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읍 민속마을의 한 화장실에는 지붕이 없다. 볼 일보는 사람이 쭈그리고 앉았을 때 가리고 싶은 부위만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돌담이 둘러 쳐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 화장실에서는 낮에는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인다.

그러나 일을 보면서 하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밑에서 돼지 한 마리가 꿀꿀대며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에 그 돼지가 식용으로 올려지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외국인들이 그 사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도 한다. 화장실 바닥에서 살이 오른 돼지를 밥상에 올린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 토종 흑돼지 고기 맛을 보면 그 가식적인 역겨움은 본능적인 식욕으로 승화된다.

꾸민 것인가 꾸미지 않은 진수인가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이지 문화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문화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에 문화는 그게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서 외부에 소개될 수 있다. 숨길 필요도 없으며 수치스럽게 느낄 필요도 없다.

우아하고 품격 있는 문화 도시의 대명사격인 파리. 그 도시에서도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를 식용으로 쓴 적이 있었다. 12세기에 파리의 돼지들은 단백질 제공원 노릇은 물론, 시민들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청소 해결사 역할까지 해냈다. 돼지가 파리에서 이렇게 유용한 역할을 하게 되기에는 유럽인들의 문화에 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있었다. 로마제국이 종말을 맞고 기독교의 엄격한 윤리강령이 번짐에 따라 로마시대에 발달했던 목욕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일반 가정집의 목욕탕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같이 사라졌다. 결국 그들도 요강에 일을 보게 되었고 요강이 차면 그 내용물을 길가에 쏟아 버렸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길가에 버려진 배설물들이 잘 빠져나가도록 그 당시에 만든 배수 구멍들이 거리 곳곳에서 쉽게 목격된다. 유럽에서 향수를 뿌리는 문화가 발달했던 것도 이런 냄새나는 역사에서 유래한다.

파리에서 그 배설물들을 처리했던 또 다른 방법이 바로 돼지였다. 파리에 돼지를 사육하는 집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돼지들이 파리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1131년 어느 날, 파리 시내를 활보하던 암 돼지 한 마리가 지나가던 말에 달려들었다. 말이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탔던 사람이 떨어져 죽게 된다. 그런데 낙마하여 죽은 자가 하필이면 당시 프랑스의 황태자였다. 화가 치민 왕은 즉시 파리 시내에서의 돼지 사육을 금지시켰다. 사고를 친 암 돼지는 사형에 처해졌고 파리의 돼지 모두가 종말을 맞게 되었다.

한 문화의 소멸은 다른 문화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사육을 통해 항상 신선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어려워지자 파리에서는 햄이나 베이컨, 소시지 등 돼지고기를 저장하는 방법이 발달하게 된다. 이미 기원전부터 타 지역에서도 쓰여지던 방법들이었으나 파리의 경우 가공방법을 발전시키고 향이나 맛을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문화를 바꾸는 힘이 꼭 제국의 종말이나 유력 종교의 강령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 마리 돼지가 부른 ‘교통사고’를 통해서도 문화적 방식이 소멸 되거나 생성됨을 알 수 있는 경우라 하겠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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