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 낳은 흙담빛 순수 속으로

고립의 뒷면은 순수다.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했던 산악지대의 고립성은 이제 강한 흡인력을 지닌 관광매력의 원천이 됐다. 외부의 갖은 세파에서 벗어난 순수성 때문. 그 순수성은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옛 건물들과 역사유적, 전통문화에 오롯이 물들어 있다.

-옛 성에는 4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마츠모토, 다카야마, 가나자와 세 도시의 공통점은 사무라이 지도자들의 성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 권력투쟁과 욕망의 결정체인 그곳에도 순수성이 살아 있다. 마츠모토 성이 대표적. 일본의 수많은 성들은 에도시대에서 메이지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무라이들의 몰락, 구시대 유물에 대한 경시풍조와 함께 대부분 파괴되거나 방치돼 왔다. 하지만 마츠모토성은 400여 년 전 건립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별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보존노력이 보태진 덕택에. 히메지성, 히코네성, 이누야마성과 함께 일본에 4개뿐인 국보급 성인 이유다. 역사적, 건축학적 관점에서는 물론 주위의 경관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마츠모토성의 빼어난 자태는 400여년의 풍파를 견뎌온 인고의 산물이다.

가나자와에도 가나자와 성 공원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성 보다는 성 건너편에 딸린 ‘겐로쿠엔’ 정원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 겐로쿠엔은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다. 가나자와성에 속한 외곽 정원으로 들어선 겐로쿠엔은 1676년 쯤에 본격적인 조성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총면적 11만4,000여 평방미터의 대규모이지만 정원 내를 걷다 보면 일본식 아기자기한 정원미를 짐작할 수 있다. 가나자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조성돼 있으면서도 물이 풍부한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겐로쿠엔이라는 이름도 물(수천), 조망, 광대함 등 6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입장료 성인 300엔.

-세계가 인정한 고색창연한 옛 마을



일반 서민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고풍스런 옛 마을과 옛 거리로 향할 일. ‘시라카와고’는 일본이 자랑하고 세계가 인정한 옛 서민들의 마을이다. ‘작은 쿄토’ 다카야마를 고색창연하게 물들이는 흙담빛 물감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합장식(갓쇼즈쿠리)’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에도시대의 옛 민가 113채가 밀집해 있다. 합장식 건축양식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합각(ㅅ자 각도)으로 엇대어 짓은 기법. 산간 지역의 엄청난 눈이 지붕 위에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수 백 년 세월의 켜가 쌓인 그곳에 여전히 사람들이 산다. 지붕의 이엉을 다시 얹는 장관도 보여준다. 흘러간 시간이 아닌 흐르는 시간이요, 박제된 과거가 아닌 생동하는 현실이다.

생동하는 시간은 다카야마의 ‘오래된 거리’와 가나자와의 ‘히가시 차야가이(찻집거리)’에도 유유하다. 200년 안팎의 세월이 풍기는 깊고 그윽함이 압권이다. 이름은 찻집거리지만 실제로는 술을 파는 고급 유흥가였던 히가시 차야가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186년 역사의 찻집이 있을 정도로 고즈넉함이 물씬하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기모노 차림의 여성에게서 과거의 분위기를 엿보기는 어렵지 않다. 하루해가 뉘엿하면 기모노 차림으로 종종걸음 쳤을 게이샤들, 그네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격자무늬 창틀에 아른거리고, 얼근한 취객들의 흥을 돋웠을 ‘샤미센’ 선율도 귓가에 맴도는 듯해 한참이나 골목골목을 누비게 된다.

-미래로 향하는 신선한 반전



옛 분위기 물씬한 옛것들의 자취와 전통문화는 어디에건 흥건하다. 옛 무사들의 집과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무사마을’처럼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담스런 옛 마을과 오래된 거리들이 부지기수다. 치우침 혹은 이미지 편향에 대한 의구심이 싹튼 것은 당연지사.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바로 그런 의구심을 바탕으로 들어선 현대 미술관이다.

2004년에 개관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옛것의 반대편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추다. 전통문화에 현대예술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자는 의미로 건립됐다. 대학과 현청 등의 교외 이전으로 줄어든 상주인구를 다시 끌어들이자는 목적도 한 몫 했다. 일본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 설치미술, 조각 등 현대예술품들이 빼곡하다. 현대예술 애호가라면 하루라도 모자랄 지경. 유리벽으로 된 원형 미술관의 주변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장소로 자리 잡았다.

현대 예술작품의 초현실성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과거와 전통문화의 여정을 밟아온 여행객들에게는 신선한 반전이요 전환점이다. 자연과 전통의 튼실한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균형의 지향성 때문. 이 여행길이 따분하지 않은 이유다.



★ 놓치면 후회하는 체험거리

- 소바 만들기

산간 지역인 만큼 이 지역은 유명 메밀 생산지다. 나가노현의 경우 ‘탁~탁~’ 메밀 반죽 치는 소리를 현의 소리라고 할 정도. 실제로 해보면 가루와 물의 배합비율, 반죽하는 손의 방향과 힘의 방향, 시간, 면 자르기 등 모든 과정이 예삿일이 아니다. 소바 체험은 대부분 식당을 겸하고 있는 곳에서 별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삐뚤빼뚤 엉망이지만 자신이 직접 뽑아낸 면을 맛볼 수 있어 독특한 추억으로 남는다. 마츠모토시 이시비키 소바 가게는 27년전 일본 천황부부가 방문한 적이 있는 명소. 소바체험은 4~20명까지 가능하며 1인당 2,000엔이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 www.avisnet. na.jp/sinsyu/ozawa/

- 금박 붙이기 체험

불과 1g의 금이 가로×세로 10cm 크기의 금종이 40장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경이롭다. 동전 3분의1 정도의 금을 다다미 한 장 크기(90cm×180cm)로 펴낸다. 두께는 0.0001mm. 가나자와는 일본의 대표적인 금박 제조지다. 일본 전체 제조량의 98%가 가나자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세계문화유산인 ‘킨카쿠지(금각사)’의 금빛 외벽도 바로 이 금박으로 붙여진 것. 금박은 각종 미술공예품이나 장식품, 액세서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용된다. 가나자와 ‘하쿠코칸’은 금박문화를 체험하는 데 제격이다. 금박 붙이기 체험 1인당 500엔. www.hakuichi.co.jp


취재협조=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JNTO) 02-777-8601/www.jnto.go.jp
마츠모토-다카야마-가나자와 협의회
일본 마츠모토-다카야마-가나자와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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