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帝國 - 터키
1. 보스포러스 해협과 이스탄불
2. 블루모스크 VS 성소피아성당
3. 트로이의 전설속으로
4. 에게해 최대의 고대 도시 에페소

카메라에 필름을 장진하고, 드디어 적진으로 투입됐다. 하나하나 쳐부수어야 할 적들은 왜 그리 많은지. 태양은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작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페허 위를 달린다. 여기는 에게해 3대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인 에페소.

'조용필의 법칙'. 항상 스타는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래서 에페소도 비를 피해, 엑스트라들을 대충 잘라가며, 가장 날이 맑았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야 입성할 수 있었다. 고대 도시의 유적들이야 이미 목마의 전설이 살아있는 '트로이'를 시작으로 '버가몬 왕국'이 탄생했던 페르가몬, 신전들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히에로폴리스'까지 스쳐왔으니 식상할 만도 한데, 역시 조용필은 조용필이다.

흔히들 에페소가 폼베이와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듣는 에페소는 섭섭해 한단다. 에페소는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드넓은 영토 중에서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였다. 규모도 상당히 커서 인구만 해도 25만명이었으며, 사도 바울이 2년 반이나 전도여행을 했을 만큼 산업과 종교의 요충지였다. 시리아 왕조의 수도였던 안디옥(안타키아, 인구 50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동부 지중해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운동장만한 유적지를 상상했다면 그야말로 에페소가 섭섭해 할 얘기다.

날은 뜨겁지만 돌무더기, 기둥 하나씩을 차지한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여념이 없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가.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아테네(기원전 1000년경)의 식민도시를 시작으로, 리디아, 페르시아, 베르가몬 왕국의 지배를 거쳐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기까지(기원전 133년), 돌마다 술술 얘기보따리가 풀린다.

근 1000여년에 걸친 건축 양식의 변화와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적인 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부족한 건 식견이요, 줄어드는 건 기억력이다. 복원이 진행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데도 도시의 흔적은 넓기만 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공중목욕탕만 해도 3개. 온수를 이용한 대리석 한증막과 냉탕, 온탕, 대기실, 오락실까지 갖춰진 이 목욕탕에서 속주의 시민들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라트린'이라는 공중 화장실은 중국 화장실처럼 칸막이 없이 구멍만 송송 뚫려 있다. 차이가 있다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향료가 섞인 물로 뒤처리를 했다는 것. 로마식 비데였을까?

모자이크로 장식된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나 빌라형태의 가옥들, 현대의 터키를 능가하는 2000년 전의 수도관 시설, 독자적인 폴리스의 시정을 관할했던 시청건물, 조각상의 발만 남은 하드리안 황제의 샘터, 기독교를 박해하고 사도 요한을 유배 보냈던 도미티안(도미티우스) 황제의 신전터, 트라이안 황제의 양자였던 하드리안 황제의 신전터, 승리의 여신 '나이키'와 '멤미우스'의 조각상, 행운의 여신 티케의 동상, 뱀(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의 상징)이 새겨진 석상이 있는 병원터, 아고라(시장터), 2차 에페소 종교회의가 열렸던 마리아의 교회.

바다가 육지로 바뀔 정도의 세월이 흘렀으니 사람이 떠난 도시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에페소의 명물이면서도 현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동상들은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갔고, 에페소 박물관은 일부만을 허술하게 보관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세계 고대 7대 불가사(그냥 7대 불가사의와는 다르다)중 하나로 꼽히지만 현장에는 달랑 기둥하나만 남아있고 아르테미스 여신(풍요의 여신)상은 에페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민망하게 많이 달린 그녀의 젖가슴. 혹시나 삶이 풍요로워질까 싶어 작은 모조품을 하나 장만했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버가몬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컸던 셀수스 도서관은, 학문의 전당답게 아름답고 웅장하다. 위아래로 서 있는 4쌍의 조각상은 각각 지혜, 지식, 덕망 등을 뜻하지만, 진짜 조각상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퀴즈 하나. 도서관을 거의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무엇이었을까? 화장실, 매점, 식당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아무도 '창녀촌'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당시에도 '학생은 남자 아니유'하는 삐끼 아줌마들이 있었을까? 에로틱한 조각상들이 많이 발견됐다지만 여기 이곳에는 없다.

유럽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터키의 국보급 유물들을 생각하면, 약소국의 서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나마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3만명을 수용했던 고대극장의 그 많은 층계(좌석이라고 해야 하나)들이다. 워낙 규모가 큰 까닭에 마치 한폭의 미술작품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돼서 한여름에는 보름에서 한달 정도씩 매일밤 콘서트가 펼쳐진다고 하니, 오늘밤에도 에페소의 페허 위에는 별과 음악이 쏟아지고 있겠다.

고대극장 앞으로 곧게 뻗은 대로는 곧장 항구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에페소는 항구도시였다는 것.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의 에페소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원래 이 곳을 흐르던 '멘데레스'라는 강은 비가 오면 많은 양의 토사를 물고와 에페소 항구에 뱉아 놓았다. 상전벽해의 세월이 흐르자 항구는 늪이 되어, 무역항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은 에페소를 떠났다.

가로수처럼 거리에 늘어선 조각상 중에는 머리부분만 달아난 조각상이 있는데, 늪이 된 항구에 풍토병이 유행하자, 헌신적으로 일했던 알렉산드로스라는 의사의 조각상이다. 누군가 발끝에 붉은 꽃을 꽂았다.

18세기 유럽의 여행자들이 에페소를 방문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흙과 먼지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 지난 150년 동안 외국으로 유출된 유물이 많고, 복원 속도도 매우 더디다. 10여개 유럽의 기업들이 지원을 하고 있지만, 방학에만 시간이 나는 교수들이 주축이 된 발굴단의 작업이라 지금 속도로는 100년으로도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터키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캐세이패시픽항공 02-3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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