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작가와 함께 떠난 문학기차여행 “청송 가는 길”

“저는 <객주>를 쓸 때 밤새 사전을 찾아가며 글을 썼습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글을 썼고 밤을 새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 시간들을 견뎌 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 잠든 이 시각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주산지

밤 9시30분, 어둠을 뚫고 기차가 출발한다. 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목적지와 관계없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잠들지 않는 서울의 야경을 뒤로하고 얼마나 달렸을까? 이번 문학여행의 주인공인 김주영 작가가 마이크를 든다.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 육지 안에서 가장 산골로 가고 있습니다. 경북 청송으로 가는 길은 거의 독도로 가는 길에 비유할 수 있죠. 그만큼 한번 찾아가기가 힘든 곳이란 뜻이죠. 김주영의 문학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번 문학기차여행은 김주영의 문학, 김주영의 소설보다는 청송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그는 그동안 고향 청송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200여 명의 손님들을 이끌고 고향 청송으로 향하는 작가 김주영은 골목대장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버스로 갈아타고,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드디어 청송 땅에 도착. 이른 새벽부터 솔기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긴 후 동이 틀 무렵, 주산지 입구에 도착한다.

잠이 덜 깬 탓일까? 주산지의 신비로운 분위기 탓일까? 주산지로 가는 길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저수지 자체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왕버들의 자태가 신비롭기 그지없다. 산골 깊숙이 숨어 있어 아는 사람들만 간간이 찾아들던 주산지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때문이다. 한 편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영화 속 풍경이 사람들을 주산지로 불러들였다.

영화 속 물 위의 암자를 기대했던 참가자들은 “암자는 없네”라며 다소 실망하는 모습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저수지 위에 제작했던 암자는 촬영 후 환경 보호를 이유로 철수됐기 때문이다. 암자는 없지만 저수지 물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왕버드나무의 풍경만으로도 주산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자라 온 고목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한 사람들. 이른 새벽 주산지의 고요는 그렇게 흩어지고 있었다.

-“주왕산을 올라야 청송을 알지~”

애초 일정표에는 들어 있지 않던 주왕산행이 갑작스레 계획된 것은 김주영 작가의 강력한 뜻 때문이었다. 김주영 작가는 ‘좀처럼 오기 힘든 청송까지 와서 주왕산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청송의 좋은 경치와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주왕산 산행을 추천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른 아침, 주왕산에 오른 참가자들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었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이런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에 감성이 풍부해졌다’고 말한 이유가 단박에 이해가 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병풍처럼 둘러 친 기암절벽이 장관을 연출하는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巖山)으로 꼽히는 곳이다. 당나라의 주왕이란 인물이 은거하였다 하여 주왕산이라 불리고 있다는 전설을 비롯해 산 곳곳에는 주왕산에 대한 다양한 전설들이 적혀 있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절경과 흥미로운 전설을 감상하며 산길을 오른다. 좁은 기암절벽 사이를 지나니 아름다운 바위로 둘러싸인 1폭포가 나타난다. 웅장한 규모는 아니지만 수정처럼 맑은 물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 주는 듯하다.

시간상 더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1폭포에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린다.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쉬며 내려오는데 학소대에서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줄지어 김주영 작가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한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표정. CF에 출연했던 이력이 보인다.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사이다 광고에 출연했던 김주영 작가의 모습을 주왕산과 함께 카메라에 담으면서, ‘역시 산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다.

시원시원한 외모만큼이나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인 김주영 작가는 문인계의 재담가라는 칭호에 걸맞게 주왕산을 내려오는 동안 걸쭉한 이야기들로 좌중을 압도한다. 신나게 산을 내려오는데 산 입구 식당에서 동동주 한잔 걸치던 참가자들이 “선생님!” 하고 부르더니 “동동주 한잔 하세요” 한다. 김주영 작가는 “저 한잔 주시게요?” 하더니 주저 없이 덜썩 자리잡고 앉아 사람들 속에 어우러진다.

-어린 김주영이 상상력을 키우던 옹기장



주왕산을 떠나 ‘심부자댁’으로 불리는 99칸의 송소고택을 거쳐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청송 옹기장으로 향한다. 옹기장에 오자 확성기를 든 김주영 작가, 무형문화재인 이무남 선생을 소개한 뒤, 옹기장을 훔쳐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흙은 그 자체로는 흙일 뿐이지만 흙이 사람의 손을 거쳐 옹기가 되면 작품이 됩니다. 저는 어릴 적 옹기 만드는 모습을 훔쳐보며 창의력을 키웠습니다. 옹기장과 상엿집, 도살장 등은 어린 시절 김주영이 상상력을 키웠던 곳입니다. 여러분도 이곳을 둘러보면 50~60년 전 꼬마 김주영이 보았던 것이 무엇인가를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대째 옹기구이를 가업으로 이어 오고 있다는 청송 옹기장에서는 지금도 모두 손으로 옹기를 빚어 굽고 있다. 흙을 손으로 빚어 다듬고 말리고 가마에서 구워 내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다.

형체 없이 흩어져 있던 흙이 하나의 옹기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김주영이 이곳에서 느꼈던 것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지려 해본다.

-월영교의 애틋함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청송을 떠나 상경 기차를 타기 위해 안동으로 향한다. 안동호에 놓인 월영교 앞에 도착. 너른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폭 3.6m,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월영교는 이 지역에 살았던 한 부부의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 한 켤레를 만들었다는 내용에 따라 미투리 모양을 형상화해 월영교를 만들었다. 나무다리의 느낌 때문일까, 다리가 품고 있는 사연 때문일까, 여느 다리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기리는 이육사 문학관에 들러 그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퇴계선생 종갓집을 들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무리한다.

+++++플러스 α+++++

★문학기차여행이란

교보문고에서 격월로 실시하는 ‘문학기차여행’은 작가와 함께 관광전용열차를 타고 문학작품의 배경지를 답사하는 여행으로, 그동안 김훈, 정호승, 안도현, 윤대녕 등 유명 작가들이 동참했다. 이번 문학기차여행의 동승 작가는 <객주>, <홍어>,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등으로 유명한, 타고난 이야기꾼 김주영 작가.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무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으며 목적지는 김주영 작가의 고향이자 <객주>의 배경지인 경북 청송. 9월8일 밤기차를 타고 출발, 청송의 솔기온천욕을 시작으로 주산지, 주왕산, 송소고택, 청송 옹기장 및 안동 월영교, 이육사 문학관, 퇴계선생 종갓집을 둘러보고 9월9일 밤 서울로 돌아왔다. 각 여행지를 작가와 함께 돌아보는 재미와 함께 기차 안에서 진행되는 문학 이벤트가 재미를 더한다. 기차 안에서는 문학 퀴즈 대회,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의 밤, 사연 엽서 방송, 통기타 가수와 함께하는 노래 공연 등이 펼쳐진다.



★청송에선 사과, 안동엔 헛제사밥

청송 이맘때쯤 주왕산 입구에서 ‘아지매’들이 가장 많이 파는 것은 바로 청송 사과. 주왕산에서 내려오는데 식당에서 사과를 파는 아지매들이 인심 좋게도 사과를 먹어 보라며 내놓는다. 산에서 갓 따 와 싱싱하고 깨끗한 햇사과를 물에 씻어 한입 베어 무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사과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한 봉지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사과로 배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청송 달기약수 닭백숙을 먹자. 위장병, 신경통 등 치료에 효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달기약수로 고아 낸 닭백숙은 청송만의 자랑이다.

안동 월영교 근처에는 안동의 특미인 헛제사밥과 간고등어를 파는 전문점들이 있다. 안동 헛제사밥은 이름 그대로 가짜 제사 음식을 말한다. 놋쇠 그릇에 밥, 맑은 탕국, 나물 반찬, 생선포, 산적 등이 담겨 나오는데 말 그대로 제사상과 같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고 먹는 음식들이다. 이와 함께 안동 간고등어도 먹어 볼 만하다. 월영교 앞에는 유명한 간잽이 이동삼씨가 운영하는 간고등어 집도 있다. 후식으로는 안동 식혜를 맛보자. 안동 식혜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식혜와는 모양과 맛이 확연히 다르다. 밥알이 동동 뜬 단맛 대신, 무와 생강이 동동 뜬 시원한 맛이 낯선 듯하면서도 독특하다.

경북 청송 글·사진=김수진 기자 dreamer@traveltimes.co.kr
취재협조=교보문고 www.kyobobook.co.kr, KTX 관광레져(주) www.ktx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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