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멋의 풍류에 흥겨워 노닐다

등허리에 땀이 차고 숨이 가빠 온다. 부용대를 오르는 길은 시골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야트막한 산길이지만, 8월 무더위에 힘입어 자신이 녹록치 않음을 증명해 내고야 만다. 그래도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아, 높이 64m의 부용대 정상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즐거움을 얻었다.



-살아있는 박물관 ‘하회마을’

낙동강이 굽이쳐 돌아 흐른다 하여 이름 붙여진 하회마을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들을 강이 보듬어 안 듯 돌아 흐르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오직 마을과 들판만이 존재한다. 이곳 하회마을만이 시간이 정지해 아직 조선을 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부용대를 내려와 마치 옛 선비라도 된 듯 나룻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들어선다.

하동고택, 북촌댁, 남촌댁, 주일재(모두 중요민속자료), 양진당(보물 제306호) 등등 주마간산으로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고택들이 즐비하다. 그곳엔 대를 이어 집안을 지켜 오고 있는 이들이 있어 곳곳에 생활의 흔적이 묻어난다.

양진당 맞은편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이 있다. 충효당은 1999년, 귀한 손님을 맞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한 때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구에 따라 안동이 방문지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하회마을의 충효당 안채에서 영국 여왕은 차 한잔을 마시면서 우리 조상들의 삶을 느껴 보았다 한다.

하회마을의 한가운데엔 짙은 초록을 펼치는 나무가 있으니 바로 삼신당이다. 마을의 중요한 일을 상의하는 회의 장소이기도 했으며, 어른들의 쉼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그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하회마을의 가장 큰 놀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둥둥둥….’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구소리가 느긋하던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회마을 입구 전수관에 도착하니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양반: “여보게 선비, 통성명이나 하시더.”
선비: “그래시더.”
양반: “나는 사대부 집안의 자손일세.”
선비: “그까짓 것 사대부?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
양반: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내셨네.”
선비: “(잠시 생각하다가) 문하시중?
우리 아비는 문상시대일세. 문하보다 문상이 높고 시중보다 시대가 높지 않은가?”
양반: “여보게 선비,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네.”
선비: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다네.”

거드름 떠는 양반과 어거지 부리는 선비, 이들의 입담에 장내엔 웃음이 터져 나오고 굿거리 장단이 한층 흥을 돋운다. 중요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 중 한 대목이다. 양반과 선비, 중, 백정, 부네, 이매, 초랭이, 할미, 각시 등 마치 그 시대의 캐리커처를 보듯 절묘한 탈들의 생김새는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다.

어느 물건인들 사연이 없겠냐마는, 하회탈쯤 되면 그럴싸한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전된 이야기에 따르면, 하회탈은 700여 년 전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에 우환이 계속되던 어느 날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마을을 지켜 주는 신의 노여움이 풀리게 되어 마을이 평온해질 것이다. 단 탈은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부터 혼자 탈을 만들기 시작한 허도령. 그러나 마지막 이매탈을 만들고 있을 때 그를 사모하던 동네 처녀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허도령을 엿보게 된다. 그 순간 허도령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결국 이매탈은 완성되지 못한 채 턱이 없는 모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비극적 로맨스는 존재했었나 보다.

몇 백년 전의 이야기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우리를 웃고 울리는 걸 보면, 시대가 변한다고 우리네 삶이, 우리네 감정이 변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그곳에서 여전히 삶이 지속되고 있는 곳, 박물관 한 켠에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안동 하회마을이다.

이 가을 마침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도 열린다고 하니 깔아 준 멍석에서 한바탕 흥겹게 놀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플러스 α+++++

★ 나룻배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365일 운행한다. 뱃사공은 하회마을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이창학씨(53). 지금까지 3년째 노를 젓고 있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 입구 전수관에서 오후 3시에 공연을 한다. 3, 4, 11월은 매주 일요일 주 1회, 5~10월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 2회 공연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모두 9개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설공연에서는 6개 마당(무동, 주지,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선비 마당)만을 공연한다. 관람료는 무료.

안동의 맛



안동은 산이 많아 논보다 밭이 많기 때문에 고추, 마늘, 참깨 등의 농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그러한 이유로 안동 지방의 음식은 양념이 많고 비교적 맵고 짠 것이 특징이다.

-헛제사밥 제사가 없는 날 제사밥처럼 차려 먹는 음식. 유교의 고장 안동 특유의 음식문화를 잘 보여 주는 향토 음식이다.
-안동 찜닭 안동 음식답게 매우면서도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 양도 많아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학생들에게도 인기다.
-안동 간고등어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내륙 지방인 안동에서 해산물을 먹기 위해 소금에 절이게 된 데서 유래한 음식. 신선한 생선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지금도 그 맛으로 이름이 높다.
-건진국수 안동 사람들이 여름철에 먹던 손칼국수.
-안동 식혜 뻘건 김칫국물 같은 안동식혜는 그 모양만큼이나 특이한 맛을 가지고 있다. 시큼한 듯 매운 듯 그렇지만 단맛으로 마무리되는 감칠맛이 있다.
-안동 한우 예로부터 안동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자란 소는 그 고기 맛이 일품이다.

글·사진=Travie photographer 신성식 neo2star@naver.com
취재협조=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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