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용어로 4개 국어를 채택할 만큼 다양한 지방색을 갖춘 스위스는 ‘작은 유럽’이라는 애칭이 꼭 들어맞는 곳. 대도시 뿐 아니라 작은 마을까지도 색다른 볼거리들을 품고 있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관광지들이 많다. 스위스에서의 첫째날, 취리히 근교의 작은 도시 ‘상트 갈렌’과 전망대로 유명한 ‘유틀리베르그’를 찾았다. 상트 갈렌의 경우 전체적인 도시 분위기에 있어 ‘독일보다도 더 독일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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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글·사진=Travie Writer 박은경 기자 eunkyung@traveltimes.co.kr
취재협조=스위스 관광청 02-378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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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기

취리히에서 열차로 약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상트 갈렌(St. Gallen)’은 섬유산업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했던 스위스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상트 갈루스(St. Gallus)라는 성직자에 의해 설립됐는데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더불어 과거의 영광을 가늠케 하는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트 갈렌이라는 이름은 도시 설립자인 상트 갈루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수도승 갈루스는 612년 당시 아무것도 없었던 이 도시에 문화와 가톨릭을 전파하게 되는데, 도시를 세운 계기가 ‘말하는 곰’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는 갈루스와 곰의 상징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갈루스의 전설은 단순히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가 아니다. 8세기경 갈루스의 작은 방을 중심으로 설립된 수도원은 중세 유럽의 예술과 과학의 중심지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 8세기경에 지어진 건물들은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허물어졌지만, 18세기 들어와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진 대성당과 부속 도서관 및 일부 건물들은 1983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1755년 피터 텀(Peter thumb)이라는 건축가에 의해 설립된 대성당은 이후에도 유명한 건축가들에 의해 벽면과 천정, 재단 등 내부 인테리어를 꾸준히 보강해 조금씩 다른 시대의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성당 내부에는 몇 가지 잊지 말고 둘러봐야할 것들이 있는데 첫 번째가 오르간이다. 성당 설립 당시 들여와 250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전통 오르간은 현재 2대의 전자 오르간과 함께 연주되곤 하는데 이 소리를 들으러 성당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성당 한켠에는 성직자 갈루스가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종이 걸려있다.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안고 있을 법한 종은 햇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당 오픈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관광안내센터를 통하면 방문객들을 위한 하루 시티투어에도 참가할 수 있다.

성당과 함께 상트 갈렌을 문화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은 부속 ‘도서관’이다. 성당 건축가들이 함께 디자인한 도서관은 8세기부터 수도원이 해산되던 1805년까지 수집된 방대한 자료들이 모아져 있다.

어쩌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갖는 특유의 딱딱함을 떠올리며 조금은 지루함을 각오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행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 도서관의 매력은 가보지 않고는 감히 말하기 힘들다. 하긴 괜히 ‘유네스코 문화유산’ 이겠는가.

일단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담하고 아름답다. 로코코 양식의 각기 다른 천정무늬는 부드러운 아치를 그리고 있고, 세밀하게 조각된 기둥 위 장식품들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가장 놀라운 점으로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공간으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소장하고 있는 16만5,000권의 책들은 시민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대여도 가능하다. 물론 홀에 전시돼 있는 세계 유일의 책들은 대여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8세기경 양피지로 만들어 금박으로 씌여진 필사본들이나 9세기에 그려진 초기 악보형태는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함을 더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나물’ 악보의 머리가 원래는 다이아몬드 형태였다는 것을 아는지... 지금의 모습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악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관시간〓월~금요일 8:30부터 11:45분, 14:00부터 17:00분까지. 입장료는 7프랑이고 8명 이상의 단체일 경우에는 5프랑이다. 관람은 자유롭지만 사진촬영은 금지다.




# 나도 ‘레드카펫’의 주인공

도시를 거닐다보면 재미난 풍경이 눈에 띈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화려한 가정집의 수공예 발코니들이다. 스위스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 ‘수제 특급 발코니’는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부의 상징물이었다. 가이드 캐서리나는 “조각들은 사람들을 놀리는 내용부터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자랑을 담아 이국적인 풍물로 꾸민 발코니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곳의 많은 부자들을 탄생시켰던 섬유산업은 현재 주춤한 상태다. 디자인은 파리나 뉴욕, 이탈리아 등지에서 해오고 생산은 인력이 저렴한 곳에서 대신하기 때문. 내년도 겨울 아이템을 전시해놓은 ‘텍스타일 박물관’이나 인포메이션센터 앞 빛바랜 조형물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상트 갈렌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는 영화 시상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밝은 레드카펫이 깔린 ‘시티 라운지’다. 두 명의 아티스트가 설계해 만들었다는 이곳은 예술적인 공간이자 이름 그대로 시민의 쉼터다. 방문 당시 라운지는 공식 오픈일을 이틀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카펫을 이루고 있는 뻣뻣한 벨벳은 6겹으로 처리돼 한겨울 눈이 내려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바닥에만 깔린게 아니라 벤치와 테이블도 만들어 놓아 재미를 더한다. 머리 위에 매달린 조명에서 밝은 빛이 비추면 누구나 영화 속 레드카펫의 주인공이 된다.

-‘우주 속 산책’ 유틀리베르그

취리히와 알프스의 비경을 한눈에 감상하고 싶다면 취리히에서 약간 떨어진 유틀리베르그(Uetliberg)가 최고의 추천코스다. 취리히 중앙역(HB)에서 22분 정도가 소요되는 위틀리베그르는 해발 140m 정도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871m의 전망대에 오르면 360도로 펼쳐진 알프스와 취리히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물론 하늘이 맑은 날의 얘기지만 말이다. 혹시 궂은 날 이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자. 누군가 한라산을 운운할 만큼 안개 자욱한 취리히의 전망도 운치가 그만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전망대까지는 20분 정도가 소요되는 짧은 코스지만 시간이 된다면 펠제네크까지의 산책코스를 권한다. 하이킹에도 좋은 이곳은 신선한 공기와 함께 목가적인 스위스의 풍경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재밌는 표식 중 하나. 중간 중간에 포진한 별자리 자판은 공원을 하나의 천체로 간주해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을 표시해 놓았다.

국제공항에 힘입어 스위스 열차여행의 시작점이 된 취리히 중앙역(HB)은 여러 도시를 잇는 기차들로 항상 붐빈다. 유틀리베르그행 기차는 30분에 한대꼴로 하루 34번 운행된다. 운행시간은 오전6시57분~24시7분까지. 시즌에 따라 시간이 조금씩 변경되기 때문에 출발 전 시간표 확인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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