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행동을 할 수 없게 감시를 하느라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거의 살다시피 할 정도였다며 폐쇄된 북한의 실정을 간 접 시사했다.
김씨의 또 다른 업무는 김일성 부자가 사용하게 될 외국물자에 대한 자료입수와 구입이었는데 이 업무가 귀순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줬다.
김씨는 지난해 김정일의 친필지시로 김일성의 80회생일 축하 설비물자를 구입키 위해 소련에 파견됐다.
이때 김씨는 그 동안 외국인들을 안내하며 남한 실상에 대해들은 내용을 또다시 확인하게 되면서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오로지 자유스런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3개월간을 고민, 9kg의 체중이 줄어드는 등 갈피를 잡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유의 품에 안기기로 결심했다는 것. 사실 김씨는 70세의 노모와 4남매가 김정일의 경호원으로 근무하는 등 북한사회에서의 위치는 손색이 없었다. 특히 김씨가 많은 귀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여권으로 남한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북한 내 위치를 알 수 있게 했다.
『북한관광은 사실 관광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관광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자본주의국가 관광객도 신변 안전상 오지 않아 고려 대동강 해방산 등 10개미만의 호텔들이 항상 텅텅 비어 있는 것만 봐도 남한의 관광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호텔의 엘리베이터가 낡아 위험을 느낄 정도로 관광시설이 좋지 않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이에 반해 김씨는 귀순 후 경주관광 단지를 찾았을 때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특히 물레방아의 복원은 너무나 인상깊어 1시간이나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씨는『관광은 한번 기반시설을 조성해 놓으면 관광외화를 벌 수 있다』며『외국인들을 안내하면서 관광의 중요성을 이미 알게 됐다』고 관광 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관광 안내과에 배치돼 국민들의 관광안내에 조그만 보탬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김씨는 현재 TV출연 등 외부활동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짐을 주고 있어 미안하다며 앞으로 관광에 대해 더 많은 업무를 배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혼자서 자취를 하며 버스로 출퇴근하는 근면성을 보이며 TV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만큼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토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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