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초입, 푸에르토몬트에서는 날씨가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린다는 데 둘째 날은 행운이다. 이른 아침 부터 내내 맑음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인 푸에르토 바라스(Varas)의 장끼우에(Llanquihue)로 가는 길 내내 허리에 흰구름을 두르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들이 눈을 더욱 즐겁게 한다.

장끼우에와 마을, 그리고 산을 보다 고즈넉이 감상하기 위해선 먼저 푸에르토 바라스 한켠 언덕위에 가지런히 들어선 호텔 카바나스 델 라고(Hotel Cabanas Del Lago)를 방문해보자. 일반 호텔과 코티지 형식의 콘도 스타일 두 가지로 운영되는 이 호텔은 이 지방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급스럽기로 유명하다.

식당 테라스에서는 오소르노 산이 흰 고깔구름 모자를 두른 뽀족한 봉우리와 눈인사를 나누고 실내 수영장이 면한 테라스에서는 푸에르토 바라스 마을의 알록달록한 색채감과 뽀족한 교회당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 투명하게 안겨든다. 특히 밤이면 호수에서 올라오는 물안개가 한껏 분위기를 연출한다. 누구라도 연인이 될 수 있겠다.

다소 오래된 것 같지만 정성스럽게 손질해놓은 가구와 집기들도 따뜻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달콤한 꿈을 엮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정돈된 창틀 사이로 보이는 장끼우에의 푸른 물위로 황금빛 햇살이 부드럽게 퍼진다. 장끼우에 호수는 오소르노와 칼부코 두개의 화산이 만들어냈다. '깊다'는 의미답게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50m. 낚시를 하고 배도 타고 여름이면 각종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왔던 플라잉 피싱(Flying Fishing)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오소르노까지는 유람선도 운항하며 산과 호수 주변에서는 캠핑이나 트레킹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호수가 주는 풍광이 너무도 여유롭고 우아해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일상을 잊고 쉬어가고 싶게 만든다. 푸에르토 바라스에서 차로 1시간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나무들이 울창해진다. 산토스 페트로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달리는 차 앞으론 하얀 고깔 모자를 쓴 오소르노가 있고 왼편으론 장끼우에 호수가 유유히 펼쳐진다. 오른쪽으론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풍경. 누렇게 변한 들밭이 정겹고 풋풋하다.

산토스 페트로 국립공원은 안데스 산맥에서 만들어진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화산재와 태양빛이 만들어낸 비취빛 계곡과 호수, 산들로 유명한 곳이다. 칠레의 국토 18%가 국립공원. 그도 그럴 것이 남미를 이루고 있는 척추 안데스 산맥이 칠레와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 사이로 단단히 뻗어있지 않는가. 산고봉과 굽이굽이 계곡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과 풍경을 만들어 낼 것인가.

흘려내린 빙하는 산 아래 고이고 다시 낮은 곳으로 흘러 바위와 만나 폭포를 만들어낸다. 비취색 물이 시원한 굉음과 함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 살토스 델 페트로후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계곡 입구 화산재로 형성된 까만 흙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 5분정도 걷다보면 펼쳐지는 시원한 계곡에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계곡에는 거센 물살을 가로지르며 유영하는 어른 팔뚝만한 송어가 많아서 더욱 눈길을 뗄 수 없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벗어 계곡에 살짝 발을 담가본다. 몇 초도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갑지만 경쾌한 웃음소리가 계곡 사이로 퍼진다. 다시 30여분 차를 이용해 동쪽으로 향하면 두개의 산 그림자 아래 토도스 산토스 호가 숨어있다. 이곳에서는 뱃놀이를 즐긴다. 여름이면 카누나 카약을 타고 코앞에 펼쳐진 두개의 산 오소르노와 푼티아구도를 담을 수 있다.

보트를 타고 한바퀴 돌며 그저 두 산을 눈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할 뿐인데 마침 만나서 입구까지 보트를 태워줬던 독일 청년은 두 산이 마주보고 있는 산중턱까지 혼자서 트래킹을 하고 왔다고 했다. 전망이 어떠냐는 물음에 아주 좋았다는 감탄사만 연발한다.

이곳이 더욱 유명한 것은 아르헨티나까지 호수와 산을 가로 지르는 육로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끼우에의 푸에르토 바라스에서부터 출발해 배와 차를 번갈아 이용해 동쪽으로 전진하면 국경도시 칠레의 페후자(Peulla)를 지나 아르헨티나의 나후엘 후아피 호수 넘어 산 카를로스 드 바릴로체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넉넉한 호수와 안데스의 장엄한 고봉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남미를 대표하는 코스로 나날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또한 육로로 아르헨티나로 이동해 남미 일주 여행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손꼽힌다.

어두워지자 다시 하늘이 찌푸려들고 금새 비를 뿌린다. 파타고니아로 빙하투어를 떠나는 배들이 정박해있는 항구의 불빛들이 처연하다. 남미의 첫 방문지인 푸에르토몬트에서의 마지막 밤. 못내 아쉬워서 마음에라도 담아가려고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눈감으면 달려드는 하얀 고깔 구름 모자를 쓴 안데스의 영봉들. 남미(南美)가 비로서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칠레 푸에르토몬트 글·사진 = 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란칠레항공 02-775-1500,
라틴투어스 02-756-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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