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땅, 일부다처제의 나라,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곳. 우리네 마음 속에 자리한 아랍은 참으로 멀다. 아랍인들의 친절을 느끼고, 그들의 찬란한 역사를 보기 전에는 그럴 것이다. 아랍,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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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글·사진=Travie Writer 이진경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카타르항공 02-3708-8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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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소박함, 다마스커스



국경을 넘어 시리아 땅을 밟은 지 2시간 가량 지났을 무렵이다. 어둠이 내린 밤, 먼발치에 모습을 드러낸 다마스커스(Damascus)의 낮은 하늘에는 크고 둥근 달이 떠올랐다. 다마스커스의 밤은 그 달처럼 소박하다.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모스크와 예배당의 은은한 불빛이 밝힌 거리는 왠지 모를 정취로 가득하다.

다마스커스의 낮 또한 밤과 다르지 않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인 부를 누리지 못해서인지 다마스커스를 포함한 시리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소박하다. 다마스커스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만 봐도 그렇다. 오리엔트와 이슬람, 그리스, 로마, 비잔틴 당시의 유구한 유물을 정직하게 드러내놓고 전시한 이곳은 유리벽은 물론 온갖 보안 장치를 동원한 다른 박물관과는 대조적이다.

박물관의 숱한 유물은 곧 시리아의 역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진 다마스커스. BC 3000년경에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다니 대충 꼽아도 5000년 동안 도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세월을 머금은 도시의 모습은 올드 시티(Old City)에서 확인할 수 있다. 7개의 성문 안에 로마의 성벽과 집 등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올드 시티는 지난 198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올드 시티에는 알 하미디에 수크(Al Hamidiyeh Souq)라는 시장이 자리했다. 오래된 도시에 자리한 시장이라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우리네 일상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장 입구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히잡을 두른 한 여인, 에스컬레이터가 생소한 지 주춤주춤 첫 발을 내딛지 못한다. 덕분에 에스컬레이터 뒤로 기다란 줄이 생겼다.

시장을 지나 우마야드 모스크(Umayyad Mosque)로 간다. 세계 각지의 모스크 건축양식과 장식 등에 큰 영향을 준 우마야드 모스크에는 기도를 하고 코란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생활인 듯하다.

사실 시리아 국민의 90% 가량이 이슬람이다. 모스크에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지사. 아이러니한 건 다마스커스 곳곳에 솟아 있는 교회의 십자가들이다. 한눈에 둘러봐도 3~4개는 보이는 십자가의 정체는 시리아 기독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아랍어 주기도문의 성스러움, 마룰라



옛날 옛적에 그리스 정교 최고 제사장의 딸인 테클라라는 여인이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화형에 당하게 된다. 화형식 날, 한데 거센 폭풍이 몰아치며 앞산이 갈라지는 게 아닌가. 이 틈을 타 그녀는 도망을 하고, 시리아의 한 마을로 들어간다. 그녀가 도망한 길을 찾아 뒤쫓은 로마의 병사는 “씨 뿌릴 때 봤다”는 농부의 말을 듣고는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된다.

다마스커스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가량. 알 칼라문 마운틴(Al-Qalamoon Mountain)에 자리 잡은 마을, 마룰라(Ma’alual)에 전해오는 전설이다. 이곳 알 칼라문 마운틴 중턱에서 동굴생활을 한 그녀의 흔적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성녀 테클라 기념 교회로 전해온다.
마룰라는 예로부터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다. 게다가 예수가 생존했을 당시 사용되던 언어인 아람어를 BC1000년 전부터 사용하며 간직해 왔다. 마룰라라는 마을 이름도 ‘입구’라는 뜻의 아랍어다.

성녀 테클라 기념 교회아래에 자리한 세르기우스 기념 교회에서는 아람어로 읽는 주기도문을 직접 들을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정적이 감도는 교회에 아람어 주기도문이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시리아의 색깔, 바디아

아람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세르기우스 교회에서 한 여인이 읽어주던 주기도문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황톳빛으로 산 위에 요새처럼 늘어선 마룰라 마을의 모습도 그랬다. 팔미라로 가는 길, 끊이지 않고 펼쳐지는 바디아 때문이었을까.

흔히 사막이라고 하면 모래사막을 떠올리지만 시리아에는 모래사막이 없다. 아랍어로는 이러한 사막을 사하라라고 한다. 시리아에는 아랍어로는 바디아, 한국어로는 광야라고 불리는 사막만이 존재한다. 모래사막이 무(無) 혹은 죽음이라면 바디아는 무와 유의 가운데 혹은 결핍으로 대변된다. 바디아의 마른 땅 위로는 풀이 겨우 자라나 생명이 숨쉬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다마스커스에서 팔미라까지 240km. 바디아는 끝을 보이지 않을 듯 내달린다. 양떼를 이끄는 어린 목동의 모습만 간간히 눈에 띌 뿐, 바디아만이 거듭되고 또 거듭된다. 그리고 잠깐 바디아는 시리아의 색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마스커스가 지녔던 회색빛, 마룰루가 보여줬던 황톳빛이 선연하다.

팔미라로 향하던 버스는 잠시 멈춰 바그다드 카페66에 쉬어간다. 바그다드로 가는 길목에 놓여 이름 지어졌다는 이 카페는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오아시스와 같다.

“이름이 뭐야?”
카페 주인장의 딸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주위를 서성거리던 아이가 조금 후, 카페 명함을 건넨다. 겨울, 눈 덮인 바그다드 카페의 사진이다. 아, 겨울에는 눈이 오는구나.


신기루 같은 오아시스 팔미라



여행자의 오아시스인 바그다드 카페에서 100km를 더 가면 팔미라(Palmyra)다. 팔미라는 오아시스다. 바디아 한 가운데에 샘이 솟는, 키 큰 야자수가 숲을 이룬 진짜 오아시스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팔미라는 타드모르(Tadmor)라는 이름으로 솔로몬이 세웠다고 한다. 타드모르는 셈 족 언어로 야자수라는 뜻이다.

동쪽으로 페르시아만과 이란,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한 팔미라는 중계 무역의 요충지였다.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통과세를 받으며 팔미라는 점차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파르티아 사산왕조 페르시아시대에는 로마제국 내의 시리아의 한 왕국으로서 정치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활동을 했다. 한데 어느 날, 팔미라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1930년대에 이르러 사라진 팔미라의 복원이 시작됐다. 대형 원형극장은 원래 모습이 짐작될 만큼 복원됐으며, 테트라펠리온, 시장, 목욕탕 등이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셈 족이 태양신을 모시던 벨 신전도 한 켠에 자리했다. 팔미라 서쪽은 묘지의 계곡이라는 팔미라 무덤이 있던 곳이다. 공동묘지도 있지만 일가가 한 무덤을 쓴 경우도 있다. 층을 이뤄 관을 넣었으며, 계단을 따라 묘지의 꼭대기에도 오를 수 있다. 묘지의 꼭대기에 오르면 바디아 사이, 황량하게 솟은 묘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팔미라가 이룬 도시는 대지만 16만 평에 이르렀다. 이곳에 살았던 인구는 무려 3만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272년 제노비아 왕비가 그녀의 아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고 황제의 어머니로 자처하자 분노한 로마가 팔미라를 삼켜버린 것이다. BC 1세기에서 AD 2세기까지. 찬란했던 한 도시 국가는 그렇게 점차 모습을 감췄다. 그래서인지 ‘제노비아가 혹은 로마의 분노가 없었다면’이라는 상상, 잔해만 남았지만 아름다운 팔미라에서는 누구든 한 번은 하게 된다.


+++ 플러스 α +++


★긴 팔 옷 : 시리아의 밤 기온은 꽤 쌀쌀한 편이다. 긴 팔 남방을 하나 정도 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추위에 잘 견디지 못한다면 조금 두꺼운 긴 팔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면세점 : 레바논 국경에서 시리아 국경을 넘어가면 현대적인 건물의 면세점을 볼 수 있다. 가전제품을 비롯해 의류, 액세서리 등의 코너가 있으며, 슈퍼마켓과 던킨 도너츠도 있다. 특히 이곳 면세점에서는 레바논이나 요르단에 비해 싼 값으로 담배를 살 수 있다. US$로 11달러 가량.

★쇼핑 : 다마스커스 올드 시티의 알 하미디에 수크는 시장의 길이만 600m에 이를 정도로 꽤 큰 시장이다.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등 먹거리는 물론 카펫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도 많다. 흥정이 가능하므로 여러 가게에서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좋다.

★호보스 : 시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빵으로 밀가루를 얇게 펴서 구운 것이다. 치즈나 버터를 곁들이면 간식으로도 일품이다. 마룰라 마을에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있다.

★바그다드 카페66 : 팔미라로 가는 길, 바디아 한 가운데 자리한 카페. 간단한 차와 기념품을 판매하며, 깨끗한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사막의 유목민인 베드윈 복장을 대여해주므로 기념촬영을 하는 것도 좋다. bagdadcafe66@lyc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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