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골프 여행에서 예상치 못했던 복병은 악천후였다. 모래, 비와 바람 이 세 가지를 세 번의 다른 골프장에서 고루고루 만났으니 우연치고는 지나친 우연인 셈. 모래에 익숙해진 이후엔 비가 괴롭히고 굵은 빗발에 신경이 덜 쓸 무렵에는 바람이라는 복병을 만나야 했다.

대자연의 심술을 뒤로 하고 진득하게 18홀 혹은 27홀(36홀을 도는 괴력의 팀도 있었다)을 도는 골퍼의 뒷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이들에게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홀(whole) 한 홀 수행하듯 걷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심양선경골프클럽

중국 심양의 심양선경골프클럽(Shenyang Shengjing Golf Club)은 한가로운 얼굴을 한 채 한국의 손님들을 맞았다. 94년 말레이시아 버자이야사(Berjaya Corporation)가 설립했고 98년 이후 선경 골프 클럽이 운영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에서 '부자들의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골프는 생각만큼 별로 생경스러운 풍경은 아니었다. 물론 서민 대부분은 골프를 모른다고 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곳을 찾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70:30 정도. 외국인 중 한국인이 그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골프클럽의 윌리엄 램(William Lam) 부장은 전한다.

또 LG, 삼보, 농심 등 한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총수가 심양골프클럽의 멤버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고 강조하며 심양 최고의 골프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18홀 규모의 심양골프클럽은 자연 그대로를 살린 담백한 풍경이다. 장관을 이룬 수천 그루의 솔숲이 말레이시아 소유주한테는 밉보였던지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골프 코스 외에도 산책 코스로 고요한 정취를 풍기는 솔숲이 참 매력적이다.

황사의 영향력을 빗겨갈 수 없었던 심양에서 모래와의 전쟁을 치뤘다. 골퍼들은 온 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지만 골프에 몰입할 때만은 별 제약이 없어 보인다. 클럽 하우스 앞을 당당히 장식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누루하치의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옛 심양은 그의 궁전이 있었고 그의 아들의 거처가 있었던 퍽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한다. 청조 초기의 궁전을 버스로 지나치는 이색적인 풍경이 심양의 역사를 잠깐이나마 새기게 한다.

◆ 대련 금석탄골프장

100년이 채 안된 신생 도시 대련이 근현대사 전면에 등장한 시기는 러·일 전쟁. 이후 이 황토의 땅이 인구 600만명의 중국 5번째 도시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한 실력자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뒷받침된 탓이다. 대련의 성장배경과 마찬가지로 금석탄골프장은 미국과 홍콩, 중국 자본을 결합해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건설된 중국 3대 골프장이다.

이곳은 눈 앞에 펼쳐진 잘 관리된 그린, 절경의 해변과 절벽이 장관을 이루며 그들의 큰 자랑거리인 7번 코스의 비경은 세계에서 7번째로 아름다운 코스라고 강조한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 평지에 조성된 7번 코스는 푸른 강물을 마주보고 있는 등 진기한 풍경이 눈을 홀리게 한다. 이 밖에도 해외 순방 중 항상 골프장에서의 행적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문 사진이나 강택민 주석의 모습이 금석탄 골프장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심양골프클럽에서의 모래에 이어 금석탄을 찾아든 반갑지 않은 손님은 비였다. 장대같은 폭우는 아니지만 몇 홀을 돌다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일행은 정말 비에 홀딱 젖고 말았다. 그린 위로 스며드는 빗방울의 경쾌함,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벙커로 미끄러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골프장의 운치를 더해갔다. 또 그린 위에 점점이 펼쳐지는 노란 우산들의 움직임과 멀리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모습이 한낱 점으로 보일 때, 평온한 초원위 빨간 지붕의 클럽 하우스의 모습들 그 모든 것이 골프 여행의 낭만과 경쾌함을 선사한다.

◆ 대련 컨트리 클럽

대련 컨트리 클럽은 한국의 대구컨트리클럽이 출자한 중국의 유일한 한국계 골프클럽이다. 한국인이 손길이 여기저기 미친 탓에 한국인 골퍼의 요구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대구 C.C에게 50년간 임대해 개발하게 했다는 이 골프장은 총 27홀 코스로 3,500만 달러가 투자됐다.

덕분에 이 골프장에서는 의사소통의 불편이 적고 음식이나 부대시설 등이 한국인 '입맛에 맞게' 잘 마련돼 있었다. 대련 C.C는 금석탄처럼 바다를 끼고 있어 사방에서 바다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 대신 이 곳에서는 그간 타 골프장에서 경험했던 모래, 비보다 훨씬 강력한 바람과의 지독한 싸움을 견뎌내야 했다. 그래서 골퍼들은 드라이버샷은 물론 퍼팅 전략을 세우는 데 무척이나 고심하는 눈치였다.

골프장이란 인위적으로 '골프'라는 목적에 맞게 얼기설기 포장한 곳이지만 한껏 색을 발하고 있는 그린과 파랗디 파란 하늘의 대비, 골프장 저편으로 보이는 언덕배기 등은 자연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간 방문했던 골프장처럼 이곳 또한 하나의 섬과 같았다.

위치한 장소가 그러했고 외부인들의 접근이 어려워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골프장 직원, 골퍼들이란 점 역시 그렇다. 숨가쁘게 내처 올라갔던 한 코스의 저편에서 만난 달구지를 끄는 한가로운 마부의 한가로운 모습은 골프장에서 맛본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심양 사진·글=임송희 기자 saesongi@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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