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만의 폭설이 내린 2001년1월의 첫째 주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날부터 내리는 눈발이 심상치 않았으나 자동차가 눈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승용차를 이용한 여행이 생활화된 시대에 설마 눈 때문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은 대학 후배의 거듭 요청으로 주례를 서기로 했던 날이었다. 결혼식에 참석은 많이 하였지만 주례사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주례 선생님이 무슨 말씀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에게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내가 결혼식장에서 이들 부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한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 회사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이상직 부사장이 자신이 미국에서 무역협회 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주례를 몇 번 선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면서, 자신은 주례사에서 ""<사랑은 A에서 G까지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A(Acceptance 의 약어)는 서로 받아들여야 하며 B(Believe) 서로 믿어야 하며 C(Commitment) 서로 헌신해야 하며 D(Defense) 서로 지켜주어야 하며 E(Expression) 서로를 표현해야 하며 F(Forgive) 서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며 G(Give) 서로에게 주어야 한다는 게 부사장의 설명이었다.

이 말을 결혼식장에서 해준다면 새롭게 출발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부사장에게 메모해줄 것을 부탁해 암기까지 해뒀다. 결혼식 주례를 서기로 한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 밖을 보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결혼식은 오후 12시 40분에 잡혀 있었으며, 결혼식장이 충북 영동이었기 때문에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 나는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고 판단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평소 집에서 고속도로 입구까지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였지만 그 날은 자동차가 아파트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까지 무려 한 시간 이상 소요되었고, 주위의 모든 자동차들도 거북이 걸음보다 더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다간 결혼식에 늦게 도착하는 큰 사건(?) 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 차를 돌려 서울역으로 와서 표를 구해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날아가지 않는 한 도저히 결혼식 시간에 맞춰 결혼식 장소에 도착할 방법은 없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후배 부부에게, 그리고 주례를 맡은 나에게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평소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제 기업도 언제 어디서 발생할는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나 자신에게 위기가 발생하고, 스스로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결혼식 전날 미리 가서 그곳에서 1박을 해야 했다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어서 충북 영동의 신랑집으로 전화를 걸어 폭설로 인한 서울의 상황을 전하고 도저히 시간에 맞춰 갈 수 없는 사정을 밝혔더니 이런 경우를 대비해 대신 주례를 서줄 수 있는 분을 예식장에서 확보해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주례를 서기로 한 내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결혼식을 올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주례를 직접 맡아주지 못한 후배에겐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결혼식은 무사히 올릴 수 있는 길은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위기관리 전문가라고 자처하며, 기업들에게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필자가 예식장에서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배운 순간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코리아 사장 kyonghae@com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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