시여유국의 노수풍(路秀風)부국장은 ""추성과 곡부를 잇는 매력적인 관광상품을 계획하고 있다""며 ""올해에는 국제 여행사 설립 및 전문가이드와 통역에도 신경을 많이 쓸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매년 4월에 열리는 맹자탄생 경축행사외에 맹자 어머니절 문화행사도 기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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