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프렌치 키스'였다.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등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수많은 유형의 실마리보다 어원도 확실치 않은 무형의 프렌치 키스에 조바심을 느꼈던 이유는 그 속에 녹아든 정열 때문이었을 게다.

너무 허무맹랑한 비약일까. 인류 역사의 큰 획을 지은 프랑스 대혁명 정신도 결국 프렌치 키스에 녹아든 피 끓는 정열에 뿌리박고 있다는 게 개인적 느낌이다. 브라질 삼바춤보다도 더 뜨겁고 순수한 게 바로 프랑스인의 정열이며, 그 정열을 자양분삼아 프랑스의 모든 유·무형 자산이 잉태됐다고 믿고 있다.

이런 배경 탓에 실제로 파리 시내 이곳저곳에서 농염한 자태로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과 맞닥뜨렸을 때의 떨림의 파동이 더욱 크고 깊었는지도 모른다. 프렌치 키스의 정열이 일궈낸 웅숭깊은 역사와 가멸찬 유산은 파리 시내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굳이 언급한다는 게 새퉁스러울 정도로 파리 시내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자 유적지다. 오래도록 머무르면서 자잘한 맛과 멋을 모조리 느끼고 싶은 도시다.

일반적으로 에펠탑을 파리 관광의 부표로 꼽기도 하지만 그 지리적 위치나 역사적 의미에서 보자면 당연히 에펠탑보다는 개선문이 권좌에 올라야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1806년 나폴레옹이 건설을 명령, 30년 만에 완성된 개선문은 프랑스의 자존심이다. 지리적으로도 12개의 도로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사통팔방 퍼져있고, 그 갈래 중 가장 넓은 도로의 한쪽은 샹제리제 거리와 콩코드 광장, 뛸르리 공원 등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다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야 멈춘다.

다른 한쪽 방향으로는 약 6Km에 걸쳐 넓고 곧은 도로가 달리고 달려 신도시 라데팡스에 도달하고 종국엔 신개선문에 닿는다. '신개선문-개선문-루브르박물관'이 약 11km에 이르는 일직선상에 주르륵 놓여 있는 것이다. 또 샹제리제 거리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쎄느강이 파리 시내를 관통하면서 흐르고, 강변에 우뚝하니 솟아있는 에펠탑과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쎄느강 유람선인 '바토무슈'도 이곳 언저리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정열이라는 회오리의 구심점은 개선문이어야 한다.

개선문을 구심점으로 갈래갈래 뻗쳐 나온 정열의 가지 중 가장 강렬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명불허전이라.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만큼 그 규모나 소장품의 가치가 그 이름값을 하기에 충분하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필두로 총 40만점이 넘는 작품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디귿 형태를 이룬 리슐리외(Rechelieu)관, 드농(Denon)관, 슐리(Sully)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

40만점의 방대함이 쉬이 몸에 와 닿지 않으면 '한 점 당 1분씩만 잡아도 꼬박 4개월 밤낮이 걸린다'는 표현을 상기하면 그만일 듯 싶다. 16세기 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예술을 향한 프랑스인 정열의 고갱이다. 패전국의 미술작품들까지 약탈해와 박물관을 채웠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정열 이상의 광기까지도 읽히는 게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정열은 몽마르뜨 언덕에서도 여실히 읽을 수 있다. 지금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아직도 구레나룻을 기르고 파이프 담배를 물고 초상화 그리기에 열중하는 화가들의 모습에서 그 옛날의 예술적 광채를 느낄 수 있다. 또 같은 언덕 위의 사크레 쾨르 성당은 건축물 자체도 볼거리이거니와 이곳에서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후련한 전망에 항상 관광객들로 옥시글거린다.

쎄느강변에 올올고봉처럼 우뚝 솟은 에펠탑은 '새옹지마'라는 성어를 떠올린다. 1889년 프랑스의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해 만들 당시부터 '아름답다 추하다''건설찬성이다 반대다'를 놓고 논란이 죽 끓듯 했다고 한다. 구스타프 에펠을 비롯한 건축자들은 '과학과 산업의 승리'라고 했지만 모파상 같은 예술가들은 '추악한 철근덩어리'라며 사력을 다해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세계인들이 예술과 과학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하고,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을 소유한 국가라는 자존심까지 더해져 막상 수명이 다한 1910년에는 해체 반대 여론이 막강했다고 한다. 다행히 전파탑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돼 에펠탑은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건설된 1931년까지 40여년간 높이 300m(현재는 32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각광을 받았다.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맛이 다른 건 사실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관람 포인트는 에펠탑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샤이요궁. 바로 이곳이 손바닥에 에펠탑을 얹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파리 시가지의 한 단면을 자유스러움으로 본다면 그 반대 면은 당연히 개똥이다. 거리 이곳저곳 제멋대로 나뒹구는 굳은 개똥을 혹자는 '자유의 표본'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지저분함의 결정물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 여북 지저분했으면 2008년 올림픽 유치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했을까도 싶다.

개선문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약 6km 떨어진 라데팡스는 이런 지저분한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정갈함과 단정함으로 가득하다. 인구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계획 조성된 도시인데 주거, 비즈니스, 쇼핑, 위락시설 등이 균형을 이룬 주상복합도시다. 지상보다는 지하를 적극 활용해 조성됐기 때문에 갖출 것은 다 갖췄으면서도 북적거림이나 번잡함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관광 및 쇼핑명소로도 부상해 개선문과 마주보고 있는 신개선문 계단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파리는 원체 보고 싶은 곳, 가봐야 할 곳이 많아 이삼일 정도의 짧은 여정은 수박 겉만 핥고 끝나버리기가 일쑤다. 그래도 파리 관광의 대미는 쎄느강 유람선 야간관광으로 장식해야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약 1시간30분에 걸쳐 에펠탑, 제2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역사의 기원지 시테섬, 노틀담 성당 등 강변에 늘어선 수많은 관광명소의 은은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야경관광을 위해 강변을 따라, 건물마다 설치된 조명시설 덕택에 호젓함이 물씬하다. 삭막한 아파트만이 병풍처럼 늘어선 한강에 대한 아쉬움이 철썩철썩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결소리 따라 스르르 밀려올 뿐이다.

파리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내일여행 02-777-3900 www.naeil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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