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들게 하는 차창 밖 풍경들>

채 반바퀴도 돌지 못한 10일간의 터키 여행에서도 버스이동은 한번 앉았다 하면 기본 2시간에서 3~4시간씩 이어졌다. 버스에서 잠자는 요령쯤은 일찍이 터득했을만도 한데, 시차에 시달리면서도 내내 단 10분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갖은 상념들은 꼬리를 물고
이스탄불에서 내려와 에게해안을 따라 달려가는 동안 들판에 널린 뽀송뽀송한 양떼들, 몇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앉은뱅이 올리브나무, 계곡을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가파른 도로와 발밑까지 바닷물이 어른어른하는 해안도로가 순번을 바꾸며 불침번을 선다. 버스안에서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너무나 자주 눈에 띄는 미완성의 건물들이다.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쌓아올린다는 터키 사람들의 집은 문이 없기도 하고, 창문이 없기도 하고, 벽이 없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이 들어앉아 살고 있다. 중학교 3년 내내 결코 완성되지 않았던 체육관 건물과, 4년간의 대학 시절 내내 교통체증을 일으켰던 지하철 6호선 공사와 10년간의 기다림과 5년간의 공사 끝에 올해 입주하게 될 재개발 아파트까지. 상념은 끝이 없다.

비닐과 천으로 대충 창문과 문을 대신한 가난한 농부의 집들은 허전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그러나 터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의 유적지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서도 세월의 먼지를 쉽게 떨어내지 못한다. 그 동안 이 폐허위에 쌓였던 것은 수십만톤의 흙과 먼지뿐이 아니라 사가(史家)들의 펜끝에서 떨어지는 상상력도 한 몫을 한다.

트로이에 목마가 있었을까?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면죄부는 '역사가에게만 허용되는 상상력'이다. 그렇다면 2000년 동안의 스테디셀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 호메로스의 면죄부는 '시인에 허용되는 상상력'인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고 트로이(Troy)발굴의 꿈을 키웠던 독일의 하인리히 슈리만은 1873년 터키에서 하나가 아니라 무더기(총 9층으로 쌓인)의 트로이를 발견했다. 호머의 트로이는 1250년대, 제5차 트로이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몰랐던 슈리만은 가장 밑에 있는 도시가 가장 많은 보물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파헤쳐 내려갔다고 한다. 지금 트로이에는 거대한 목마가 있다. 날씬하고 미끈한 모습이 동화속에 나오는 녀석마냥 귀염성이 있다.

그러나 그 옛날의 트로이에 목마가 있었는지는 확신이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트로이 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전쟁으로 추정되지만, 호머는 그 당시의 사람이 아니라, 자그만치 500년 후에 구전의 내용을 글로 옮겼을 뿐이다. 10년간이나 이어졌던 트로이전쟁은 한 여자(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에 대한 쟁탈전이었다기 보다는 소아시아 지역의 진입을 위해서 트로이를 극복해야 했던 그리스의 정치적 욕망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게다가 트로이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가져다준 것도 실은 목마가 아니라 지진이었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신의 뜻에 의한 정복이라는 정당화를 위해 후대의 사람들은 포세이돈(바다의 신)의 상징인 말을 연상시키는 트로이의 목마를 꾸며내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

버가몬 or 베르가마
베르가마(Bergama)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교회중 하나인 버가몬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이오니아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버가몬 왕국을 세운 것은 필라테리우스왕이다. 소아시아 전지역을 점령했던 버가몬 왕국의 전성기는 아탈루스 2세 때였는데, 유명한 지중해의 휴양도시 안탈야(Antalya)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아탈루스 3세는 기원전 133년에 이 왕국을 로마에게 자진 헌납한다는 유서를 작성하고 죽었다.

이곳에는 황홀하게 아름다운 야외 원형극장이 있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원형극장은 1만명 수용을 수용할 수 있었고, 저 멀리 발아래로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또한 이 곳은 세계 최초의 양피지가 개발됐고,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이 '아스클레피온'과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 있었다.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
터키 제3의 도시 이즈미르를 관통해 동남부 내륙으로 들어온 버스가 갑자기 무수한 바위 파편속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노천 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를 향하는 버스를 먼저 맞이한 것은 고대 유적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부분인 약 2,000개의 석관들이다.

히에라폴리스(은총의 도시)는 후에 시에로폴리스(신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신전이 많은 곳이지만 버스는 서지 않고 파묵칼레를 향해 내닫는다. 바쁘게 양말을 벗어제끼는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묵칼레(Pamukkale)의 온천수에 발을 담근다.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이란 뜻이다. 목면의 눈을 닮았다고도 하고, 그 색깔이 목화색 같다고도 한다. 어쨌든 섭씨 35도, 딱 좋은 온도로 부드러운 크림색의 석회석위를 졸졸졸 흐르는 물은 보기만해도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물속에 섞인 석회성분이 침전되어 산 하나를 덮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겠는가. 놀라울 뿐이다. 예전에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지만, 지금은 크림색 종유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곽지역만 개방하고 있다. 대신 파묵칼레 지역에는 온천시설을 갖춘 호텔이 여럿 있다. 찝찌름한 물이 느낌은 좋지 않지만, 심장병, 순환기 질병, 고혈압, 류머티스, 눈과 피부질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터키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캐세이패시픽항공 02-311-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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