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는 수학여행.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학여행은 ‘잠까지 자고 오는 소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취급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 학년 단위의 대규모 이동이 동시에 계속되다 보니 경주와 설악 등 장소의 편식과 프로그램의 답습이 당연하기까지 하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화석화된 수학여행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수학여행 시장은 고정적인 대형시장이 형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사의 참여는 저조하다. 전국적으로 4,000여 개의 중·고등학교에서 해마다 수학여행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작 수학여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수학여행은 학교에서 수학여행 행사를 여행사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일정을 계획하고 숙소와 차량 등을 수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관례적인 행사진행은 전문성의 결여에 따른 질적 정체 외에 학교와 현지 업체, 혹은 일부 여행사간에 검은 거래가 오고간다는 공공연한 비밀만을 양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수학여행을 결정할 때가 다가오면 현지 업자들이 몇 천만원이 들어 있는 돈 가방을 싸들고 올라와 학교마다 인사를 하며 미리 매겨진 등급에 맞춰 돈 봉투를 건넵니다.” 이미 학교와 현지 업체간의 끈이 확실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에 여행사가 파고들 여지가 없다는 A여행사 사장의 설명은 수학여행에 관심이 있는 여행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수학여행 시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지난 3월 국내 수학여행의 해묵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수학여행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관광공사가 최근 수학여행진흥협의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대규모 이동과 전문성의 결여, 특정 목적지의 집중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공사는 5월초에 여행사 대상의 설명회를 갖고 우수 상품 자료집을 만드는 등 여행사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공사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변화하고 있는 교육계의 모습이 뒷받침되고 있다. 관광공사가 지난 12월부터 2월에 실시한 중·고등학교 교사 대상의 설문조사는 83개교 교사가 참여해 표본 수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 조사에서 일선 교사들은 경주, 설악산 위주의 단순 진행(30.6%), 대규모 이동(26.1%), 건전오락프로그램 부재(20.3%) 등을 공통적으로 지적했으며 공사 추천 우수 상품에 대해 48.6%가 적극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공사의 사업 추진에 대해 여행업계와 지자체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특히 관광공사라는 공적인 조직이 여행사와 학교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강원도의 한 지자체 관광담당 관계자는 “학생이라는 명확한 대상은 있지만 학교에서 자체 기획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학교마다 마케팅을 펼치는 것에 대해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공사가 주최가 되는 이번 작업은 진행상황에 맞춰 대응할 가치가 있는 만큼 빨리 구체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양질의 상품개발이 관건

물론, 공사가 나선다고 학교가 쉽게 여행사에 문을 열어 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에 대해 관광공사 이귀근 국민관광팀장은 “설문에서도 나타나 듯 일선 교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나 보여 줄 상품이 부족한 형편”이라며 “좋은 상품을 갖추고 여론을 조성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사는 이를 위해 일반적인 수학여행 상품이 아닌 남녀 공학별, 지역별 상품과 같은 상세한 일정으로 다양한 대상을 취급할 수 있는 상품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교육계에서 수학여행을 학업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여행사에서 교육적인 성과를 충분히 고민해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수학여행을 취급하는 여행업계의 애로사항으로 지적돼 온 복잡한 정산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공사는 여행사의 영수증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의 정산절차에 대해 법적 강제력이 없는 관례적인 사항인만큼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청 등을 통해 협조를 구하고 간소화해 나가도록 할 방침이다.

올해 공사가 추진중인 수학여행 건전화 사업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가시적인 성과는 내년 봄부터 드러나게 된다. 이 팀장은 “이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여행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학교에 인식시킴으로 여행업계에 또 하나의 미래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첫 해에 양질의 상품으로 인정을 받으면 점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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