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마력은 세월을 거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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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 천 년 세월의 신비, 보로부두르 사원
中 - 악마가 하룻밤에 세우다, 프람바난 사원
下 - 족자카르타의 오늘, 마리오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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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지닌 한 왕자가 적국의 공주를 사랑해 청혼했다. 공주는 아버지를 죽인 그 왕자와 결혼하기 싫었지만 그가 지닌 마력이 두려웠다. 그래서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하룻밤 만에 1000개의 신전을 쌓으면 결혼하겠노라고. 왕자는 그의 마력을 이용해 악마들을 불러 1000개의 신전을 쌓아 올렸다. 불안해진 공주는 마을 사람들을 시켜 날이 밝으면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했다. 농락당했다며 화가 난 왕자는 공주를 석상으로 만들었고 1000번째 신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사원이 바로 프람바난 사원(Prambanan Temple)이란다.




● 악마가 세운 1000개의 신전

비록 전설에서처럼 1000개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프람바난 사원은 우선 예상을 뒤엎는 거대한 규모로 이방인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규모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으로 꼽히고 있으니 보로부두르 사원과 양립하는 족자카르타의 명물이라는 데 동의하기도 어렵지 않다.

프람바난 사원은 보로부두르 사원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 경에 이곳을 지배하던 힌두 왕조에 의해 건립됐다. 지금이야 보로부두르 사원은 불교사원으로, 프람바난 사원은 힌두사원으로 확실한 선을 그어 구분하지만 건립 당시에는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로 보는 경향이 강해 지금과 같은 의식적 구분은 약했다고 한다. 실제로 프람바난 사원의 중앙 신전인 시바 신전에 있는 시바상은 불교와 연관이 높은 연꽃을 타고 있어 두 종교 간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전설 속에서는 1000개의 신전이 프람바난 사원을 형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40개의 크고 작은 신전들로 구성됐다고 한다. 그마저도 지금은 대부분 무너진 채로 복원되지 않아 사원 중앙을 제외하면 세월의 물결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잔해들뿐이다. 현대에 들어 복원된 신전들이 프람바난 사원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유추하는 단초가 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의 위용

프람바난 사원은 멀리에서 바라보면 마치 활활 타오르고 있는 횃불의 불꽃같기도 하고, 덜 여물은 솔방울을 세워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갈수록 고개를 급격히 치켜들어야 할 정도로, 웬만한 카메라 렌즈로는 한 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프람바난은 위로, 옆으로 급격히 치솟고 부푼다.

현재 복원된 신전은 힌두교의 최고신인 시바(Siva), 시바신과 양립하는 하늘의 신 비슈누(Visnu),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Brahma) 신을 섬기고 있는 3개 신전과 각 신들이 타고 다녔던 동물들이 봉안된 3개 신전, 그리고 이들 6개 신전에 각각 2개씩 딸려 있는 작은 신전 12개로 총 18개이다.

이 중 프람바난 사원의 고갱이는 역시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시바 신전이다. 높이 47m에 이르는 시바 신전이 내뿜는 위용은 양 옆의 비슈누, 브라흐마 신전의 호위 속에 더욱 커진다. 고대 신화를 형상화한 신전 외벽과 신전 계단 난간 등에 새겨진 부조물들은 그 치밀함과 종교적 경건함으로 시선을 한참이나 붙든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등장하는 신들도 수 억 명에 이르는 힌두교의 신비감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시바 신전의 내부에 들어가면 시바신을 중심으로 시바신의 아내 중 하나인 ‘두르가’,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시바의 아들 ‘가네샤’ 등의 상이 동서남북 각 측실에 새겨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시바 신전을 ‘라라 종그랑’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전설 속의 악마가 1000번째 신전으로 삼은 공주의 이름이며, 시바 신전 북측 석실에 있는 두르가 상이 바로 전설 속의 라라 종그랑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두르가 상은 이곳저곳 까맣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데 두르가 상을 만지면 예뻐진다는 믿음이 있어서 현지인이건 여행객이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만졌기 때문이란다.

시바, 비슈누, 브라흐마 3개 신전 주위에는 각각 이들이 타고 다녔던 동물들의 신전도 마련돼 있어 흥미롭다. 시바는 황소 ‘난디’를 타고 다녔고 비슈누 신은 독수리 형상을 한 전설 속의 새 ‘가루다’를, 브라흐마 신은 백조 ‘앙사’를 타고 다녔다.


● 세월의 잔해는 스산함을 던지고

복원된 이들 신전은 많은 볼거리와 호기심을 부풀리는 이런 저런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어 제대로 느끼고자 할라치면 하루를 다 바쳐도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런데도 샛길로 빠져 사원 변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유는 복원되지 않은 수많은 역사의 편린들 때문이었다.

사원 중심을 빙 에두르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돌조각들, 원래는 제각기 프람바난 사원의 웅장함에 마지막 점을 찍는 요소였을 터다. 이제는 검게 그을린 세월의 이끼만이 허허로이 지나가버린 영화와 위용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그 무수한 돌무더기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현재는 부존의 그늘에서 덤덤히 천년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저 멀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신전들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그예 마음속에 스산함을 안겨준다. 악마의 마력이 다시 작용해 어느 순간 무너졌던 신전들이 세월의 흐름을 뚫고 쑥쑥 일어날 것만 같기도 하다.


+++ 플러스 α +++

족자카르타의 유적 탐방


인도네시아의 고대도시인 만큼 족자카르타에는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 이외에도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많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 인근에 있는 믄 듯 사원(Mendut Temple)도 여행객들이 보로부두르 사원 방문시 빼놓지 않는 불교유적이다. 순례자들의 경우 보로부두르 사원을 오르기 전에 먼저 들르는 곳이다. 믄듯 사원은 직사각형 기단을 바탕으로 세워져 있으며 14개의 계단을 오르면 내부에 불상이 기다리고 있다. 불상뿐만 아니라 사원의 4개 벽면마다 돋을새김의 불교미술로 표현된 부조도 이 사원의 가치를 더하는 요소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루 코스로 디엔(Dieng) 고원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발고도 2000m의 고원지대에 8~9세기 경의 힌두 유적군이 남아 있다. ‘디엔’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자리’라는 뜻을 지녔다니 이곳이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스러움을 지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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