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여행업 직장으로서의 여행사>
1. 빛 바래는 여행사 명함
2. 직장으로서의 여행사, 학생에게 듣는다
3. 직장으로서의 여행사, 직원에게 듣는다
4. 직장으로서의 여행사, 임원에게 듣는다
5. 그래도 희망은 있는가 下

여행업계를 좀먹는 부정적인 요인은 무수하다. 굳이 도식화하자면 여행사, 항공사, 랜드사 사이의 기형적인 '먹이사슬'을 그 중심에 놓을 수 있다. 그 먹이사슬 주위로 여행사 임원들의 경영마인드 부재와 직원들의 안일한 현실안주, 관광학 이론과 현실 세계의 괴리, 엉성한 산학협동, 국가 제도와 정책상의 허점 등 수많은 요소들이 얼기설기 복잡한 매듭을 형성하며 곪아가고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10여년의 짧은 시간동안 심하게 병이 든 여행업계는 말뿐인 만병통치약이 아닌 체질개선을 통한 근원적인 치료가 시급한 시점에 이르렀다. 다행히 비록 작고 산발적이기는 하지만 병든 여행업계를 치유하고 막힌 매듭을 풀기 위한 업계의 자정 노력과 이의 확산은 여러 면에서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살맛 나는 일터는 내 손으로 만든다

근래에 한진관광이나 모두투어에서 자리 잡은 여행사 노조활동은 종사원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매듭풀기 움직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모두투어 조성모 노조위원장은 ""노조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이다. 근로조건에 관여해서 계약직 직원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성과에 대한 적절한 분배, 휴일근무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 등 당연히 받아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스스로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관광산업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는 여행사의 노조활동은 항공사나 호텔에 비해 매우 미약하다. 그 동안 한주여행사나 롯데관광 등 몇몇 여행사에서 노조결성이나 활동의 전례가 있었지만 뿌리까지 내리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슬슬 얘기가 나오다가도 실제로 누군가 목소리를 내면 다들 외면하고, 당사자만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식으로 진행 돼왔죠."" 워낙 직원들의 이직이 심하고 계약직 직원의 비율이 높아 자체적인 의견집중 채널이 형성되기 어려웠고, 사측의 불편한 심기에 지레 주눅이 들어 '도중하차'하는 경우도 많았다. 열악한 여행사 여건에서 노조의 활동은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뿐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노조원들 역시 회사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연간 매출과 이익을 공개하는 상황에서 노조의 활동이 그저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에만 머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조와 사측으로 갈려서 논쟁을 벌이고 협상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사이좋은 선후배로, 직상 상사와 사원으로 어울려 지낸다.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노조원들이 노조를 통해 기대하는 것도 '소모적인 투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살맛나는 일터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진관광의 노조원들도 노조활동이 개인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으로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된 점'과 '회사에 대한 소속감 확인'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노조의 활동은 여행사내의 봉건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개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하고 싶은 직장은 경영자 손에 달렸다

경영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할 맛 나는 일터'를 향한 시도 또한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열악한 근무여건이지만 직원들 스스로가 보람을 느끼며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독특한 경영 방식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배낭여행 전문여행사인 내일여행은 올해 독특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분기별로 설정된 영업 목표량을 달성했을 경우 일정 폭마다 100%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연말 총결산을 통해 전체 목표치의 5% 초과 달성시마다 또 100%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올해의 경우 1월, 3월, 4월, 6월, 7월에 각각 100%씩의 상여금이 이미 확보된 상태며, 연말 결산에서도 300~400% 정도는 거뜬한 상태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연간 최소 1,000%의 상여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내일여행의 김희순 차장은 ""성수기의 경우 매일 새벽 2~3시까지 일해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일한 만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업무에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특한 휴가제도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결국 이를 회사의 이익으로 연결짓는 여행사도 있다. 허니문 전문여행사인 (주)일월여행사는 직원들에게 일년에 두 번, 두 달씩, 총 4개월의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허니문 비수기 기간에 유급휴가를 실시, 직원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고 성수기 기간에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덕택에 설립 2년째를 맞은 소규모 신생업체지만 지난해에만 7,000만원의 순이익을 남겼고 올해는 이의 5배를 기대할 정도가 됐다. 일월여행의 최재완 대표는 ""파격적인 휴가제도가 직원들 간의 팀웍과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규모에 맞는 시장차별화가 곧 경쟁력

여행업계를 옥죄고 있는 가장 큰 매듭은 바로 항공사, 여행사, 랜드사 등으로 이어지는 상하 종적구조와 그 구조에서 파생된 영세성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어차피 업계 스스로 만들어낸 기형적 산물이지만 누구보다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또한 업계 종사원들이다. 때문에 상당수의 업계 종사원들이 진정한 전문여행사를 꿈꾸면서 한편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막강 강자의 탄생'을 고대하는지도 모른다.

H 여행사의 K과장은 ""영세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이 개편돼야 하고, 여행사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야 한다. 먹고 살기가 급하면 사주의 마인드가 개선되더라도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특히 항공사 종속 문제는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 토로한다.

단순히 높은 급여와 후생복리가 보장된 대기업의 근로환경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JTB 같이 항공사와 동등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여행사가 생기면, 제 살 깍아먹기식 경쟁대신 여행사가 떳떳이 마진을 챙기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분위기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낙후된 경영구조와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을 제고시키고, 파행적인 먹이사슬을 타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계기를 원하는 것이다.

'동등한 경쟁'을 위한 막강 강자의 탄생을 바라기는 인바운드 업체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한국 인바운드 업체들에게 지상비 견적서를 동시에 요구한 뒤 가장 낮은 액수를 제시한 업체에게 행사를 맡기는 식으로 덤핑경쟁을 부추기는 일본 여행사들의 '농간'이 점점 도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D여행사 K부장은 ""힘도 없고 서로 단결도 안돼 있는 한국 업체들은 막무가내로 마이너스 견적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대형 에이전트에 대항할 만한 힘을 갖춘 업체도 없을뿐더러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심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실적 여건상 한국판 JTB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됐다. 그러나 그 공감대는 관념적, 이상적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 현실감각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세방여행사 이광원 과장은 ""쓸데없는 출혈경쟁을 막고 시장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업체의 대형화를 이뤄 현지 에이전트와 동등한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업체의 규모에 따른 시장 차별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500여명의 직원규모, 여행사 최초의 코스닥 등록, 해외 지사의 설립 등 기록갱신을 거듭하고 있는 하나투어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도 결국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특별취재팀=김기남, 김선주,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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