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가는 여행…

매년 봄마다 중국 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
그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사람이 다니기 시작해 길이 새겨진지도 벌써 2000년이 넘었다.

길은 과연 인간에게, 그리고 인간의 삶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길에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수 천년이 흐른 후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돼 있을까?
길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실크로드 여행길이다.

때론 황사라는 것이, 지구 저편에도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의미의 ‘길’은 아닐까.



끝없이 이어진 길이라 해도 처음은 있다. 중국 역사에서는 한무제 때 북의 흉노족을 막기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고행했던 장건이 걸었던 길을 실크로드의 한 갈래로 보고 있다. 길은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길을 탄행시켰으니, 바로 7000km를 훌쩍 넘는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는 중국 동쪽 시안(서안)을 출발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 로마로 이어지는 장대한 길이다.

우리에게는 비단길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 서방으로 가져간 무역품이 대부분 비단이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이들이 가져간 보따리에는 무역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불교와 이슬람교가 전해진 것. 이에 실크로드는 동서문명의 이동로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초기의 실크로드는 옥이 많이 나던 호탄을 끼고 천축(북인도)으로 이어지는 서역 남도가 유행했다. 그러다 7세기 사막화와 이민족의 침입으로 점차 왕래가 뜸해지다 사막 횡단 시 거리가 짧은 서역 북도로 몰리게 됐다. 이후 서역북도는 천산(天山)산맥을 기점으로 둔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이닝-카자흐스탄-터키-로마까지 이어지는 천산 북로와 둔황-투루판-쿠얼러-쿠처-카슈가르-파미르고원-이란-터키로 연결되는 천산 남로로 나뉘게 된다.

최근 서부대개발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실크로드는 아직도 길 위에 남아있을 동서양 문명의 흔적을 찾아가는 묘미에 많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는 실크로드가 시작하는 시안부터 우루무치(천산 북도)까지 길과 함께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시안

상해항공을 이용해 상하이를 거쳐 시안에 도착했다. 시안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양 옆, 봄 바람에 푸릇푸릇하게 자라는 벼들 사이로 황제의 무덤들이 즐비해 있다. 옛 시절 가장 부유한 땅이었을 시안, 아직도 2달에 한 번 가량은 유물이 출토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안은 서주(西周)에서 당나라까지 11개 왕조가 도읍지로 정했던 곳이다. 예전엔 장안(長安)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곳은 옛 시절 화려한 명성만큼 진 시황, 당 태종을 비롯해 제갈량, 사마천, 노자, 양귀비 등을 배출했다. 제왕과 명장, 사상가, 미인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이름만 늘어놓아도 하루 종일 걸릴 듯 하다. 이러니 시안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도 어찌 대단치 않을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당나라 시대의 공연을 보며 시안의 대표요리로 형형색색의 화려한 ‘만두’를 먹었다. 혼을 빼놓는 공연단의 춤사위는 인도를 연상시킨다. 궁정에서 쿠차 무용과 쿠차 음악이 연주했다더니,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이란풍 호선무를 가미한 이 쿠차 무용이 꽤나 인기를 끌었겠구나.



시내 중심가에서는 밤늦도록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의 모습과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며 천문관측기를 가져다 놓은 장사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말 토성을 볼 수 있을까. 사실 진짜 토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양의 토성이 보인다.

고루(鼓樓) 뒤편으로 ‘이슬람 음식거리’의 불빛도 꺼질 줄 모른다. 여기까지 왔으면 양꼬치를 빼놓을 수 없다. 실크로드를 양꼬치로드라고 고쳐 부르고 싶을 만큼 가는 길 어디에서나 양꼬치가 있으며, 그 맛은 서쪽으로 갈수록 맛의 깊이가 더한다.

-시안의 ‘2남 1녀’를 만나보아라

다음 날, 길을 나서는 나에게 가이드가 재밌는 말을 건넨다. 시안에 오면 ‘2남 1녀’를 꼭 만나보고 가야 한다고. 대충 진시황이 그 1남 중 하나일 것이고 1녀는 양귀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상상을 해보는데 나머지 1남은 누구일까? 진시황을 만나려면 진시황릉으로 가면 되고, 양귀비를 만나려면 화청지(華淸池)로 가면 되는데 나머지 1남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나.

석류로 유명한 섬서성 임동현, 37살의 청년 ‘양지발’은 곡괭이질을 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는데, 이것이 진시황 병마용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진시황 병마용 상품코너 한 켠에서 직접 발간한 책에 사인을 해주며 평생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제 69세가 됐다. 이 노인네는 진시황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럼, 돈을 벌게 해준 사람이니 좋지!”라는 말로 답한다. 그가 바로 나머지 1남, 양지발씨다.

병마용갱은 3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다. 진시황 사후 3년째 되던 해, 진시황이 초나라를 짓밟았을 때 이에 대한 원한으로 항우가 병마용갱에 불을 질렀는데, 석 달이 넘도록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고 하니 지하 아방궁의 규모는 상상에 맡긴다. 참, 이 때 전리품으로 병마용 병사들이 갖고 있던 창과 방패를 가져가는 바람에 병마용갱의 병사들은 모두 무장해제 상태다. 지금은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병마용 하나하나에 모두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고. 1호갱은 당시 농민이 발견한 것인데 규모가 제일 크다. 아침 햇볕을 받고 있는 병마용을 보며 지킬 왕이 없어진 저 병사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병마용을 나와 진시황릉에 가서 1남 진시황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공사 중인 화청지에서 주마간산격으로 1녀 양귀비를 만났다. 다시 서안 시내로 돌아와 실크로드로 가기 위해 다시 그 출발점에 선다.




+++++플러스 α+++++

-중국의 PC방

2년전 만해도 ‘윈도우 98’이나 ‘윈도우 2000’이 깔려있었던 중국의 PC방. 규모나 수적인 면에서도 미흡했던 PC방은 2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놀랍게 변해있었다. 비단 서안뿐만이 아니라 실크로드 여행을 하는 내내 들른 다른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PC방은 ‘왕루오’나 ‘왕빠’라고 적고 있으며, XP가 깔려있는 PC방이면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보증금으로 인민폐 10위안을 미리 내고 요금은 시간당 2~3위안 정도. 이용을 마치면 보증금 10元에서 사용한 금액만큼을 제하고 돌려준다.

글·사진=Travie writer 박임자 freebelt@naver.com
취재협조=상해항공 02-317-8899
테마중국여행 02-736-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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