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로 떠나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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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 천 년 세월의 신비, 보로부두르 사원
中 - 악마가 하룻밤에 세우다, 프람바난 사원
下 - 족자카르타의 오늘, 마리오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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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미소에 존재감은 허공으로

세월의 더뎅이가 쌓인 모든 역사적 건축물은 처연하다. 흘러왔고 또 그렇게 흘러갈 억겁의 시간이, 살아왔고 또 무진장 살아갈 부단한 삶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뎅그러니 목 떨어진 돌부처가, 까맣게 검버섯 피어오른 돌덩이가 더 가슴을 후비는지도 모른다.

그럴진대, 근 천 년 세월 동안 세속의 시야에서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난데 없이 나타난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은 어떻겠는가. 수수께끼 같은 신비감마저 더해져 깃 털 같던 자신의 존재감은 속절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보로부두르 사원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1814년.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지배했던 영국의 래플스(T.S. Raffles) 총독의 지시로 탐사 및 발굴 작업이 시작된 덕이다. 8~9세기에 걸쳐 건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메라피 화산(Merapi Mountain)의 폭발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을 것이라는 추정이 옳다면 보로부두르 사원은 천 년의 은둔 끝에 다시 세속에 나온 셈이다.

보로부두르, 그 처연함이여!

천 년의 은둔이라지만 복원된 보로부두르 사원이 내뿜는 처연함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누구는 보로부두르 사원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 ‘수미산’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도 한다. 아예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건립된 소우주로 보기도 한다. 유네스코(UNESCO)는 지난 1973년부터 10년 동안 보로부두르 복원 자금을 지원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1991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열 중 아홉이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이 불교유적에 대한 현지인들의 애틋함도 작지만은 않다.

보로부두르가 세계적인 불교유적으로 평가 받는 데는 역사적, 건축학적, 종교적 가치는 물론 첨단과학의 시각으로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신비함도 한 몫 거들었다. 보로부두르의 뜻을 ‘언덕 위의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누가 왜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 때문에 축조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정이 있을 뿐이다. 어째서 천 년 동안 홀연히 자취를 감췄는지는 아리송한 수수께끼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족자카르타의 불교왕조였던 샤일렌드라 왕조가 8세기 경에 축조하기 시작했다고 설이 유력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파간과 함께 3대 불교유적으로 꼽힌다. 1만2000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에 약 100만개의 돌덩이를 이용해 쌓아 올린 9층 사원이다. 단일 불교건축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축조 연대에서도 앙코르와트를 앞선다.



속물의 조급함을 탓하네!

보로부두르 사원이 풍기는 원거리의 웅장함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밀함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기단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붓다의 행적과 일대기를 표현한 1500여개의 부조는 그 하나하나가 한 폭의 그림이다. 생동감이 넘치고 남방특유의 예술적 특징이 가미돼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손잡이 달린 커다란 종을 뒤 짚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장식하고 하고 있는 수많은 스투파(Stupa), 그 안에 모셔진 불상들의 표정은 또 얼마나 자비롭고 아늑한가. 그 웅장함과 치밀할 정도의 세밀함은 현대의 오만함을 누르기에 충분하다.

불교의 우주관과 교리가 이 건축물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는 점도 감탄을 자아낸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정방형의 6층 기단과 3층의 원형 기단이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형태로 구성돼 있는데, 아래에서부터 기단 한 층 한 층을 돌아 끝내 사원 꼭대기 층에 오르면 비로소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전투구의 욕망과 악이 판치는 중생의 사바세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상승하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눈 아래로 남국의 열대 평야가 가마아득 펼쳐지고, 멀리로는 메라피 화산 등 해발고도 3000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사원을 에두르고 있다. 왜 보로부두르 사원을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이라 했는지 이해할만하다. 주위의 산들은 수미산을 감싸고 있다는 8개의 산일 터이다.

천 년 세월 넘게 늘 그 미소로 세상을 응시해왔을 불상, 그 시선에 시선을 맞춘다. 아옹다옹했을 눈 아래 나의 세상, 아직 새벽녘의 설핏한 기운에 잠겨있다. 늘 그렇게 떠올랐을 아침 해가 일순 새벽안개를 뚫고 세상을 비춘다. 첫 태양 첫 빛을 받은 돌부처가 순간 화사한 미소로 답한다. 그 미소와 맞닥뜨리는 순간, 원형의 수행길을 밟지 않고 수직의 계단길로 줄달음쳐 올라왔던 속물의 조급함을 탓한다. 사바세계의 속도와 효율은 공허한 허울이다. 어쩔 수 없는 한낱 미물일 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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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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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러스 α +++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위치한 족자카르타(Yogjakarta)는 우리네 경주와도 같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대도시로 전통적인 자바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과거에는 ‘욕야카르타’가 공식적인 발음이었지만 점차 현지인들이 부르는 ‘족자카르타’ 혹은 줄여서 부르는 ‘족자’라는 발음이 일반화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1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도인만큼 족자카르타에는 고풍스런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중 세계적인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람바난 사원(Prambanan Temple)이 대표적이다. 두 사원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불교와 힌두를 대표하는 사원이 한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높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가량이면 닿을 수 있다. 특히 보로부두르 사원은 일출 감상지로도 유명하다. 신비스런 사원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현지 여행사나 호텔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되고, 아예 ‘마노하라 호텔(Manohara)’과 같은 보로부두르 사원 인근에 위치한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풍스런 사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 시내의 중심거리인 마리오 보로(Marioboro) 거리도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는 관광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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