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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묻지 않은 자연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섬

예컨대 세련되고 화려한 국제도시 쿠알라룸푸르도 해양천국으로 유명한 페낭도 아니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가급적이면 인적 드문 작고 소박한 마을이고 싶었다. 태국과 싱가포르 사이에 날씬하게 뻗어 내린 말레이시아 반도. 그 중심부로부터 최대한 거리두기를 희망하던 끝에 결국 아주 작은 섬 하나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 받았다. 우리나라 거제도 정도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고급 리조트들을 품는 것은 물론 섬 전체가 면세 특구로 지정되어 버린 이 야무진 곳에는 과연 어떤 삶과 문화가 있을까. 말레이시아의 숨겨진 관광지 랑카위섬. 그곳의 8할은 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꾸밈없는 자연이 자리 잡아 있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로 여행자를 반기는 순박한 사람들, 각기 다른 인종이지만 하나로 불릴 수 있기에 행복한 이들이 만드는 뜨거운 섬이었다.



-랑카위의 상징 ‘갈색 독수리’와 만나는 몇 가지 방법

비행기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한 이들에게 랑카위섬은 오히려 육지에 가깝다. 이는 페낭에서부터 배를 타고 두 시간여 만에 찾아온 여행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새삼 시원스레 뻗은 도로를 두 발 아래 느낄 때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다기보다는 아늑한 시골 마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면세특구지역이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육지보다 편리하고 풍족한 상권까지 갖췄으니, 여타의 섬에서 겪던 불편함이나 이질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104개의 섬이었다가 바닷물이 차오르는 밤이면 99개의 섬으로 이루어지는 랑카위는 명백히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한 군도다. 주민의 대다수는 랑카위섬에 살고 있으며, 그 남동쪽에 있는 쿠아(Kuah)가 주 도시이자 관문이다. 섬을 드나드는 주된 통로인 페리터미널과 쇼핑센터, 호텔 등이 그곳에 있어 이처럼 독특한 랑카위의 첫 인상을 대신 전해준다.

① 해질녘에 바라본‘독수리 광장’

현지어로 ‘갈색(kawi) 독수리’라는 뜻을 지닌 랑카위는 그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독수리로 유명한 지역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위협적인 날갯짓으로 하늘 위를 군림하는 상상 속의 이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독수리 광장(Dataran Lang)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끝없이 펼쳐진 쿠아 만을 가슴에 한껏 품은 커다란 독수리 동상은 광장을 등진 채 바다를 향해 있다. 양 날개를 V자로 한껏 펼치고는 비릿한 바다 내음과 창공의 정기를 한 몸에 인 동상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꿈틀댄다. 동상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금새 고개가 뻐근해 오지만, 일단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동상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 규모가 가히 상상 이상으로 크고 거대하다. 때 맞춰 들려오는 동상의 출생 배경 이야기는 더욱 정겹고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말레이 정부의 수교를 기념하는 의미로 북한에서 선물했다는 독수리 동상은, 얘기를 듣고 난 뒤 다시 올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 하늘과 더불어 랑카위의 상징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랑카위를 방문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배경도 없지 않을까. 화려한 색상과 금색 수를 놓은 차도르로 새초롬하게 멋을 낸 말레이 여성들이 광장 한 쪽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넓은 광장 위로는 짙은 석양이 깔리기 시작하고, 인적이 끊긴 저녁 무렵의 독수리 광장에는 어둠을 맞아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낮보다도 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다. 운영시간 : 상시 무료 개방 / 찾아가는 길 : 쿠아제티 왼쪽 방면

② 진짜 독수리를 만나러 가는 길, ‘이글 피딩’

독수리 광장에서 랑카위의 상징인 갈색 독수리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제 실전으로 들어갈 때다. 제아무리 독수리가 유명한 섬이라고는 하나 그 원시성을 지닌 생명력을 가장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맹그로브 투어(Mangrove Tour)’를 빼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크루즈라고 하기에는 다소 소박하고 아담한 보트를 타고 1시간 정도 킬림(Kilim) 강을 따라 달리면, 어느덧 탁한 늪지대를 지나 푸르디푸른 바다 한 가운데 배가 정착한다. 요란한 소음을 내며 달리던 보트의 모터가 작동을 멈추면 어느덧 세상은 고요해지고 망망대해의 강 위에 바람의 노래만이 가득하다. 수면에 휩쓸리는 그 침묵의 시간조차 크고 또렷하게 느껴질 때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디선가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선상 위로 큰 원을 그리며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뱃머리 위로 고개를 내밀면 태양을 가리며 비행하는 십여 마리 남짓한 독수리 떼. 신기하게도 그들은 어느 정도 정해진 영역 안에서만 비행을 하며 그 이상, 혹은 저 멀리 날아가 사라진다든지 하는 일탈된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들이 수면 위로 먹이를 던져주면 가볍게 내려 앉아 그것을 낚아채지만, 절대 사람을 해치거나 위협적인 행동은 삼지 않는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느낄 때면 순식간에 랑카위섬은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아마존 정글이 되며 이는 아무 곳에서나 맛보기 힘든 색다른 체험을 느끼게 한다.

맹그로브 투어는 모터가 안착된 작은 보트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는 카누 등의 적극적인 스포츠 방식을 통해 천천히 둘러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온 모험심 강한 일부 여행객들은 직접 패들을 잡고 노를 저어 맹그루브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

-지구 중력 방향으로 자라는 신비한 나무 ‘맹그로브’

맹그로브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수면 위를 날아다니는 말레이시아 독수리 형제들을 구경하는 데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만나 지구의 평화와 세계 안녕을 진지하게 물어보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아쉽다. 독수리들과의 해후는 참으로 짧고 꿈결처럼 아득하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그 여정 동안 보트는 40여분이 넘는 시간을 거침없이 달린다. 그 과정 속에 자칫 놓치기 쉬운 볼거리가 있으니 바로 ‘맹그로브’ 나무다. 이는 창공을 맴도는 독수리떼보다 두 배는 웅장하며, 훨씬 깊은 원시우림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묘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맹그로브는 아열대의 갯벌이나 하구에서 자라는 목본식물로서 말레이시아, 그 중에서도 킬림 강 유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나무종이다. 독수리를 만나러 가는 구역 자체가 킬림 자연 공원(Kilim Nature Park)으로 지정될 만큼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강 유역에는 기묘한 모양의 나무들이 빽빽한 테두리를 세우며 물과 육지의 경계를 나눈다.

보통은 영문자 Y가 거꾸로 새워진 듯한 모양새로 자라는데, 그것들이 한데 뭉쳐 있는 모습은 마치 물 속에 거꾸로 박혀 침잠한 거대한 나무숲과 같다. 2년 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이 맹그로브 나무가 한데 뒤엉켜 하나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곳 랑카위섬은 큰 피해 없이 재난을 넘겼으니 과연 식물이라기보다는 야생 동물처럼 우직하고 듬직해 보이는 묘한 식물이 아닐 수 없다.

맹그로브의 가장 독특한 특성은 보통 가지가 60~70cm정도 자라면 그것이 땅에 떨어져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이다. 지구 중력 방향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며, 하늘보다는 땅을 위해 지속적인 번식력을 자랑하는 맹그로브는 식물로써는 보기 드문 독특한 번식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정말이지 말레이시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신비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수면 위로 무시무시한 악어가 맹그로브 덤불 사이로 기어 올라갈 때면 움직이던 보트는 동작을 멈추고 그 모든 자연의 단면을 숨죽여 훔쳐볼 수 있게 도와준다. 맹그로브와 악어의 피부색이 비슷해 쉬이 분간할 수 없는 사이, 어느새 악어는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그처럼 숨죽이며 지켜본 짧은 킬림 강에서의 한 때가 지나면, 보트는 다시 거침없는 속력으로 선착장을 향해 무섭게 질주한다.

■ 랑카위 가는 법

★항공편 :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랑카위 직항편이 없다. 쿠알라룸프르나 페낭 등 말레이시아 주요도시에 도착한 뒤 랑카위편 항공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국내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는 말레이시아항공과 대한항공이 운항되고 있으며, 직항편 기준으로 6시간 50분정도 소요된다. 쿠알라룸푸르↔랑카위는 매일 다양한 국내선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

★페리 :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리를 이용하여 섬을 드나든다. 페낭, 쿠알라케다, 쿠알라뻬를리스, 태국의 사툰 간에 매일 페리가 운행한다.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페리 편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 말레이시아만 여행하는 사람은 페낭이나 쿠알라케다로 드나드는 것이 다른 교통편 연결에 쉽다.


■ 랑카위 내에서의 교통편

★택시 : 승용차와 승합차의 2종류다. 승용차는 4명, 승합차는 7명을 정원으로 한다. 승용차는 대당으로 요금을 받고 승합차는 5번째 승객부터 1인당 요금을 추가한다. 1~2명이 여행하는 경우, 랑카위로 오는 페리에서 목적지가 비슷한 여행지를 물색하여 머릿수를 채우면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다. 호텔에서 벤을 미리 예약해놓는 방법도 있는데, 호텔마다 이용비가 각기 다르므로 미리 프런트에 물어보는 것이 좋다.

★렌트 : 섬을 둘러볼 여행객은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렌트하는 게 좋다. 섬이 꽤 넓어서 차량 없이는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렌트는 제티의 여행사에서 하는 것이 좋으며 값도 해변보다 저렴하고 제티↔해변 택시 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 랑카위는 도로 표지판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길 찾기가 수월하다. 말레이시아는 산유국이어서 기름값도 저렴하다. 그러나 차선과 운전석이 우리나라와는 반대여서 자칫하면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주의해야 한다. 렌트요금(1일 24시간 기준): 오토바이 RM35/자동차(배기량에 따라) RM50/RM60/RM70


랑카위 글·사진=Travie writer 박나리 yepyep@hanmail.net
취재협조〓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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