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남부의 푸에르토 몬트. 서울에서 이곳까지 가기 위해선 아주 후회없이 비행기를 탄다. LA와 리마, 산티아고에서 각각 경유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얼추 30시간이 넘는 시간. 그렇지만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설레임 때문일까. 쉽게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푸에르토 몬트(Puerto Montt)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다시 남쪽의 라고스 주에 위치하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은 1시간40분 정도. 푸에르토 몬트가 속한 주 라고스(Lagos)가 호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듯이 안데스 산맥의 웅장한 산과 호수, 바다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휴양 도시이자 빙하 관광지 파타고니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깔끔하게 단장된 공항에서 내려 15분정도 달리다보면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이 먼저 반기고 그다음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힘든 고요한 호반이 한 가슴 팔을 벌려 품에 안는다. 방문 시기는 4월말이었지만 우리로 치면 늦가을. 누렇다 못해 빛바랜 나뭇잎들이 거리에 뒹굴고 아침 저녁 찬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늦은 오후 추적추적 가을비가 거리를 적시기도 하지만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늦가을의 정취가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풋풋하고도 가슴 시원하다.

호반의 도시답게 푸에르토 몬트와 주변에는 호수와 관련된 관광지가 많이 개발돼 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시커먼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건너편엔 만년설을 머리에 인 안데스의 산들이 수문장처럼 호위하고 있다. 도시는 아기자기하지만 한껏 세련됐다.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매력 때문이지 이 지역은 칠레 내국인들과 주변 남미국에서 온 휴양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다. 산티아고의 부유한 시민들도 이곳에다 별장을 지어놓고 휴가를 즐긴다.

휴양의 도시답게 푸에르토 몬트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도 좋다. 그리고 원한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카지노까지 있으니까. 따뜻한 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 깊게 기댈 수 있는 의자를 놓고 책을 읽거나 소일거리를 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고 호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즐겨도 좋다. 호수위에 낚싯대를 드리워도 좋고 보우트를 타거나 수상스키같은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좀 더 모험적인 것을 원한다면 푸에르토 몬트를 상징하는 두 개의 화산 오소르노(Osorno)나 칼부코(Calbuco) 트레킹에 나설 수도 있다.

맘 같아서는 하루쯤 볕 잘 들고 경치좋은데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고 싶지만 어디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 휴가더냐. 하루는 도착하고 하루는 출발하는 일정을 제외하고는 주어진 시간은 겨우 하루. 잠시가 아쉬울 뿐이다.

푸에르토 몬트를 처음 방문한다면 누구든 빼놓지 말고 이 지방을 상징하는 두 개의 호수와 두 개의 화산은 꼭 눈에 담아가지고 가자. 이 네 가지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호수를 찾아가는 도중 구름 너머로 산들이 흰머리를 내밀기도 하고 산을 찾아가면서도 호수의 푸른 물을 가슴에 담아 둘 수 있다. 상상 이상으로 대지는 넓고 푸르며 구름 낀 사이로 설풋 보이는 산들은 신성함 그 자체다.

늦은 도착과 점심, 흐린 날씨 때문에 도착 첫날 찾아간 곳은 칼부코 화산이 장엄하게 내려보는 호수 푸에르토 야(Ya)와 푸르띠야(Prutillar). 어둡고 탁한 회색빛 구름들이 잔뜩 시야를 가리고 있어 칼부코의 장엄함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고즈넉하고 아담한 마을이 호수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점과 일반 주택이 어우러진 마을은 30분이면 넉넉히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우루과이에서 온 단체관광객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점심식사 때 함께 마신 초강력 알코올(약 45도) 전통 칠레산 술, 피스코 사우어(Pisco Sour)의 위력일까. 긴장감과 어색함이 감돌던 팀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진다. 어둠이 내림과 동시에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빨간과 초록, 노랑, 파랑 원색의 지붕들이 인상적인 앙헬모(Angelmo)의 건어물 가게와 민예품점을 밝히는 백열등 불빛이 따뜻하다. 이곳은 푸에르토 몬트 방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독특한 기념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굳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커다란 선박들이 줄지어 서있는 항구. 저기 어느 배들은 모랄레다 해협의 작은 섬들을 통과해 산 라파엘까지 며칠동안 빙하 탐험에 나선다. 여름이면 빙하 투어에 나서는 관광객들로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띈다. 처음엔 낯설지만 금새 눈에 익어버린 거리,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 나긋나긋한 웃음을 던지는 칠레인들. 도심에서는 보지 못한 초롱초롱한 밤하늘의 별이 무척 반갑다. 어두운 호수위로 달빛이 부드럽게 퍼진다. 30시간의 긴 여정과 13시간의 시차를 넘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현실이 여전히 꿈만 같지만 설레임을 넘어서 이제 마음이 편안해진다.

칠레 푸에르토 몬트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란칠레항공 02-775-1500, 라틴투어스 02-756-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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