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보면 호주는 정적인 여행지다. 깔끔한 거리, 정결한 건물들, 조용조용한 사람들, 편리한 교통과 숙박시설…. 각박한 서울 생활에서 막 벗어나 방문했을 때는 그 느긋함에 행복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좀 지겨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눈이 확 커지는 도시, 바로 그곳 '멜버른(Melbourne)'을 만났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너무 깨끗하거나 정돈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지저분하고 옛것과 현대가 적당히 섞여서 공존하는 곳을 좋아한다. 뉴욕이나 홍콩이 베스트 여행지에 꼽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는 너무 미안하게도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유'로 호주에서 제일 좋은 도시가 어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멜버른'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답하겠다.

고작 1박2일, 그것도 하루는 멜버른 시내를 벗어나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에 보냈지만 오전7시부터 새벽3시까지 20여시간 만난 멜버른의 인상은 너무도 강렬했다.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다이나믹(Dynamic)'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밤새 버스를 타고 새벽녘에 도착 짐풀고 대강 토스트로 아침을 떼우고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눈 한번 부치지는 못했지만 정작 잠깐이라도 눈을 부쳤더라면 너무도 억울했을 것이다.

◆ 과거·현대의 조화가 뿜어내는 박진감

멜버른 관광의 중심은 바둑판 모양으로 형성된 다운타운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야라강 북쪽에 자리잡은 이곳은 멀리서보면 멜버른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곳이다. 현대적인 건물인 리알토 전망대부터 남반구의 상제리제라고 불리는 고급 쇼핑거리, 녹음이 우거진 공원, 구멜버른 감옥, 구의사당, 국립박물관, 차이나타운, 19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교회, 재래시장까지 골고루 포진해 있어 관광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거기에 '땡땡' 소리를 내며 거리를 가로지르는 트램도 있고 관광객을 싣고 도시구경을 시켜주는 마차도 있다. 가로로 8개의 구획, 세로로 4개의 구획으로 이뤄진 이곳을 걷기는 다소 힘들어 보일지는 몰라도 모퉁이를 돌때 마다 달라지는 다양함은 다리가 아픈 것도 잊게 만들 정도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성바오로 성당, 구재무성 빌딩, 성패트릭성당, 주의사당, 주립도서관, 국립박물관 등은 대표적인 화려한 양식의 중세풍 건물. 다운타운을 살짝 비켜난 피츠로이 정원에는 호주를 발견한 캡틴쿡의 집이 있다. 최근에는 멜버른 관광의 흐름이 남쪽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호주 최대의 미술관으로 꼽히는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왕립식물원 등 3개의 정원으로 연결된 킹스도메인, 빅토리아주 예술활동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빅토리안아트센터,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해변 산책가인 세이트 킬더, 호주에서 가장 긴 다리로 꼽히는 웨스트게이트 브릿지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외관만이 아니다. 스포츠, 문화, 예술 등 다채롭고 풍성한 이벤트가 연중 도시를 활기차게 만든다. 호주에서 올림픽을 가장 먼저 개최한 곳도 멜버른. 세계 4대 테니스대회의 하나인 호주 오픈과 경마의 그랑프리 멜버른 컵,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라 1'이 열리는 곳이다. 신문만 슬쩍 훑어봐도 각종 음악, 연극, 뮤지컬, 클래식 등의 공연과 미술관 개장, 시낭송회, 재즈와 록밴드 공연, 극장 공연물 등이 가득하다.

◆ 블루스가 강물처럼 휘도는 브룬스윅의 밤거리

멜버른의 지치지 않는 열기는 밤에 더욱 빛난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의 거리는 연중 관광객들로 북쩍거리고 주말이면 줄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특징있는 카페나 나이트클럽이 즐비하다. 이곳이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여흥가라면 멜버른 시민들이 애용하는 여흥의 거리는 다운타운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칼튼 공원에서 한블럭 건너에 위치한 브룬스윅(Brunswick) 거리다.

호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거리는 낮은 노천 카페들이 즐비해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밤에는 각종 라이브 뮤직으로 무장한 언더그룹들의 공연들로 밤늦도록 흥겨움에 젖어든다. 특히 다운타운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복장 등에 제한이 없어 편안하게 즐기기에 적당해 주변 배낭여행숙소에서 찾아든 배낭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토요일 늦은 밤, 브룬스윅에 위치한 '레인보우(Rainbow)'를 찾았다. 블루스 라이브 뮤직으로 익히 명성이 높은 곳. 테이블은 구석에 몇 개 배치돼 있었고 대부분 맥주 한병씩을 들고 서있는 스탠딩 바였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홀은 발디딜틈없이 많은 사람들로 빼곡히 찬다. 빠른 템포의 블루스나 락큰롤이 연주되자 그 좁은 홀이 열기로 가득하다.

남의 눈치는 아랑곳없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연주자들은 직업 연주가들이 아니라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말이면 이곳에 모여 공연을 갖는다. 열기가 더하자 메인 싱어가 바테이블 위에 올라가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환호하는 관람객들. 매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입장료도 따로 없다. 그저 음악에 젖어 주말 밤 하나가 되는 것 뿐. 단 하루뿐인 멜버른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멜버른 글·사진 = 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키세스투어(02-733-9494),
호주정부관광청(02-753-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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