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중국 강소성 소주는 운하가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중국식의 아름다운 정원이 많아 더욱 회자된다. 소주의 수많은 정원 가운데서도 졸정원, 창랑정, 사자림, 유원을 '4대 명원'이라 하여 빼어난 정원으로 친다. 사자 모양을 한 수석이 많다하여 이름 붙여진 사자림에는 청의 건륭제가 와서 관광하고 썼다는 '진유취(眞有趣: 정말 아취가 있구나)'라는 해서체의 단아한 붓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고 그래서 명명된 '진취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복 전쟁과 반란을 평정하기 위한 원정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하기도 했지만 강희제와 건륭제는 여행과 관광 그 자체를 즐겼던 듯하다. 티벳트, 위구르, 타이완, 미얀마, 베트남, 네팔 등을 원정했는가 하면 중국 본토 안에서도 순행이라 하여 남쪽, 동쪽, 서쪽으로 여러 차례 여행을 했다. 강희제가 공자 고향인 곡부에 가서 남긴 일화는 기록으로 상세히 전한다.

인간적으로 정말 행복했을까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강희제와 건륭제는 외면상으로 보면 큰 나라인 중국의 황제로서 인간의 행복이라는 복록수(福祿壽)에 수명을 다하고 죽는 고종명(考終命)까지 모든 것을 누린 특별난 사람들이었다. 천자란 중국의 모든 영토와 백성을 소유하는 지위인데, 강희제는 69세를 살며 61년 간 재위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오래 산 나이가 아니라고 느낄 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70에 가까운 나이는 장수에 해당한다.

황후, 비빈, 후궁 등 30명의 여인에게서 아들 36명, 딸 20명을 낳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아들, 손자, 증손자가 모두 합쳐 150여명에 이르렀다. 건륭제는 할아버지인 강희제보다 더욱 오래 88세까지 살았다.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재위기간을 넘기지 않는 예의를 갖춘다 하여 재위 60년에 양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지만 태상황제로 있은 3년을 더하면 실제적으론 중국 역대 황제 중 가장 긴 세월 동안 재위에 있었다.

진시황 이래 청 말까지 2100여년 동안 220여명의 황제가 재위했지만 평균적으로 수명 40여세에 재위 기간 10년을 넘기지 못한 것을 보면 강희제와 건륭제가 얼마나 선택받은 이들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희제는 무척 겸손한 황제였던 것 같다.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주역으로 점을 쳐 '돌파'를 뜻하는 '쾌'괘가 나오자 이를 '큰 인물이 겸손하게 된 이후에야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그 자신 소금에 절인 채소조차 입에 대지 않은 채 오두막에서 거적을 깔고 사흘 동안 기도한 후 천단으로 가 하늘에 제를 올렸다.

오랜 가뭄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비가 내린다. 그 타는 가뭄에 우리에겐 겸손이 부족했고 오히려 우리 사회의 선택받은 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며 집단 이기주의를 표출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의 겸손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길래 비가 내리는 걸까. 어느 힘겹게 사는 소년 가장의 겸손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일까. 어느 저자 바닥 한 귀퉁이에서 잡곡 몇 봉지, 나물 몇 가지 놓고 팔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

(주)샤프 사이버여행사업부 이사 magnif@hanmail.net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