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오스트리아 관광청과 KLM이 주관한 팸투어로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였다. 잘츠부르크 관광의 감동을 안고 기차로 인스브루크에 도착하니 역에서 티롤 복장을 한 한국 여인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곧 그녀가 바로 티롤을 꽉 잡고 있고 한국과 오스트리아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순애 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본래 중3시절 전국체전에서 100·200·400m를 석권한 3관왕 출신이자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육상인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스포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던 중 인스브루크 출신의 법학자인 현재의 핑크(Fink) 박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자연히 인스브루크에 정착함으로서 티롤 여인이 되었고 숙명처럼 관광업과 인연을 맺게 되어 천직으로 여기며 친정 나라인 한국에서 방문객들이 오면 반가이 맞아 티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 여행업계에는 그를 쉽게 '티롤의 핑크'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이후 그녀와 친구가 되었고 그녀가 종종 한국에 오면 만나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소식을 서로 교환하곤 한다. 헌데, 한국 여행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부끄럽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소위 IMF 시대 때 우리 여행업계의 내로라는 여행사들이 도산해 그때까지 밀려 있던 엄청난 금액의 현지 지상비를 그녀에게 지불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온 점이다.
티롤 현지에서 빚을 잔뜩 짊어진 핑크는 파산선고를 할 수도 있었고 한국 여행사들로부터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법정투쟁을 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친정인 한국의 명예를 생각하고 인생을 당당하게 살자는 신조 아래 집을 은행에 잡혀 부채를 모두 갚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인지라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은 돈은 남편과 함께 평생을 갚아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 온 핑크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유럽랜드 전문회사인 'W 유럽'의 L소장으로부터 지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IMF 당시 못 받은 돈의 일부를 수표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10만불짜리보다 더 값지게 보이는 그 수표를 남편에게 내보이며 친정에도 이런 신의 있는 비즈니스맨도 있다는 것을 자랑해야겠다는 것이었다.
한문에는 '셈이 정확해야 진짜 군자'라는 뜻의 '재상분명진군자(財上分明眞君子)'라는 말이 있고 영어에도 '정확한 계산이 좋은 친구를 만든다'는 뜻의 'Good count makes good friends'라는 말이 있다. 밝은 미소를 짓는 핑크로부터 수표 얘기를 들으며 마시는 생맥주가 그날따라 왜 그리 시원하던지.

(주)샤프 사이버여행사업부 이사 magnif@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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