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리'에 이어 지난해 한국영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공동경비구역 JSA는 영화의 주무대인 판문점 그 자체보다는 북한 초소병의 의문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 가는 과정을 미스터리 구조로 담아내며 중립국 여군 소령의 집요한 수사에 따라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는 영화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건 수사를 맡은 여군 소령이 사건의 실체와 부딪치면서 분단이 주는 개인과 인간의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휴머니즘 드라마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주는 감동은 영화의 내면을 잘 이해 못하는 나에게도 안타까운 현실로 받아들여진 기억이 선명하다.

가끔씩 TV 화면에 비쳐지는 공동경비구역, 낯설은 북한 병사들의 모습은 호기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남북고위급회담, 체육회담 등 뉴스에서 전하는 사실에만 관심이 가곤 했다. 굳이 영화 '공동경비구역'을 서두에 언급한 것은 JSA의 실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사사(私事)일 뿐이다.

이제 분단 50년의 산 역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최근에 남북의 정치상황이 호전되면서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었고, 끊어진 경의선 철교가 복구되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스쳐 지나간다. 판문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2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을까. 이웃 나라 일본보다 더 멀게만 머리 속에 그렸던 멀고 먼 판문점, 그 거리가 주는 느낌은 큰 오산이었음을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판문점을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 '캠프 보니파스(Camp Bonipas)'다. 보니파스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준비된 전용버스로 갈아타고 유엔사 경비대대원의 안내를 받아 잠시 동안 JSA의 간략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판문점을 관할하는 기지 이름이 '캠프 보니파스'라 명명된 이유는 지난 1976년 8월18일 당시 판문점 내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지휘하는 중대장 보니파스 대위가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고로 사망하면서 넋을 기리기 위함이다.

도끼만행 사건 이전에는 말 그대로 공동경비구역이라는 호칭에 맞게 양측 경비병들이 서로 오갈 수 있었고 군사분계선 남한 지역 내에 북한 군 초소가 별도로 있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도끼만행 사건은 당시 북한군 초소에 둘러 쌓여 있는 남한측의 초소가 미루나무에 막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나무를 자르려 하자 북한군이 이를 가로막으며 미군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이후로 양측 경비병들이 상대방 지역으로 넘어갈 수 없도록 했으며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경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후 유엔군은 '폴 버니언 작전(Paul Bunyan Operation)'을 수립해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냈다. 브리핑 도중에 간략한 비무장지대 내에서 주의사항이 주어졌지만 가장 큰 흥미를 끌었던 것은 청바지를 입고 JSA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추측이지만 공동경비구역 내 미제의 상징인 청바지가 눈에 띄는 상황을 북한이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갔다.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판문점으로 향한다. 얼마가지 않아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을 지난 판문점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 전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운치 있는 팔각정에 오르니 경비병 한 명과 함께 북한측의 판문각과 통일각, 그 외에 몇 개의 경비 초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리는 회담장에 들어가 잠시 동안의 사진촬영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맞추느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바삐 회담장을 빠져 나왔다. 다시 장갑차의 안내를 받는 전용버스를 타고 영화 JSA의 문제의 발단 지역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들렀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유엔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가 마주 보고 있으나 유엔군 초소에는 경비병 없이 무인 감시 카메라로 상대방 진영을 감시한다.

유엔군 초소는 공동경비구역에 내에 위치하고 있으나 북한군 초소는 구역밖에 위치하는 관계로 경비병이 중화기로 무장할 수 있지만 구역 내에 위치한 유엔군 초소는 권총만을 휴대할 수 있다. 화력 차이로 인해 유엔군은 경비가 없다는 경비병의 말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을 재미있게 봤다는 안내 병사에 따르면 JSA내에는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가 없어 북한초소를 왕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1시간여도 되지 못하는 판문점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비무장 지대에 위치한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160m의 국기게양대에 위에 인공기가 펄럭이는 곳에서 불과 1.8km 떨어진 자유의 마을에 역시 높이 100m의 게양대에 태극기가 바람을 타고 있었다.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남북정상회담의 영향 때문인지 팽팽한 긴장감은 느끼지 못했으나 그리 멀지 않는 거리내의 두 마을에서 굳이 그렇게 높을 필요도 없는 게양대에 서로 다른 양 체제의 상징만은 뚜렷했다. 혹자가 말하기를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한은 국기를 가져왔고 북한은 국호를 가져갔다는 말이 입 속에 머문다. 지구촌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이라는 멍에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통일이 갖는 의미를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분단의 시발점인 아닌 통일의 길목으로 변화되는 판문점이 될 것을 믿는다.

판문점 글·사진=김헌주 기자 hippo@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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