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특급 호텔들은 일제히 객실 요금을 상향 조절했다. 그것도 5~10% 인상의 관행을 깨고 15~20%씩 껑충 뛴 요금을 발표했다. 월드컵 특수를 예상한 요금 인상이었다.

특히 월드컵 대회기간 동안에는 평소에 적용되는 단체 할인요금이 사라지고 20~30만원대의 개인 요금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여행사들은 치솟은 요금을 맞출 수 없어 사실상 호텔 수배를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을 불과 한달여 앞둔 지금, 호텔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막바지 월드컵 준비가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축구연맹(FIFA) 숙박대행업체인 바이롬(Byrome)은 지난 1일 그 동안 보유하고 있던 객실 물량을 대폭 해지했다. 지난 1월말의 1차 해지에 이은 두 번째 해지에서 바이롬은 실예약 물량과 일부 ‘뜨거운 날’을 제외한 잉여분을 각 호텔에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을 두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바이롬이 해지한 물량은 호텔의 예상을 초과했다.

서울의 어느 특1급 호텔의 경우 당초 바이롬측에 50%의 객실 공급을 약속했지만 현재 25%의 물량을 돌려받은 상태이며, 그 중에서 실예약 객실은 현재까지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롬에서 처음 받은 물량의 10분의 1밖에 판매하지 못한 상황이다. 바이롬의 한 관계자도 “경기가 있는 날은 앞뒤고 거의 객실이 꽉 찼지만 다른 날들은 예약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

■ 바이롬이 원망스럽다

바이롬측의 예약이 저조하자 그 동안 객실 부족으로 판촉을 포기하고 있던 호텔들은 일제히 바이롬과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호텔 관계자들은 계약 자체가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관계자는 “정부와 관계부처가 분위기를 몰고 갔다. 국가적인 행사이기도 하고 다들 계약을 하니까 덩달아 하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들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도 “기획팀에서 마케팅 부서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객실판촉 정책이나 요금에 대한 전략이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 지금에 와서는 판촉 직원들만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일본에서도 바이롬과의 계약으로 인한 피해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다. 요코하마 시내 호텔들의 경우 바이롬측이 약5만실의 객실을 예약했지만 실예약 인원이 줄자 절반이상의 객실예약을 취소해 버렸다.

이 일로 요코하마 호텔들이 입은 손해는 4~5억엔(약40~50억원)에 달하지만 현재로서는 위약금을 받을 수도 없다. 이 호텔들은 월드컵에 초점을 맞추고 그 동안 결혼식과 수학여행 손님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시 예약을 받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국내 호텔들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특급 호텔이 바이롬과의 계약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특급 호텔들이 바이롬에 객실을 공급하고 있다.

경주의 한 호텔 관계자는 “바이롬이 객실을 쥐고 있어서 팔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방을 팔지 못했다”며 “바이롬을 고소하겠다”고 흥분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그러나 바이롬측은 호텔이나 언론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바이롬에서 판매하는 객실의 단가가 국내 호텔에서 직접 예약하는 경우보다 높게 나타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호텔 요금이 비싸다는 인상을 안겨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호텔들은 객실 요금을 1,200원대의 환율로 책정했지만 바이롬을 통해 미화로 결제할 경우 1,300원대의 환율이 적용되어 요금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호텔 관계자는 “안 그래도 한국의 호텔은 객실이 비싼 것으로 유명한데 외국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 중국전 유치 호텔에 도움 안된다

호텔들은 객실 판매가 저조한 또 다른 이유로 일본과의 공동개최와 함께 불리한 국가 배정을 들고 있다. 평소 5~6월은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을 많이 방문하는 인바운드 성수기지만 올해는 월드컵 개최로 일본 인바운드에 커다란 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자국에서도 대회가 개최될 뿐 아니라 이 기간에는 호텔비 등이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 여행을 자제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평소에도 일본 단체에 비해 3~4만원씩 저렴한 가격에 객실을 공급받던 중국 단체들이 요금이 껑충 뛰어오른 객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무지 중국 단체들의 가격을 맞출 수 없다는 호텔 관계자는 “중국전 유치에 다들 환호성을 올렸지만 그나마 수익이 되는 일본 사람들이 줄어들고 돈이 되지 않는 중국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이 뭐가 환영할 일이냐”고 반문했다.

■ 예약 편중 두드러져

뒤늦게 뒤통수를 맞은 호텔들은 막바지 빈객실 채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대회가 시작되면 신규 예약이 급격히 떨어질 것을 우려해 사전 정지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 하지만 경기의 유무에 따라 예약 편중이 심각한 상황이다. 경기가 있는 날짜를 전후한 3~4일은 100% 예약에 대기인원까지 몰리고 있지만 그 외의 기간에는 예약률이 50%까지도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뜨거운 날’의 객실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이거나 바이롬이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5월이 되어도 계약 물량의 15%이내는 위약금 없이 취소가 가능하고 10%의 물량은 3일전까지도 위약금 없이 취소할 수 있는 등 바이롬과의 불리한 계약 조건들이 호텔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특1급 호텔 관계자는 “예약이 저조한 객실을 팔기 위해서 호텔들마다 초긴장 상태다. 대책 회의와 함께 요금을 재조정 하는 등 일이 더 복잡해졌고 눈치 보기도 매우 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월드 인 등 대안 모색

자체적인 해외 판매망을 갖지 못한 호텔들은 고육지책으로 중저가숙박예약시스템인 월드 인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월드 인은 최근 100여명의 호텔 관계자들을 초청해 설명회를 개최했으며 지난 25일 월드 인 사업단의 김보경 팀장은 “이번주까지 20여개 호텔이 월드 인 시스템으로 들어올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 팀장에 따르면 20여개 호텔에는 일부 특급 호텔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호텔측에서는 월드 인이 중저가숙박예약시스템이라는 점 때문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월드 인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호텔의 비싼 요금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호텔들은 ‘뜨거운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요금 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됐고, 경기 날짜에 따라 호텔 요금 체계도 뒤죽박죽 엉켜버린 상태다. 기업체 고객도 물량이나 실적에 따라 제각기 할인 요금이 적용되고 여행사 고객에 대해서도 상황마다 새로운 요금을 제시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경기날짜를 중심으로 고객이 몰리는 것은 기업체나 여행사도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가 않다.

이와 같은 호텔들의 볼멘소리에 대해 업계에서는 “호텔들이 평소에는 장사가 잘 된다면서 해외 판촉을 등한시하고 여행사 등 협력사들과의 관계에도 소홀했다”며 “자업자득이 아니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호텔 관계자는 “평소보다 예약이 많고 객실 요금도 많이 올라갔지만 자체적으로 판매권을 쥐었으면 원활한 객실 공급과 수익 확대가 가능했을 것이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