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산아래 무공해 사람이 산다

밤에 도착한 뮤렌은 사위가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의 긴장감이 몸 속까지 밀려들면서 저 깊이에까지 그 떨림이 전해진다. 날이 밝으면서 펼쳐질 알프스를 기대하며 밤 안개 속 뮤렌의 마을길을 걸어 들어간다.

산은 그다지도 크다. 높다. 깊다. 압도하면서도 푸근하고 또 한편으론 춥고도 쓸쓸하다. 그렇게도 유명한 알프스의 세 봉우리가 눈앞에 동시에 보인다. 열혈남아 아이거, 아름다운 아가씨 융프라우, 그 사이에서 융프라우를 지키는 수도승 묀히 그리고는 깊은 계곡. 그 계곡을 향해 가는 능선의 완만함에 따라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의 풍경.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서 있는 곳은 베른 주에서 제일 높은 마을, 해발 1639m의 뮤렌이다. 뮤렌은 쉴트호른(2967m)으로 향하는 기착지로, 볕 잘 드는 산자락 아래 주민 400명 정도가 삶을 꾸리고 있는 말 그대로 무공해 리조트 마을이다. 라우터브룬넨 계곡, 우뚝 솟은 낭떠러지 위에 새둥지같이 자리잡고 있는 뮤렌은 휘발유 차량 진입 금지 구역이기도 하다. 차도 없는 조용한 마을길을 소 몇 마리가 절그렁 절그렁 방울을 울리면서 지나간다.

그곳 마을 어귀에 가만히 서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누구이든 그저 순하고도 겸손한 하나의 피조물이 된다.
한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마을의 집들을 둘러싼 앞뒤 마당의 경사면들이 그대로 스키 슬로프로 변하면서 온 마을이 하얀 눈천지의 스키 마을로 탈바꿈한다. 이웃 나들이나 장을 보기 위해 스키를 신고 집을 나설 이곳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곳도 계절별로 더욱 붐비는 때가 있는데 크리스마스와 새해, 부활절과 7, 8월 여름 시즌이다. 또 뮤렌에서부터 쉴트호른까지 14.9km 구간에서 벌어지는 3종 경기는 자연을 사랑하는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종목이다.

뮤렌에서 쉴트호른까지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넘나들고 깎아지른 절벽을 거의 닿듯이 수직 이동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놀이기구를 탄 양 괴성을 질러대면서 창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의 집들이 우습기만 하다. 거대한 자연 안에서 적응하면서 한편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의 노력이 기특하기만 하다.

스위스에서 3400m급의 알프스 명봉들을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산악 교통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등산철도나 세계제일의 급경사를 자랑하는 철도 대부분이 스위스에 있고, 여러 종류의 공중 케이블카가 산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또한 45도 이상의 경사면을 오갈 수 있는 톱니바퀴열차를 비롯하여 곳곳에 철도를 놓아 스위스 전역을 연결하였고, 그것도 쉽지 않은 지역은 우편 마차에서 비롯된 포스트 버스를 이용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쉴트호른 정상에서 만나는 피츠 글로리아는 1968년도 007 시리즈, ‘여왕폐하 대작전’ 현지 로케이션 장소로도 유명한데 애초에 영화 세트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해발 3000m급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최초 360도 회전식 레스토랑인 피츠 글로리아는 식사나 차를 마시면서 동시에 창 밖으로 200여 개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갑작스런 고도 변화와 회전하고 있다는 자각증세에서 오는 얼마간의 어지럼증만을 잘 다스린다면 레스토랑 어느 곳에 앉아 있든지 누구나 진귀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로 대표되는 명봉들과 알프스의 절경들은 그 미적 가치와 다양한 생태계, 역사적 가치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스위스 글·사진=한윤경 객원기자
hahny@hanmail.net 취재협조=스위스정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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